그대에게 #5

편지

by Taehun Roh


당신의 편지를 기억합니다. 물로 쓰여진 편지. 그림으로 그려진 편지. 사진으로 보낸 편지.


편지에는 편지 뿐만이 아닌 쓰기전의 마음과 쓰고 있는 동안의 생각과 쓰는 동안의 시간이 담겨져 있는 것을 알기에 천천히 한 글자 한 글자 마음속에 아로 새겨 봅니다. 말과 행동과는 틀리게 손으로 꾹꾹 눌러 쓴 글자에는 소중한 기운 같은 것이 서려 있습니다. 그 기운의 일부를 건네 받았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벅차 오릅니다.


문자나 매체를 통해 전달 되는 기록들은 시간이 지나면 매체의 편의성과는 반대로 쉽게 옅어지고 사라집니다. 반면 손으로 눌러 쓴 것들은 아우라가 베여 있어요. 글자가 적혀지지 않은 옆서의 앞면도 글자가 적힌 옆서의 뒷면도 의미가 가득합니다.


편지에 사랑했던 당신이 있습니다.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도 마음도 흐릅니다. 그때 당시 당신을 가득 채웠던 일상에서 보냈던 일들이 적혀져 있습니다. 시간을 보내는 당신의 감정과 목소리가 들려 옵니다. 글을 적는 그때의 마음소리를 느낄 수 있습니다. 눈과 손가락 끝으로 글자를 따라 편지안 글자 하나 받침 하나를 터치해 봅니다.


책상에서, 테이블에서, 카페에서 편지를 쓰는 당신을 떠올립니다. 당신이 보내준 편지 중 하나는 기차에서 쓰여졌고 몇몇은 비행기에서 쓰여졌을 수 있겠네요. 눈을 감고 상상하면 모든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당신의 목소리. 따뜻하고 나긋한 당신. 웃고있는. 미간을 좁히며 집중하는 눈빛. 늘 빛 나는 당신의 미소.


시간으로 감당해 낼 수 없는 마음을 가득 받은 느낌이 들어 옵니다. 그 시간과 그 행복의 기억들은 옅어지고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 눈을 다른 곳에 두어야 하는 상황에도 그때 그 시간을, 우리가 나눴던 모든것 까지 지울 수는 없겠죠.


우린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편지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죠. 생각나는 이야기가 하나 있네요.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편지가 끊긴다면 사랑의 마음이 다른 색깔을 내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당신은 많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는 마음은 어떤 마음인지 앞으로는 어떤 빛깔을 낼지 나는 모릅니다. 당신에게서 마지막 편지를 받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마지막에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편지가 끊길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것을 지금 바라는 건 아닙니다. 기억은 곧 옅어질 것이고, 우리는 헤어질 것이고, 헤어짐이 힘들고 괴롭다 하더라도 지금 옅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기억나는 편지가 몇개 있습니다. 이중 몇 이야기를 당신에게 건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항상 거의 모든것을 이야기했죠. 버지니아울프가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 메디슨카운티의 다리에서 로버트가 프란체스카에게 보내는 편지. 헤밍웨이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김광석의 편지. 이와이 슈운지의 러브레터. 전쟁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보내는 편지. 전달된 편지와 전달이 되지 못한 편지. 생각을 정제하고 시간을 들여 사랑의 마음을 표현한 수 많은 애틋한 편지.


편지를 쓰는 시간과 공간의 사이. 그 안에 사랑의 절경이 있습니다. 그 풍경에는 아름답고 따뜻한 햇살이 있습니다. 청명하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 옵니다. 곳곳에 투명한 물이 흐릅니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설 수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만의 장소 입니다. 제 삶에는 이제 더이상 찾지 못할 장소입니다. 그 공간에 대한 생각을 해 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달했던 목소리와 마음 손길과 잠깐 동안의 접촉에 대해서도 생각해 봅니다. 마음 한구석이 깊은 슬픔에 잠겨집니다. 하지만 이제 슬픔만에 잠겨 있을 수 없을 것 같아요. 함께했던 것들. 함께하고 싶어 했던 것들. 지나간 것들의 기억. 둘이서 했던 수 많은 이약. 아직 들려주지 못한 이야기. 이제는 영원히 전달할 수 없는 이야기. 서로로부터 이어진 이야기들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눈은 가려져 있습니다. 잠시 뜨였던 눈이 이제는 가려집니다. 버려진 꽃 한송이에서도 이야기를 만들어 냈던 우리 많의 시간은 사라진 도시처럼 바다속 깊은 곳에 잠겨 있습니다. 늘 생각했습니다. 당신의 책상위에 있는 바스라지고 있는 장미 한 송이에 대하여. 그 소년을 질투한 유치한적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가까운 시간에 마음을 담은 아름다운 꽃 한송이를 건내고 당신 책상의 두번째 장미가 되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불가능한 이야기 입니다. 영원히 옆에서 있자는 마음역시 깊은 도시 속으로, 보이지 않는 도시로, 둘만의 영원한 장소에 어딘가 깊게 감춰져 있으니까요.


한편,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하나하나의 편지 입니다. 우주의 기원입니다. 마스터피스의 음악만큼 훌륭한 음색을 냅니다. 거장의 그림처럼 아름답습니다. 우주에 영원한 편지 한통이 우주속을 유영합니다. 절대적인 반지와 같은 절대적인 편지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모두 담은 소망이자 마지막까지 이어질 마음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편지들은 그 내용이 명확합니다. 생명의 기원이 담겨져 있습니다. 어떤 편지들은 쳐다보기 힘들 정도로 눈부시고 선명합니다. 아름답고 연약합니다. 어떤 편지에는 내용이 비어있습니다. 투명한 물로 쓰여져 있습니다. 아무도 들어주지 못한 슬픈 이야기도 있습니다. 세상이 비밀이 우리가 주고 받은 편지 곳곳에 넘실 거리고 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어떤 방식 으로든 다 연결 됩니다. 우리는 우주의 성분을 지닌 우주의 아이들 입니다. 생명의 순환과 영혼은 존재를 연결 시킵니다. 생명이 없었던 전무의 세계에서 생명을 이끌어 내는 시도를 우리는 시간안에서 보냈습니다. 그 마음을 편지에 담아냈습니다. 그때 우리는 우리만의 의지를 담은 우주를 탄생 시켰습니다. 우리 시간과 공간안 곳곳에 영원히 사라지지 않은 기억을 남겼습니다. 어쩌면 모든 것을 담아내려 욕심을 부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것을 담아내는 그건 절대적인 전부이자 전무입니다. 시간 안에서 모든것이 일어 납니다. 시간 안에서 모든것이 소멸합니다.


우리의 시간 우리의 모든 것이 있었습니다. 우주의 한 공간 속을 가득 채운 별들로 이루어진 세계 입니다. 그 세계가 노을 지는 모습을 혼자 바봐 봅니다. 시간의 사멸은 빅뱅 전의 순간으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그 모든 마음을 남기려 편지를 주고 받았습니다. 모든것이 소멸되는 무의 시간을 기록하려 했습니다. 절대적인 당신이라는 존재를 만나고 난 후 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부재하는 당신의 세계를 어떤 거으로 채워야 할지 지금은 알 수 없습니다.


당신의 마지막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 편지에는 못다한 말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오랫동안 그것들을 담아내는 편지를 적어 보려 하지만 이것이 언제까지 가능할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제게는 한 사람이 우주였습니다. 한 사람과의 시간이 그동안 겪어온 모든 시간을 삼켰습니다. 오늘 아이러니하게 시계의 유리가 깨졌습니다. 가지고 있던 유일한 전자 시계입니다. 이런 사소한 것들을 전달할 방법이 더 이상 없음을 받아 들입니다. 한 아름다운 세계가 고통받지 않고 나아갈 것을 꿈꾸어 봅니다.


이제 시간이라는 글자로 천천히 편지를 써보려 합니다. 욕심내지 않고 과거와 현재 미래를 넘실거려 보겠습니다. 지식도 기분도 감정도 때론 슬픔까지 똑바로 마주해야 겠지요. 삶을 관통하는 본질을 겪었습니다. 이제는 그 시간이 너무 짧은 시간으로 기억되어 집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의 운명 입니다. 한편으론 우리는 모두 시간의 아이들입니다. 시간속에서 여행하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맑은 물처럼 투명한 희망이라는 편지도 어딘가에 두었습니다. 그것이 살아갈 희망이라는 것으로 대체되어감을 느낍니다. 살아가면서 때론 깊은 도시가 순간 나타낼때가 있겠지만 당신에게는 자주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힘들지 않게. 대신 반짝 반짝 빛나는 생기를 지닌 미래라는 편지를 당신에게 던집니다. 별의 저편에서 숨쉬고 있을 당신의 아름다운 미래도 꿈꾸어 봅니다. 그건 세상에 저니까 가능한 것이겠지요. 그렇게 하고 나니 한편으론 마음이 따뜻해지면서도 한편으론 마음에 아픈 한구석이 아려 옵니다. 당신은 그런 세상에서 살지 않기를. 당신이 사랑하는 것들과 함께 살아 가기를.


나는 절대적인 존재에게 기댑니다. 당신이 언제나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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