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26일
거대한 방
톡톡 톡토톡 토독 톡톡…..
방이 있다. 10억 명이 충분히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방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당신을 비롯한 10억명은 이미 그 방 안에 들어가 있다.
커다란 크기에도 불구하고 방의 디자인은 아주 독특해서 방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서로서로 아주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쉽게 접근 할 수 있고 어깨를 툭툭 건드릴 수 도 있다.
날마다 방 안을 돌아다니는 것, 이것이 이 방에서 일어나는 전부다. 어디를 가든지 사람들이 당신을 따라다니며 당신의 어깨를 두드린다. 부드러운 손짓도 있고 단호한 손짓도 있지만 원하는 건 모두 같다. 바로 당신의 시간과 관심이다.
당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고 부탁을 하는 사람도 있다. 물건을 팔고 싶어 안달인 사람도 있고 당신의 물건을 사려는 사람도 있다.
개인적인 소식을 전하거나 최근 다녀온 여행 사진을 보여주는 사람도 있다. 자기가 벌이는 사업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방 안에 계속 함께 있었는데도 보고 싶었다며 껴안고 뽀뽀를 퍼붓는 사람도 있다. 사소한 행동이나 생각을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사람도 있는데 그는 지금 “치즈버거를 먹고 있다?”며 먹고 있던 햄버거를 번쩍 들어 보여주고 있다.
여러 명이 한꺼번에 다가오는 경우도 있다. 당신은 이미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또 다른 사람이 접근하면 누구와 대화를 나눌 것인지 정해야 한다.
하지만 보통 당신은 사람들이 이렇게 한꺼번에 접근하더라도 능숙하게 다룰 수 있고 그 와중에도 원하는 다른 사람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방 안에 있으면 지루할 틈이 없다. 늘 무슨 일이든지 일어나고 배울 것도 많다. 그렇지만 10억명의 사람 중에서 당신에게 중요한 사람은 20명에서 30명 남짓이다. 그들에게는 최대한 자주 찾아가려고 노력하고 그들이 찾아오면 당신의 기분도 좋아진다.
톡톡 톡톡 톡토톡 톡톡……
두드림은 하루 종일 멈추지 않는다. 거대한 방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상호작용이라는 축제는 끝이 없다.
방 안의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당신에게도 개인적인 공간은 있다. 먹고 자고 많은 시간을 그곳에서 보낸다. 당신의 공간은 좋은 가구들로 채워져 있고 꽤 안락하다. 하지만 벽이 없다. 그래서 원하면 누구나 쉽게 들어올 수 있다. 자고 있으면 메시지를 남기고 가는데 가끔은 아주 급하다는 메시지도 있다. 매일 아침 당신 앞에는 새로운 메시지가 12개 정도 쌓여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방 안에만 처박혀 있다 보니 피로가 밀려온다. 모든 두드림에 대꾸해주다 보니 기운이 다 빠진다. 이제 당신은 사람들의 요구, 부탁, 거대한 방의 이상한 기운으로부터 벗어나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그래서 당신은 며칠 동안 휴가를 다녀오기로 결정한다. 며칠 방을 떠나 아무도 당신을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가기로 한다. 당신은 그러한 장소가 어디인지도 알고 있다. 높고 푸른 하늘 아래 신선한 공기가 가득한 곳, 새들의 지저귐과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만 가득한 곳, 아무런 인기척이 없는 그런 곳에서 홀로 조용히 앉아 자유롭게 떠도는 마음을 느끼고 싶다.
일단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졌다. 왜 이제야 이런 생각을 한 걸까?
작은 가방에 짐을 챙겨 출구를 찾는다. 잠시 후, 벽에 이르렀다. 문이 있는지 살펴 보지지만 보이지 않는다. 어느 쪽을 살펴봐도 끝없는 벽뿐이다. 이유는 없지만 당신은 그냥 그런 느낌이 들어 왼쪽으로 간다.
벽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출구를 찾는다. 그 와중에도 몇 분에 한번씩 사람들이 다가와 어깨를 두드린다.
적당히 대구하고 문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지만 아무도 속 시원히 대답해주지 못한다. 모른다고 하거나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할 뿐이다.
문을 찾는다는 질문에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사람도 있다. 잠깐 이지만 마치 알쏭달쏭한 수수께끼라도 푸는 것처럼 당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본다.
그런데 딱 한 명, 밀짚모자를 쓴 젊은 여자가 반색을 하며 이렇게 말한다.
“문이요? 저한테 그걸 물어보시다니! 저도 몇 년째 찾고 있어요. 혹시 찾으면 저한테도 알려주실래요? 여기서 잠깐이라도 벗어날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하겠어요!”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어느새 다른 여자가 끼어들어 젊은 여자의 어깨를 두드린다.
"행운을 빌어요!”
젊은 여자가 손을 흔들며 방긋 웃는다.
“저한테도 꼭 좀 알려주세요!”
계속 걷는다. 몇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 문을 찾지 못했다. 이상하다. 이 방에 들어오기 전에는 어디로든 훌쩍 떠나는 게 무척 쉬웠는데 말이다. 어렸을 때는 온 식구가 호숫가로 떠나기도 했는데. 호숫가 오래된 통나무 집에서는 바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한 채 2주씩 지내다 오곤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도시에 살 때에도 주말마다 친구들과 함께 산이나 바다로 훌쩍 떠나곤 했다. 그때는 그게 전혀 어렵지 않았고 누구나 그렇게 했다.
마침내, 결국 포기하기 직전에, 벽에 난 커다란 구멍을 발견했다. 구멍 주위에는 몇몇 사람들이 서성이고 있다. 하지만 곧이어 하나 둘 등을 돌린다. 마치 구멍이 있다는 걸 모르는 체하거나 알지만 무슨 상관이냐는 듯.
정확히 말하자면 문은 아니다. 높이 3미터에 폭이 1.2미터쯤 되는 아치 모양의 트인 공간에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높은 턱이다. 턱은 넓고 평평해서 그 위에 앉아 바깥을 내려다보기 딱 좋았다. 마침 아무도 없다.
턱에 앉아 바깥을 내다본다. 바깥은 상상했던 모습과 다르다. 높은 산, 넓은 계곡, 굽이굽이 펼쳐져 있는 장식처럼 듬성듬성 반짝이는 불빛이 전부다. 방안 사람들이 크리스마스트리에 장식하는 작은 전구처럼 말이다.
몇 분 후, 눈이 적응하고 보니 반짝이는 불빛은 트리 장식이 아니라 진짜 별이다! 저 밖은 바로 우주인 것이다. 이 방이 지구에서 떨어져 나와 홀로 우주를 떠다니고 있는 것일까? 마치 빙하에서 떨어져 나와 우주를 떠다니고 있는 것일까? 마치 빙하에서 떨어져 나와 홀로 떠다니는 거대한 얼음 덩어리처럼? 그런 빙하를 ‘독립’빙하라고 부른다는 기사가 떠오른다. 그렇다면 사람들을 가득 싣고 우주를 떠다니는 커다란 방은 과연 뭐란 말인가?
선택은 두 가지다. 다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밖으로 나가볼 것인가.
후자는 위험 부담이 크다. 바깥세상에서도 숨을 쉬거나 유쾌하게 돌아다닐 수 있을까? 혹시 까마득한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는 건 아닐까?
밖으로 나갔는데 다시 돌아오고 싶을 수도 있고 혼자서는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 먼저 밖으로 나간 사람들이나 되돌아오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 저 밖에 있을까?
문득 아무도 바깥으로 나간 사람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곳은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가는 세상이니까.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는데 누가 어깨를 두드린다. 평소 같으면 당장 뒤돌아 답했겠지만 이번에는 약간 망설인다. 누구인지 궁금하다. 혹시 아는 사람일까? 아니면 전혀 모르는 사람? 하지만 바깥 광경에서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다. 이 방에 들어온 이후 다른 사람의 접근을 완전히 무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무모한 짓 같기도 하지만 왠지 그게 옳다는 생각이 든다.
턱 위에 올라서서 한 손으로 가장자리를 잡고 균형을 잡는다. 그리고 저 아래 뭐가 있는지 보려고 바깥으로 몸을 약간 기울인다. 별들, 끝이 보이지 않는 별들 뿐이다.
그때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따라왔다고 화내지 않으실 거죠?”
익숙한 목소리다. 밀짚모자를 쓴 젊은 여자가 기어오르며 말한다.
“내 손을 잡아요.”
“고마워요.”
여자가 당 옆에 선다.
“나는 더 이상 못 버티겠어요.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오직 이것뿐이에요”
젊은 여자는 마치 무대 위의 가수와 같은 몸짓으로 우주를 향해 팔을 뻗는다.
“준비됐나요?”
당신이 묻자 여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당신과 그녀는 눈을 감고 무릎을 약간 굽힌 다음 밖으로 힘차게 뛰어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