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12일
영화 <해피엔드>(2024)는 일본계 미국인 감독 네오 소라(Neo Sora)의 장편 데뷔작이다. 가까운 미래 도쿄를 배경으로 한 청춘 드라마로 2024년 베니스 국제영화제 오리종티 부문에서 첫 선을 보였으며, 이후 토론토, 뉴욕, 부산 등 여러 국제 영화제에 초청되었고, 2025년 4월 30일에 한국에서는 공식 개봉한 영화다. 디스토피아 영화로 주인공들은 사회로 나가기 바로 전의 시기, 한국으로 치면 고등학교 3학년 청소년들의 우정과 성장 이야기를 어른들의 세계(권위주위)에 맞서면서 보여준다.
지구와 우주, 그리고 에너지를 설명하는 가장 명료한 법칙이 있다. 바로 열역학 제1법칙, "에너지는 형태를 바꿀 수는 있어도 새로 만들어지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이다. 존재하는 모든 에너지는 변형되거나 이동될 뿐 무(無)로 사라지거나 무(無)에서 생겨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세상을 설명하는 물리학의 가장 명료한 법칙이면서, 어쩌면 사람의 인생을 꿰뚫는 철학이기도 하다. 우리가 사라져도 우리를 이루는 에너지는 어딘가로 흘러간다는 놀라우면서도 자명한 사실을 알려준다.
어떤 시대를 살아갔던 그 시대의 어른들도 각자의 유년시절이 있었다. 유년과 성년의 경계는 모네의 그림속 수련이나 연못처럼 흐릿하기도 하다. 경계를 통과하는 것은 시간이 흐르는 것 만큼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면서도, 때론 성장의 아픔과 이별을 동반하기에 기억 속 문신을 남기기도 한다.
유년과 성년의 경계. 그 끝자락에 아슬하게 걸쳐 있는 시기의 아이들은 하늘의 별처럼 반짝거리며 나아갈 준비를 한다. 어떤 별은 유성처럼 빛나게 나아가고, 어떤 별은 우주 하늘의 어딘가에 조용하고 얌전히 안개처럼 머무른다. 그리고 그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은 나이가 들어 기억이 흐릿해져도 분명히 어딘가에 존재한다. 마치 열역학 제1법칙처럼.
유년시절의 우정은 아름다움과 아픔을 내포한다. 꿈과 우정과 사랑을 에너지로 매개삼아 생기있는 추억을 남긴다. 그 시절의 꿈들은 때론 나이가 들며 변형되고, 사랑은 여러 사람을 거치기도 하며, 우정도 오랫동안 영원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우정이 무엇이었는지 마음이 기억하는 각자만의 소리는 언제까지나 우리 안에서 메아리처럼 울린다.
유우타와 코우는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소꿉친구이자 절친한 친구로 그들은 늘 같은 친구들과 어울리며 음악과 장난 속에서 나날을 보낸다. 고등학교 졸업을 얼마 앞 둔 어느 날 밤, 몰래 학교에 숨어든 두 사람은 어마어마한 장난을 계획한다. 다음 날, 장난을 발견한 교장은 분노하며, 학교에 24시간 학생들을 감시하는 AI 시스템을 도입하는 소동으로까지 번진다. 이 사건을 계기로 코우는 그동안 쌓여왔던 자신의 정체성과 사회에 대한 위화감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되고 유우타는 이전처럼 계속해서 친구들과 즐거운 일만 계속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두 사람의 관계는 두갈래 길처럼 갈라지기 시작한다.
유년시절의 경계가 언젠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그 시절 막바지에 보았던 일본 영화 <GO>(2001)를 떠올린다. 재일 조선인 청소년의 사랑과 정체성을 다룬 그 영화처럼, 영화 <해피엔드> 역시 사회라는 벽 앞에서 젊은 존재가 스스로를 직면해가는 과정을 그린다. 그러나 <해피엔드>는 보다 말수가 적고, 느리며, 감각에 집중한다. 이 점은 이와이 슌지 감독의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을 연상케 하며 음악과 이미지가 대사보다 많은 것을 전달한다.
카메라는 아이들의 몸짓을 따라가고, 시선은 침묵 속에 머무른다. 프랑스 철학자 메를로-퐁티의 말처럼, 이 영화속 주인공들에게는 각자 "지각하는 몸"이 있다. 그들의 몸짓, 눈빛, 그리고 거리에서의 느릿한 걸음 하나까지 감정과 충돌하며 무언가를 생성하며, 영화는 단순한 우정의 이야기에서 멈추지 않고, 사회와 권위라는 시스템 속으로 나아가고, 몸으로 말하고 사랑하며, 저항하는 존재들에 대한 섬세한 기록의 형태를 보인다.
영화는 테크노와 강력한 비트, 몽환적인 사운드를 대동하여 젊음과 빠른 세대의 감정을 표현한다. 감독 네오 소라는 아버지인 세계적인 음악가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적 철학을 닮아 있기도 한것처럼 느껴진다. 그는 다큐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를 연출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영화 <해피엔드>는 단순한 청춘 영화를 넘어 감독이 아버지에게서 받은 감각의 유산을 통해, 청춘이라는 이름의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을 서정적으로 매듭지은 기록물의 느낌도 든다.
"우정이란, 시대가 바뀌어도 지켜낼 수 있는 것인가?"
그 질문은 관객의 심장 어딘가를 통과한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도, 관객들은 그 질문을 안고 혼자 걷게 될 것이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어쩌면, 유우타이거나 코우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