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16일
한번만,
마지막으로서 한번만 이 무진을,
안개를,
외롭게 미쳐 가는 것을,
유행가를,
술집여자의 자살을,
배반을,
무책임을
긍정하기로 하자.
마지막으로 한번만이다.
꼭 한 번만,
그리고 나는 내게 주어진
한정된 책임 속에서만 살기로 약속한다.
전보여, 새끼손가락을 내밀어라.
나는 거기에 내 새끼손가락을 걸어서 약속한다.
우리는 약속했다.
그러나 나는 돌아서서
전보의 눈을 피하여 편지를 썼다.
<갑자기 떠나게 되었습니다. 찾아 가서 말로써
오늘 제가 먼저 가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만
대화란 항상 의외의 방향으로 나가 버리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렇게 글로써 알리는 것입니다.
간단히 쓰겠습니다. 사랑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제 자신이기 때문에,
적어도 제가 어렴풋이나마 사랑하고 있는
옛날의 저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옛날의 저를 오늘의 저로
끌어 놓기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할 작정입니다.
저를 믿어 주십시오.
그리고 서울에서 준비가 되는대로 소식 드리면
당신은 무진을 떠나서 제게 와 주십시오.
우리는 아마 행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쓰고나서 나는 그 편지를 읽어봤다.
또 한번 읽어봤다. 그리고 찢어 버렸다.
덜컹거리며 달리는 버스 속에서 나는,
어디쯤에선가,
길가에 세워진 하얀 팻말을 보았다. 거기에는 선명한 검은 글씨로
<당신은 무진읍을 떠나고 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라고 씌어 있었다.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김승옥이 23세때(1964년)발표한 단편소설.
김승옥의 대표작으로 거론되며 한국 문학계에서도 걸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라 하는데.
나는 왜 이 소설을 읽고 기분이 좋지 않았는지 지금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뭐 어떻다고 라는 마음을 가졌던것 같다. 지금 아는건 그것을 나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상대성이다. 내 기분이라던지 나를 둘러싼 환경이라던지 사회의 모습이라던지 이런것들의 상호연관성과 객관성의 상실 같은 부분을 일정한 부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무능하고 무기력한 현대인을 상징하는 인물인 주인공 "윤희중" 이 비단 내가 아니라는 제3자적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