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카뮈와 르네 샤르의 편지

2017년 12월 16일

by Taehun Roh


위로에 대하여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위로 중 하나는 타인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입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볼 때 마음이 풀어지는 경험을 다들 해 보셨을 겁니다. 한사람의 아름다움도 그런 위로를 줍니다. 프리모 레비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이야기 이것이 인간인가에는 이탈리아 민간인 노동자인 로렌초가 나옵니다. 아우슈비츠에서 로렌초는 여섯 달 동안 매일 레비에게 빵 한 쪽과 자기가 먹고 남은 배급 음식을 갖다 주었습니다. 누덕누덕 기운 자기 스웨터를 선물로 주고 레비를 위해 이탈리아로 엽서를 보내 주었고 답장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에 대해 그는 어떤 보답도 바라지 않습니다. 레비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지금 내가 이렇게 살아 있게 된 것이 로렌초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물질적인 도움 때문이라기보다는 그의 존재 자체가 나에게 끝없이 상기시켜 준 어떤 가능성 때문이다. 선행을 행하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평범한 그의 태도를 보면서 나는 수용소 밖에 아직도 올바른 세상이, 부패하지 않고 야만적이지 않은, 증오와 두려움과는 무관한 세상이 존재할지 모른다고 믿을 수 있었다. 저왁히 규정하기 어려운 어떤 것. 선善의 희미한 가능성, 하지만 이것은 충분히 생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로렌초는 인간이었다. 그의 인간성은 순수하고 오염되지 않았다. 로렌초덕에 나는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을 수 있었다.


무슨일을 겪든 자신이 한 인간이란 것을 잊지 않게 자극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위로가 될 겁니다. 마지막 잎새 한 잎조차도요.


책은 우리에게 대놓고 무엇을 가르쳐 주는 것도, 위로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책은 자꾸 자신을 만나게 합니다. 돌아보게 합니다. 이 돌아봄의 의미는 큽니다. 우린 어떤일을 완성하기도 전에 그 결과부터 그려 보곤 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런 순간에 우린 인생을 하나의 도구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바로 돌아봄이라는 행위를 통해 우리는 인간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돌아봄을 통해서 우리의 현재는 책 속의 새 챕터가 됩니다. 우리는 그 새로운 챕터에서 뭔가 새로 시작할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자신을 재발견하게 됩니다. 조금씩 말할 수 있게 합니다. 과거의 고통조차도 의미를 갖게 되고 우릴 도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슬픈 기쁨이란 것도 있습니다.


물론 모든 책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현실을 덮어놓고 무마하려는 게 목적인 빤한 책은 그렇게 못 합니다. 말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한 게 아니라 말하기 쉬운 것들을 이렇게 저렇게 듣기 좋게 변주했을 뿐인 책은 그렇게 못 합니다. 진정한 위로는 진정한 희망이 그러하듯, 상황을 좋게 보는 데서 생기는 게 아니라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는 데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가사 도우미 아주머니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 자신이 있는 것이 귀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걸 알게 된 자체가 그녀에게 위로였을 겁니다. 당신을 위해 이런 사람이 되고 싶어, 라는 깨달음. 이것이 자신을 위한 최고의 위로법일 겁니다. 누군가의 위로에 앞서 우리에겐 비참하게 찢긴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비참하게 찢긴 상처투성이인 자신을 스스로의 힘으로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고 느끼는 것, 이거야말로 정말 근사한 일입니다. 최고입니다. 말할 수 없었던 것을 말로, 자기 삶으로 표현하게 되면 정말 멋진 일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위로는 자기 자신관의 화해이고, 타인을 향한 용기이고,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그러니까 진정한 위로는 기억이 그러하듯 자기안에서 일어나는 자기 창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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