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27일
요즘 세 시절을 오가기도 여기저기 끄적거린 글들을 다시 살펴보고 있다.
글을 모으는 이 작업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늘 그랬듯 이 작업의 끝이 다른 곳으로 이어질 것은 안다. 퍼펙트데이즈 영화에서 주인공의 마음. 루리드가 부른 퍼펙트데이. 나의 퍼펙트데이. 연결되어 있는 많은 사건들. 우연과 필연을 동반하는 시공간속의 사건.
쇼팽의 녹턴은 밤의 이란 뜻이다. 야상곡.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낭만적인 곡들. 쇼팽은 평생 고향을 그리워 하면서 살았다고 한다. 이방인으로서의 상실감. 그리움. 그런것들이 곡에 녹아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시절은 좋으면 지나간다. 바라보는 진실. 그 깊은 고독과 허무의 것들은 무게가 깊다.
책을 읽으며 한 줄 한 줄 마음에 보석 같은 문장들을 아로새기는 기쁨, 세상이 힘주어 가르쳐주지 않아도 내가 직접 나서서 세상의 숨져진 진실을 찾아보는 기쁨. 이런 기쁨은 누구도 함부로 빼앗아갈 수 없는, 내면의 요새 깊숙이 간직된 보물이 아닐까.
나는 매일 그 내면의 창고 속에 차곡차곡 쌓인 마음의 알곡들을 힘들때마다, 배고플 때마다, 슬플때마다 꺼내 먹으며 '내 안에 차오르는 힘'을 느낀다. 누군가 나에게 편안하게 배달해주는 수동적인 행복이 아니라 내가 내 힘으로 싹을 틔우고, 물을 주고, 마침내 열매를 캐내는 이 행복이 좋다. _정여울
하루키 단편선
나의 인생은 이미 많은 부분을 상실하고 말았지만, 그것은 한 부분이 끝났을 따름이며,
이제부터 무엇인가를 거기에서 얻을 수가 있을 거라구요.
만일 예술적 감동도 아니고, 피부에 와 닿는 충격이 아닌 것이라도 괜찮다면, 제 마음에 남아 있는 한 장의 그림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있겠어요. 한 장의 그림에 얽힌 이야기라고 해야 옳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거라도 괜찮을는지요?"
"물론 좋습니다."
"1968년의 일입니다."하고 그녀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는 애당초 화가가 될 작정으로 미국 동부의 미술 대학에 유학했었는데, 졸업 후에도 그대로 뉴욕에 남아서 자활하기 위해-혹은 제 자신의 재능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라고 해도 좋지만-그림바이어 비슷한 일을 시작했었지요. 말하자면 뉴욕에 있는 젊은 무명화가의 아틀리에를 돌면서 소질이 돋보이는 작품을 찾아내어, 그걸 사들여 도쿄의 화상에게 보내는 일이었지요. 처음 얼마 동안은 제가 컬러의 네가를 보내면, 도쿄의 스폰서가 그 중에서 마음에 드는 걸 골라서, 그걸 제가 현지에서 사들이는 시스템이었는데, 점차 신용을 얻어서 저의 재량만으로 직접 그림을 살 수 있게 됐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저는 그리니치 빌리지의 화가들 세계에 상당히 확실한 정보망이랄까, 소식통 같은 걸 갖고 있었지요. 덕분에 누가 재미난 걸하고 있다는 등, 누가 돈에 쪼들리고 있다는 둥 하는 정보가 전부 저의 귀에 들어왔죠. 1968년의 그리니치 빌리지라는 거, 그야말로 대단했다구요, 그 즈음의 일을 알고 계신지 모르겠네?"
"대학생이었습니다." 하고 나는 말했다.
"그럼 아시겠네요." 그녀는 혼자서 수긍했다.
"...거기엔 모든 것이 있었지요. 진짜 모든 것 말예요. 제일 위로부터 제일 아래까지 말예요. 잡것이 섞이지 않은 진짜부터 백 퍼센트 가짜까지. ...저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 그 시절의 빌리지는 마치 보물섬 같은 거였답니다. 확실한 감식안만 가졌다면, 다른 시대의 다른 장소에선 좀처럼 찾아볼 수 없을 멋진 사람들이랑, 힘있고 참신한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답니다. 사실 말이지, 제가 그 당시 도쿄로 보낸 작품의 대부분은 지금 상당한 값이 붙어 있지요. 그 중 몇 개만이라도 제 자신을 위해 챙겨 두었더라면, 저도 지금 '소'재벌쯤은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만, 그 시절엔 진짜 가진 돈이 없었거든요. ...유감이지 뭐예요."
그녀는 무릎 위에 놓았던 양쪽 손바닥을 위로 벌려 보이고는, 빙그레 웃었다.
"하지만 그 당시 한 장, 딱 한 장, 예외적으로 제 자신을 위해 사놓은 그림이 있었답니다. '택시를 탄 남자'라는 게 그 그림의 제목이죠.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건 예술적으로 우수한 것도 아니었고, 기법 상으로 우수한 것도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해서 거친 대로 재능의 싹이 보이는 것도 아니었답니다. 작가는 무명의 망명 체코슬로바키아 화가로, 무명인 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러니 물론 비싼 값도 불을 리 없지 않아요? ...어때요, 이상하죠? 타인을 위해서는 값나가는 그림만 잔뜩 고르고, 저 자신을 위해서는 단 한 장의 전혀 값어치 없는 그림이라니요....하지만 결국 그런 거 아니겠어요."
나는 적당히 맞장구를 치고 이야기가 계속되기를 기다렸다.
"제가 그 화가의 아파트로 간 건 1968년 9월의 오후였지요. 비가 막 개고, 마치 뉴욕 전체를 통째로 찌는 것 같은 날씨였지요. 그 화가의 이름은 이제 잊어버렸어요. 아시다시피 동유럽계 사람들의 이름이란 미국식으로 고치지 않으면 굉장히 기억하기가 힘들잖아요. 그를 소개 해 준 건 저하고 같은 아파트에 살던 독일인 화학도였습니다. 그가 저의 방문을 노크하고 이렇게 말하지 않겠어요. '이것 봐 도리코, 내가 아는 사람으로 아주 돈이 궁한 환쟁이가 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