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에게#9

폭풍속으로

by Taehun Roh

폭풍이 오고 있다. 하늘에서는 비가 쏟아지고 세찬 바람이 부는, 세상에 뿌려지는 작은 혼돈.


여름의 태양과 열기속에 우리는 서로에 빠졌다. 세찬 비 바람을 피하는 장소에 마주 앉았다. 함께 길을 걷고 대화를 나눴다. 그 대화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지금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좋은 인상을 보여주려 노력하는 시간. 조금은 다른 사람인 척 했을지도 모른다. 단순히 좋은 모습보다 가슴속 담고 가는 이상과 현실의 경계를 조금 넘나들었을지도 모른다. 어떤 경험을 했고 지금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 가겠다 라는 그런 종류의 말들. 그때, 시작하는 우리는 우리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진 않았다. 현재나 내일만이 중요하던 시절. 단지 눈앞에 있는 서로를 바라보고 그저 함께라면 그것으로 족했다.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단순하게 사랑 했다. 모든 것을 던지고 모든 감각은 서로를 향했다. 함께 하지 않는 시간 속에서도 마음으로 연결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생각은 늘 어딘가로 귀결되었다.


소중한 사랑의 마음은 물로 쓴 글자다. 틀림없이 존재했던 시공간의 모든 기록들. 그것들 전부 가져다 어딘가에 기록하거나 가슴이 터질 정도로 소중했던 것은 몸 어딘가에 문신을 남기고 싶다. 사랑하는 마음과 함께 모든 감정이 흘렀다. 감정은 때론 증폭되었다. 그러나 이 감정이 절벽 아래로 떨어질 것 같지는 않았다. 작은 다툼이 있었지만 그 모든 말들역시 사랑의 말들이다.


둘만의 세계. 그 어떤것도 둘의 세계에 초대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 하루를 보내고 일년이 흐르고 이년이 흐르고 십년이 흘렀다. 우리 시간은 블랙홀 처럼 정지된 시간 이었고 사랑은 더욱 깊어져만 갔다. 시작은 급작스런 사건 이었다. 어느 순간 우주가 펑. 어느 순간 태양계가 펑. 어느 순간 지구에 생명이 펑 하는 것처럼 예측이 불가능한 일생 일대의 사건처럼.


당신이 부재한 지금 세계 곳곳에 슬픔이 베여 있다. 그저 같이 있는 시간에 모든 감각을 열어 두었기 때문에 조금 후 미래 세계, 태풍의 세계를 깊이 대비 하지 않았다. 사랑은 완성 되었기 때문에 우리의 행복한 시절은 다시 계속될 것이라고 그게 아니어도 일상에서 재현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다. 그런식으로 전개되지 않음을 너무 늦게 알아 차렸다. 폭풍과 태풍의 시기를 사랑의 시작과 함께 대비를 해야 했다. 하지만 그것은 말처럼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였으리라. 슬픔의 세계는 대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쁨과 충만함의 세계에서는 더더욱 위기를 상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만약 그런 식으로 준비하며 살아 왔다면 우리는 100% 사랑을 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둘로 충분했고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현재의 현실은 비현실적이며 함께한 시간만이 리얼한 세계라 느껴진다.


사랑하는 서로가 있으면 어떤것도 두렵지 않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 가지지만 부재의 시간이 길어지고, 서로의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없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혼돈. 무질서의 세계로 빨려 들어감을 느낀다. 우리는 부재의 세상에서 답답함을 느끼고 있다. 이를 극복하고 넘어서기 위해 둘다 최선의 것을 하기 시작한다.


혹독한 시련의 시간이 왔다.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어느 누구도 대신 해주지 않는다. 무언가를 기다리고 긍정의 신호가 올때까지 버틸 수 밖에 없다. 폭풍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길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녀도 나도 각자의 상황이 있다.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고 서로가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머릿속에서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습관의 세계는 나의 발목을 잡는다. 심연으로 끌어 들인다. 그런 습관의 세계에 있을 수 없다. 그녀는 그녀의 방식으로 나는 나의 방식으로 어둠 속을 넘어 탐험해 나가고 그 탐험의 끝에 일생동안 가져갈 꿈의 세계를 재발견 해내야 한다. 그 반짝임의 세계가 우리를 서로에게 인도할 것이다. 하고, 두드리고, 실패하고, 넘어지고, 일어서고, 다시 하고. 이것들을 연결해 나가야 한다. 다른것은 아무것도 필요없다. 그녀를 구하러 가야 한다. 그녀도 그것을 원하고 있을 거라는 질문은 하지말자. 생각하자. 삶은 한번이다. 지금 현재는 계속해서 과거로 밀려나고 있다. 사랑이 추억이 되어서는 때론 안되는 것이다.


다른 것은 생각하지 말자. 그녀를 사랑하고 사랑하는 그녀를 되찾아야 하는 것을 생각하자. 그게 내가 현재 할 수 있는 전부다. 그녀를 믿고 내가 기다려야 하는 시기가 온다면 기다려야 한다. 사랑하는 그녀를 잃고 싶지 않다.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 그게 나의 전부다.


다른것들은 부차적인 세계. 나의 꿈의 세계로. 한발 한발 발걸음을 내딪는다. 도착한 세계는 더이상 폭풍은 없고 그 여름의 태양이 떠있고 우리는 마주하고 먹고 마시고 걷고 잠을 자고 일어난다. 우리 둘이서 폭풍을 무력화 시킬 것이다. 앞으로도 그 어떤 커다란 폭풍이 온다 하더라도 정면으로 들어가 태풍의 중심에 서서 혼돈의 바깥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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