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에게#10

손편지

by Taehun Roh

정말 오랜만에 편지지를 샀네요. 처음에는 편지지를 샀지만 몇일 공백으로 두어보자라고 마음을 먹었어요. 하지만 의지와는 반대로 펜을 잡아버렸습니다. 머릿속에 있는 것이 정리될지 모르겠지만, 잘 표현될지도 모르겠지만 때론 글이 말보다 효과가 좋을때가 있기에 글이 가지고 있는 정제됨을 빌려 보면 좋겠어요.


꾸미지 않고 정직하고 담담하게 말해보려 합니다. 우리는 학교에 들어가기 시작할 무렵부터 '이렇게 해야만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좋은거야'라는 사회적 통념 같은 것을 학습하고, 교육받고, 때론 강제로 습득을 강요받곤 합니다. 소년 소녀였던 시기를 거쳐 성년이 되고 직장에 들어가서 좋던 싫던 소위말하는 사회속에서의 '나'를 바깥 세계와 피팅시켜요.


그 과정에서 스타일이라는 것이 생겨나는데 몸에 맞는 옷처럼 우리의 머리스타일처럼 우리는 그것에 익숙해져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하지만, 우연도 늘 존재하죠. 지금 이루고 있는 이 많은 것들 또한 우연의 결과 입니다. 혼돈속의 질서를 만들며 우리는 살아가고 있어요.


위에까지 써놓고 한동안 쓰질 못했답니다. 하나의 이유는 특이한 색깔의 펜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입니다. 이상하게 어디서도 찾을수 없었어요. 평소 물건을 정리하고 일상적으로 매일 쓰는 물건을 가지런히 두는 편인데 어디론가 사라진 펜이 다시 나타나기까지 시간이 몇일 걸렸어요. 그래서 쓰고 싶은 말들, 생각들은 많은데 잊혀지고 부유하고 낙화되어 쓰지 못한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왜인지 그말들과 생각들은 어딘가로 사라져 더이상 찾을 수 없었어요.


그래도 괜찮겠죠?


이렇게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이유가 뭘까요. 그대의 생각과 표정들에서 어떤것들은 읽어지지만 대부분의 것들이 나에겐 미지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대화를 나누었지만 때론 뜻모를 단어나 문장을 독백했어요. 오해를 남길수도 있을까요? 오해를 남기면서도 마음이나 생각 감정을 전달하는 행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요?


내글이 부끄러워 글을 쓰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글을 쓰고 난후에 얼굴이 빨개지곤 하는데, 아마 당신은 부끄러운 글을 한두편 보았을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언젠가 쓴글중에 바다에서라는 글은 비교적 마음에 듭니다. 무언가를 염두에 두고 썼어요. 평소와는 틀리게.


어쩌면 내가 엄살을 부리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나는 마음이 이렇게 커지고 있고 당신을 배려하고 있는데 나라는 사람을 오해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합니다. 그래서 이 편지는 붙이지 못한 바다로 띄워진 편지가 될 확률이 높아요.


A아니면B. 삶은 두방향속에 하나의 선택인가요. 무수히 많은 선택들의 결과가 현재라는 상황을 이루고 있어요. 지금이라는 현재는 미래라는 오지않은 시간을 향해 나아가고 있겠죠. 모두 행복을 바라죠. 행복의 형태나 모습은 각자 틀리겠지만 대부분 '미래에 올 무언가' '오지 않은 충만감' '웃음과 채워짐' 이런것을 생에서 채워나가려 하겠죠. 하지만 좋았던 시절이나 행복은 짧은 순간으로 기억되고, 실제 우리는 늘 현재를 살아내고 있습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층위뒤로 과거에 쌓여있는 어떤것들을 자양분으로 삼고, 어떤 것은 문신처럼 새겨내며, 또다른 오지 않은 것들을 향해 우리는 나아갑니다.


어떠한 목적도 어떠한 이유도 없이 그저 좋은 마음이 들때가 있습니다. 숲속에서 청명하게 부는 바람, 바다와 파도소리, 달빛, 아이들의 웃음소리, 해가지는 저녁, 풀잎에 매달린 낙화하는 물방울. 이런 것들은 '왜'라는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런식으로. 그런 존재에 기대어 용기를 내어 말해보려 해요.


이성적 감정이나. 그런것을 넘어 단지 그곳에 그 사람이 잘살아가고 있구나, 그 사람이 미소짓고 있구나하며 마음이 들뜨고 좋아지는 이런 것을 무엇이라 잘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런식으로 존재 사람이 궁금해지곤 합니다. 그래서 제 사적인 세계를 보여주면서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사람들의 말과 시선으로 나라는 사람을 똑같이 바라볼까 생각하는 다소 유치한 아이같은 마음도 가졌습니다. 이제는 이런 사소한 부딪힘같은 것들이 지내온 시절로 생기지 않을 수도 있을것 같고, 언젠가 이야기 드렸던 것처럼 그냥 응원하고 현재라는 시공간을 잘 채워나가길 바래요. 씩씩하게 나아가는 거에요. 누가 뭐라하든 말이죠.


이 편지는 읽고 버리면 됩니다. 우리는 태어나 무언가가 되어갑니다. 되어짐속에 살아가는 현재또한 시시각각 빛깔이 변해갑니다. 오늘은 바깥으로 나오니 차가움이 쏟아집니다. 겨울. 추위. 구름. 주머니에 손을 넣고 빠른 걸음을 걸어가는 사람들. 그것으로 충분해요.


편지를 다시 읽어보니 이상한 편지가 된 느낌이 들어요. 그래도 언제나 늘 응원한다는 말과 힘내라는 말을 전하고 싶었어요. 시몬드 보부아르의 삶에 대한 시각을 좋아해요. 그런 삶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시공간의 공백을 채우고 비우고 다시 채우는 일. 그렇게 나아가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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