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울의 소설읽는 시간에서
철학자 주디 버틀러는 말한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는 주체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후적으로 '기입'되는 것이라고. 남자는 여자를 사랑하고, 여자는 남자를 사랑해야 한다는 편견도, 남자는 남자답게 인형을 갖고 놀아서는 안 된다는 편견도, 여자는 여자답게 전쟁놀이에 열광해서는 안 된다는 편견도, 모두 사회와 과정에서 인간의 신체에 기입되는 정보들이다... 우리는 많은 것을 선택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인간에겐 자유의지가 있으니까. 인간에게는 기회균등의 원리라는 것이 적용되니까 하지만 실제 세상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어느 나라에서 어떤 지방에서 어떤 집안에서 태어나는가에 따라 우리 인생의 선택권은 지극히 제한된다. 우리가 가장 나답다고 여기는 대부분의 외적 조건들은 물론 성격이나 인간관계까지도 우리가 처한 외부 조건들이 우리의 신체에 기입한 결과라면, 우리는 그 기입된 정보의 출처와 생성 과정을 알아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