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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핫불도그 Mar 26. 2024

나윤선 12집

엘르

2024: Elles

한국을 대표하는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의 최신 앨범으로 통산 12집입니다. 음악 경력 30년에 빛나는 작품으로 원숙하면서 운치 있는 목소리에 각 곡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합니다.

인간의 목소리가 가장 멋진 악기라고 본다면 나윤선은 매곡에 다른 악기의 영혼을 불어 넣고 있습니다. 이 앨범의 가장 큰 특징은 선곡의 다양성 및 재해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재즈 디바들은 재즈 스탠더드와 송북 혹은 전통 팝 등을 자신의 레퍼토리에 반영하곤 합니다. 여기에 자신의 곡을 추가하기도 하고 동료 혹은 당대 작곡가들의 작품을 받아 부르기도 합니다.

앨범 <Elles(엘르, 그녀들)>의 경우는 이런 곡 선정의 방식을 따라가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선곡은 매우 광범위합니다.


아는만큼 보인다고 수록곡을 하나씩 알아볼까요?


선곡 감상하기


트랙1: Feeling Good

앤소니 뉼리와 레슬리 브리커시스가 1964년 초연된 뮤지컬 <The Roar of the Greasepaint – The Smell of the Crowd(유성페인트의 고함 - 군중의 냄새)> 곡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듬해 니나 시몬(1933~2003)이 <I Put a Spell on You>에 커버하였고 이 앨범은 시몬을 대표하는 블루스 및 보컬 재즈 작품이 됩니다. 시몬과 나윤선의 목소리는 아주 다릅니다. 두 재즈 디바의 다른 연출은 다른 보컬 재즈를 만들었습니다.


트랙 2: Cocoon

아이슬란드의 싱어송라이터 비요크(1965~). 센세이셔널한 복장과 퍼포먼스 그리고 아주 독특한 소프라노... 그의 2001년 4집 <베스퍼틴(저녁에 나타나는)>의 두 번째 곡이 "코쿤(누에고치)"입니다. 비요크의 오리지널로 남녀의 성적인 관계를 코쿤으로 형상화하여 표현하고 있습니다. 일렉트로니카 장르의 재즈화. 전혀 다른 스타일이 이렇게 연결됩니다.


트랙 3: I've Seen That Face Before (Libertango)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탱고 작곡가이자 반도네온 연주자인 아스토르 피아솔라(1921~1991)의 1974년 곡 "리베르탱고"는 누에보탱고의 정점에 있는 작품입니다. 자메이카 출신 모델, 배우, 가수인 그레이스 존스(1948~)가 1981년 5집 <Nightclubbing(나이트클러빙, 나이트클럽에서 놀기)>에 피아솔라의 곡을 편곡하여 수록하게 되는데 존스의 앨범은 이 곡을 중심으로 빅히트를 치게 됩니다. 존스의 파워풀한 목소리와 그가 뿜어내는 자태는 아주 독특합니다. 존스가 레게, 탱고, 샹송, 뉴웨이브, 댄스곡 등 다양한 스타일을 들려주었다면 나윤선은 샹송 스타일의 재즈를 들려줍니다. 불어를 전공한 그의 특기라고도 할 수 있겠군요.


트랙 4: My Funny Valentine

이 곡은 아마도 트럼피터 겸 보컬리스트인 쳇 베이커(1929~1988)가 부른 노래로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을 겁니다. 재즈계의 프린스이자 불운의 아이콘이었던 베이커의 읖조리는 듯한 보컬은 재즈팬들의 가슴을 후벼놓았습니다. 마일즈 데이비스(1926~1991)의 연주도 훌륭하였고 재즈 디바 엘라 피츠제럴드(1917~1996) 보컬 재즈 버전도 뛰어났습니다.


트랙 5: White Rabbit

1960년대 중반 비틀스가 사라질 무렵 록 영역에서는 명밴드들이 도처에 출연합니다. 미국도 예외는 아니었고 샌프란시스코를 대표하는 사이키델릭 록 밴드로 제퍼슨 에어플레인이 있었습니다. 이 밴드의 홍일점은 모델 출신인 그레이스 슬릭(1939~)으로 보컬을 담당합니다.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2집 <서리얼리스틱 필로우(초현실적 베개)> 중심에 슬릭의 자작곡 "White Rabbit(흰 토끼)"이 있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모티브로 화자의 환각 상태를 표현한 곡입니다. 이 곡은 발매 당시 국내에서는 금지곡이었다는 사실. 저 또한 뒤늦게 이 곡을 접하게 됩니다. 슬릭의 흰 토끼를 나윤선은 다른 색상의 흰 토끼로 표현합니다. 사이키텔릭 록 음악의 재즈로의 전환... 즐거운 경험입니다. 제퍼슨 에어플레인은 이후 제퍼슨 스타십으로 바뀌었고 현재는 스타십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스타십이 1985년 발표한 "We Built This City"와 "Sara"가 히트를 치면서 슬릭의 건재함을 알렸습니다.

나윤선(사진: 나승율)

트랙 6: Somtimes I Feel Like a Motherless Child

이 작품은 재즈 스탠더드로 수많은 재즈 뮤지션들이 연주하거나 불렀습니다. 대표적으로 보컬 재즈의 3대 디바라고 할 수 있는 빌리 홀리데이(1915~1959)의 작품이 있습니다. 나윤선의 대선배인 홀리데이의 노래는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우수의 블루스로 남았습니다. 두 곡을 비교해 보세요. 그리고 연주곡도 찾아보세요. 명곡에 버금가는 명연주와 다양한 해석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트랙 7: Baltimore Oriole

미국을 대표하는 작곡가인 호기 카마이클(1899~1981)이 1942년 작곡하였습니다. 이 곡은 미국 메이저 리그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탁 와닿을 겁니다. 어메리칸 리그 중 가장 치열한 지구가 동부인데 여기에는 뉴욕 양키스(박효준 등), 보스톤 레스삭스(김병헌, 이상훈, 김선우 등), 탐파베이 레이즈(최지만 등), 토론토 블루제이스(류현진 등) 그리고 볼티모어 오리올스(김현수, 윤석민 등)가 포함됩니다. 볼티모어를 상징하는 새가 오리올(꾀꼬리)입니다. 카마이클은 추운 겨울 호수를 배경으로 꾀꼬리 한 쌍과 남녀를 교차하여 묘사하고 있습니다. 쓸쓸한 정경 그리고 나윤선의 보컬.


트랙 8: Coisas Da Terra

브라질 재즈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인 마리오 라지냐(1960~), 영국 색소포니스트 줄리안 아겔레스(1966~), 노르웨이 드러머 헬게 안드레아스 노르바켄(1965~) 트리오가 2017년 <Setembro(셉텡브로, 9월)>를 발표합니다. 이 앨범은 아주 멋진 포르투갈 재즈를 선뵙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브라질의 보사노바는 브라질 토속 음악과 재즈가 포르투기와 결합하면서 만들어졌습니다. 연주곡인 "코이사스 다 테라(대지의 것들)"를 나윤선은 거침없는 스캣으로 문을 열고 새로운 보컬 재즈를 우리에게 펼칩니다. 포르투기 재즈와 보사노바 그리고 그만의 재즈가 어울리면서 대지에는 라틴 재즈 이상의 새로운 것이 만들어졌습니다.


트랙 9: La Foule

에디트 피아프(1915~1963)의 샹송 "라 플루(군중)"를 커버하였습니다. 원곡은 아르헨티나 가수 겸 작곡가인 앙헬 카브랄(1911~1997)의 1936년 "Amor de Mis Amores(아모르 데 미자모레, Love of My Loves)"이며 20년이 더 지난 1957년 피아프가 샹송으로 바꾸어 "La Foule"로 발표합니다. 피아프의 노래는 겅렬한 힘과 감정이 실려 있습니다. 군중 속에서 만난 운명의 남자. 그러나 군중 속에 휘말리면서 이 남자를 화자인 여자 가수는 영원히 볼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67년이 지나 나윤선은 대선배 피아프의 곡을 부드럽게 재단합니다.


트랙 10: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로버타 플랙(1937~)은 소울, R&B에서 활동한 가수 겸 송라이터입니다. 그를 대표하는 1973년 앨범 <Killing Me Softly>에 수록된 곡으로 찰스 폭스(작곡)와 노만 김벨(작사)이 1971년 만들었고 플랙이 커버하여 성공을 거둡니다. 플랙의 앨범은 1974년 그래미에서 올해의 앨범상 후보에 선정되었고 곡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그의 노래가 나를 황홀하게 만드네)"은 올해의 녹음상과 최우수 여성 팝 보컬상을 차지하였습니다. 이 노래를 중학교 때 들었으니 시간이 꽤 지났군요. 나윤선의 해석은 느린 템포로 유려하고 시적입니다. 플랙과 동등비교를 떠나 밤에 들으면 매우 운치가 있습니다.


곡들을 더욱 분위기 있게 만드는 역할을 미국 피아니스트 조 카우허드가 맡고 있습니다. 그런데 앨범 제목 "그녀들"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총 열 곡을 들어보고 각 곡의 오리지널(혹은 대표 연주자)을 생각하면 대부분 여성 뮤지션들이 불러 유명해진 작품입니다. 나윤선은 재즈 등 다양한 장르에서 두각을 나타낸 선배 뮤지션들의 작품을 선정하여 "그녀들"의 노래를 "나윤선"의 노래로 바꾸고 있습니다.

불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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