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의 수 666
10대에 팝송을 듣다가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에 빠져 들었는데 이 곡에 대한 괴상한 소문이 있었습니다. '테이프를 거꾸로 돌려 들으면 악마의 소리가 난다.', '가사에 나오는 단어들이 악마를 가리킨다.' 등이 예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웃어 넘어갈 일이지만 당시에는 그럴싸하게 들렸습니다. 이글스의 명곡은 멤버들이 피력한 작곡 배경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 오컬트의 영향과 어둠 속 사악한 존재에 대한 관심 등으로 악마를 숭배하는 노래로 회자되는 어이없는 상황이 연출됩니다. 가짜 뉴스가 판치고 사실 확인을 담보하지 않은 콘텐츠는 편향확증적 사고를 강화시키고 이성적 판단을 저해합니다. 세상과 단절하여 살 수 없는 상황이라면 우리는 음악을 듣거나 뉴스를 시청하거나 영상물을 감상하는 과정 등에서 신중한 사고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셀 수 없이 쏟아지는 정보를 일일이 수용하기도 어렵거니와 사실에 입각한 정보를 선별하는 것은 상당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언급한 이글스의 앨범과 곡은 1976년 12월 발표 되었습니다. 록 음악에서 어두운 존재를 작품 소재로 사용하는 것이 매우 드문 일은 아닙니다. 그 존재를 사탄이라고 한다면 이는 성서와 관련됩니다. 성서의 요한계시록은 영화, 음악,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 상상력을 부여하기도 하였지만, 이단이 자주 인용하는 신약성경의 일부이자 종말론적 신앙을 통해 심판의 날과 적그리스도 등을 강조할 때 언급됩니다. 요한계시록 13장 18절에는 비기독교인이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666'이라는 숫자가 나옵니다. 흔히 짐승의 수, 사람의 수, 또는 적그리스도의 수 666명(마리)으로 불립니다. 해석은 분분하지만 666은 기독교 권능에 대항하는 세력(기독교에서 흔히 악이라고 일컫는 것)으로 상징화할 수 있습니다.
1970년대 록 음악이 활활 타오르던 시기. 뮤지션들은 바이블의 가장 자극적이고 어두운 문구와 숫자를 꺼내어 소재로 삼았고 상상력을 불어 넣어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대표적인 작품 두 편을 선정하여 비교해보겠습니다.
왼쪽 사진은 영국 NWOBHM(뉴웨이브 오브 브리티시 헤비 메탈)을 대표한 아이언 메이든의 1982년 3집 <짐승의 수>이고 오른쪽은 그리스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아프로디테스 차일드의 1972년 3집 <666>입니다. 아프로디테스 차일드에는 키보디스트 반젤리스 파파데나시우와 보컬리스트 데미스 루소스가 있었습니다. 두 앨범은 10년의 간극이 있고 타이틀명은 같은 의미입니다.
왼쪽 사진에는 아이언 메이든의 마스코트인 에디가 악마를 조정하고 있고 이 악마는 다시 작은 에디를 조정하고 있습니다. 오른쪽 앨범 커버는 요한계시록 13장 18절을 그대로 적어놓았고 악마의 수 666을 강조하였습니다. 기독교 중심의 서양 문화에서는 숫자 6을 불안전한 것으로 봅니다. 이런 개념에서 6이 확장하여 666을 만듭니다. 6의 맞은편에 있는 숫자는 7이며 기독교에서는 삼위일체론에 따라 3을 완벽한 수로 개념화하였습니다. 서양의 6은 동양의 4와 비슷한 구석이 있을 수도 있겠군요.
블랙 사바스, 레드 제플린, 딥 퍼플, 씬 리지 등 선배 밴드들의 사운드에 영향을 받으며 헤비 메탈 장르를 개척하였고 후배 밴드 메탈리카에 영향을 미친 아이언 메이든은 3집 <The Numer of the Beast>에서 성서를 모티브로 강력한 더블 기타와 보컬로 메탈의 정수를 들려줍니다. 이 앨범은 헤비 메탈 역사를 대표하는 앨범으로 헤비 메탈의 바이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앨범의 백미는 물론 타이틀 곡 "The Number of the Beast"입니다. 헤비 메탈에 입문하려는 분들은 이 앨범을 먼저 감상하시고 이정표로 삼아도 좋을 것입니다.
한편 아프로디테스 차일드의 3집 <666>은 요한계시록의 내용에 기반한 콘셉트 앨범으로 신시사이저 음악의 대부인 반젤리스가 작곡하였습니다. 프로그레시브 록 또는 아트 록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는 새로운 사운드를 경험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수록곡 "인피니티"에 그리스를 대표하는 배우 이레네 파파스가 보컬로 참여하였는데, 1975년 가야금 명인 황병기의 작품 <미궁>의 수록곡 "미궁"의 보컬 홍신자를 떠올리기에 충분합니다. 앨범 <666>은 연극적 요소가 강하고 그리스풍과 월드 뮤직을 가미하며 1970년대를 이끈 프로그레시브 록 명작들 중 가장 색다른 옷을 입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이라는 섬유로 직조한 붉은 옷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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