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그런 내게 네가 장금이냐? 주부 9단이냐? 어이없어하지만 그냥 맛보는 것이 썩, 싫다.
어려서부터 팔팔 끓는 찌개나 국을 숟가락으로 휘리릭 젓고 한입 후~맛보시곤 다시 국자를 냄비에 넣어 휘적하는 집안 어른들의 요리시간 (궁금증:1. 헉 뜨겁지 않은가? 2. 저 입댄 국자를 다시 풍덩?)을 익히 봐 왔었고,울 엄마는 아직도 맛본 국자를 다시 풍덩하려다 내 눈치에 놀라 얼른 싱크대에 헹구신다.
(시어머님이 그러실 땐 속으로만 '플리즈 플리즈')
나는 주부 9단도 장금이도 아니지만 딱히,
맛이 거기서 거기라 간을 보지 않는다.
('요리를 못한다'라고 말하고, '즐기지 않는다'라고 쓴다)
우리 집에 있는 조미료는육수 한 알, 간장, 올리고당, 소금뿐이라 특별한 맛의 반전은 없다.(앗, 국 할 때쓰는 액젓도 있다)
딱히 조미료를 꺼리는 것은 아니지만 결혼 초 굴소스, 연두, 생강가루, 등등 각종 조미료를 구비해 두었다.
하지만 늘 반도 못쓰고 유통기한이 지나서 버리는 게 더 많아 이젠 사지 않는다.
내 요리 특징은 간을 살짝 해식탁에서 싱겁다는 말이 나오면 '저염식이야, 건강식이야'라고 둘러대고 소금을 살짝뿌려주면 해결된다.(집에서는 저염식, 외식은 자극적 음식을 좋아하는 습성이 있다.)
간은 어떻게 해결이 되지만 해결되지 않은 하나가 있는데,
음식이 익었는지 확인해야 할 때다.
특히 빨간 양념 고기는 육안으로 확인이 힘들어 잘 익었나 확인이 필요할 땐 남편 찬스를 애용한다.
내가 유난히 신경 쓰는 식재료는 바로, 감자다.
양파나 당근, 파, 심지어 고구마도 조금 설 익어도 아삭아삭 먹기 낯설지 않은데,
감자는 설 익으면 매우곤란하다.
덜 익혀 먹을 수 없으니 다시 냄비에 넣고 익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 오래 익히면 되지 않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내 감자요리 시간은 아주 긴 편인데,
늘 완성작은 지저분하고 비주얼이 좋지 않다.
그렇게 늘 지저분한 감자 반찬을 먹였다.
최근, 교회 감자조림을 먹고베테랑 주부 30단, 권사님께
" 어쩜 이렇게 예쁘게 졸이셨나요? 저는 늘 지저분하던데요."
라고 여쭸더니 감자를 많이 익혀서 그렇단다.
이렇게 감자는 덜 익어도 곤란, 더 익어도 곤란하다.
그런데 내가 감자를 체크할 때마다 탈이 난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아빠께서 농사지은 맛있는 햇감자를 택배로 한 박스 보내주셨다.
작은 알만 골라 휴게소 알감자 조림을 상상하며 요리조리 굴려가며 요리를 완성했다.
접시에 담다가 문득 '익었으려나?'라는 생각에 감자를 담고 남은 졸인 물에 으깨진 뭉근한 감자를 떠한입 쏙 넣었다.
입 속에 넣자마자 '으아악~!' 강력한 비명과 함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입안으로느끼는 최고의 통증을 느끼며 감자가 자동으로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 뒤 2주 정도 밥을 먹거나 간식을 먹을 때 입천정의 화상으로 어떤 날은 진물맛이 느껴지고 어떤 날은 먹을 때마다 쓰라린 통증에 눈물을 머금고음식을 맛도 보지 못한 채 겨우 욱여넣었다.(유난히 외식이 많았는데 맛있는 음식을 음미조차불가능했다.)
입천장에서 느껴지는 짭짤한 진물과 통증으로 몇 번 씹지도 못하고 설렁설렁 음식물을 삼키며
'내가 감자를, 다시는 맛 보나 봐라.. 으으윽'
살기 위해 먹는 자처럼 견뎠다.
고통의 시간이 언제 끝났는지 잊어버릴 즈음(역시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저녁식사로 감자탕을 포장해 냄비에 고기뼈를 담고 팔팔 끓인 후 깍둑 썰은 감자를 풍덩풍덩 담고 각종 채소가 잘 익기를 기다리며 불을 끄려는 순간, 고기는 이미 한번 삶아서 괜찮을 텐데 역시 감자의 안위가 궁금했다.
감자를 휘적휘적 찾아 숟가락으로 반을 툭 쪼개 보았으나 숟가락에 전달되는감이 아리송했다.
반 덜은 감자를 또 아무 생각 없이 입속으로 쏙.
'으아악' 입천장과 혀에 닿는 그 뜨거운 감자의 열기가 내 뇌에 순식간에 전달되었다.
고통의 신음과 함께 감자의 뜨거운 기운이 입안에 화르륵 흐르고 나서야 지난날의 기억이 촤르르 떠올랐다.
또 몇 주의 고통이 함께 하겠지만, 지난번 고통보다는 덜 한 느낌이 들어 그나마 안심했다.
뜨거운 감자.
내 험난한 요리 인생에 매우 위험한 존재다.
주부 9단도 아닌 불량 주부가 감히 맛도 안 보고 식탁을 차려 내는데, 너는 못 당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