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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반짝 빛나는 Nov 10. 2021

올바른 비움과 소비에 대하여..

비움 그리고 채움



<19.12.11>  <19.05.14>  <19.09.20>


위 번호들은 무엇을 나타내는 숫자일까?

CSI 범죄 영화에 나올 법한 암호일까?

당연 아니다.


위 번호들은 우리 집 베란다 수납장에 있는 각종 생필품(샴푸, 치약, 클렌저, 세탁세제, 주방세제, 등)의 제조 년 월 일이다.-(21.11월 현재)  


아이들의 로션을 뚜껑까지 열어 알뜰히 다 썼다는 유쾌한 기분을 만끽하기도 전에 새 로션을 뜯는 순간 발견한 제조 년이 2년 전이라니 참 찝찝하기도 하고 허탈한 이 기분은 뭘까?




1년 전 이사를 오면서 참 많은 것을 버리고 또 버렸다.

30평대에서 20평대로 이사를 결정했을 때 정말 많은 감정이 교차했다.

아이들은 커 가는데 평수를 더 늘려 이사하지 못할망정 방 하나가 사라지는데 ‘나는 과연 이 짐들을 어디에 두고 사나? 앉을 곳도 잠잘 곳도 없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에 이사 몇 개월 전부터 열심히 중고나라와 당근 마켓에 나눔과 판매로 비우기 시작했다. 


이삿날 미처 발견하지 못한 베란다 수납장의 각종 생필품이 이때다 싶어 마구 쏟아져 나왔다.

제때 사용하지 못하고 자리만 차지하던 물건들이 드디어 빛을 보았다.

이삿짐 아저씨도 꼭꼭 숨겨놓은 짐들을 하나둘씩 꺼내면서 적잖게 당황한 모습이었고 짐이 원래 낸 견적보다 훨씬 많다며 푸념하셨다.


그렇게 우리는 이사를 왔고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생필품을 더 사지 못하고 제조 년이 19년도인 물건을 사용하고 있다.

몽골인 들은 평생 소유하는 물건이 평균 삼백여 개라고 합니다. 반면 우리들은 어떨까요?
방 하나를 둘러봐도 삼백 개는 훌쩍 뛰어넘을 것입니다. 소유한 것이 많으면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인생이란 여행에서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짊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최현아. 2021.2.15. 비움 효과. 문예춘추사-


나는 왜 이렇게 소유하며 채우고 살고 있었을까?

비움 없는 채움으로 그 물건들을 관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드디어 ‘항복’을 선언했다.

내가 소비를 줄이게 된 계기는 여러 이유가 있을 테지만 일단은 경제적인 부분이 크다.

이젠 내가 경제활동을 할 수 없기에 더 이상 소비할 여건도 안 되었고 작아진 집이 나의 사재기를 받아 줄 공간도 못 되었다.

무언가를 구입할 때면 다른 데서 느낄 수 없는 재미와 자유로움을 느끼는 거 같아요.
온전히 내 선택에 의해 무언가를 결정할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처음엔 분명 필요한 물건이 아니었는데 하나둘씩 그 물건들을 사야 할 ‘이유’를 만들고 있습니다.
꼭 필요해서 사는 게 아니라 ‘소비를 위한 소비’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신주. 2013. 12.24. 강신주의 다 상담 3. 동녘-


무료 배송을 채우기 위한 소비, 있는 물건인데도 ‘타임특가’라는 이유로 지금 안사면 다시는 저렴한 가격에 그 물건을 구매할 수 없을 것이라는 필연적 근거를 만들어 ‘소비를 위한 소비’를 하고 있었다.


계속 이렇게 살다가는 가계는 파탄날 것이며 우리 집은 사람이 주인이 아닌 물건이 주인인 집이 될 거라는 불안이 엄습했다.




그래서 나와 우리 가족이 실천한 지난 1년간의 작은 변화들을 이야기해 보려 한다.


먼저 생필품을 필요 이상으로 사지 않았다.


물론 이전에 사놓은 것이 많아 그랬겠지만 이젠 더이상 무료배송과 핫딜의 늪에 빠지지 않기로 결심했다.

쇼핑 앱을 지웠고 카드를 한 장으로 줄였다. 

화장지를 사야 할 날이 왔다. 예전 같으면 수납장에 화장지를 가득 채워놨겠지만 마지막 남은 화장지 한 롤을 꺼내며 말했다.

 “이게 마지막 화장지야, 다음 달까지 이거 하나로 사용해야 하니 아껴 쓰도록 해요. 혹시나 다 쓰더라도 다음 달이 오기 전엔 절! 대! 사지 않을 거야.”


남편도 아이들도 당황한 모습을 보였지만 우리는 실천했다.

정말 아이들은 마지막 화장지를 다 쓰면 안 사줄 거라고 생각을 했나보다.

화장지를 한 칸씩 사용하기 시작했고 둘째는 그 작은 한 칸을 또 반으로 자르며 사용하였다.

순간 저렇게까지 싶은 마음에 그 반 칸을 어디 사용할 거냐고 물으니 코를 닦을거라 했다.


생필품이 떨어지기 전에 채워 놓는 게 주부로 아내로서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다 쓸 때까지 새것을 꺼내거나 구매하지 않는다. 


예전엔 진즉 버렸을, 다 썼다고 생각한 치약튜브에서 몇 번이나 양치를 더 할 수 있는 치약이 나온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다음으로는 음식을 먹을 만큼만 사기 시작했다.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위험은 지구온난화이며, 원인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음식물쓰레기다. 처리과정에서 환경오염과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야기하는데 식재료 생산, 수입, 유통, 가공, 조리 단계에서도 폐기물이 발생,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고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전 국민이 음식물쓰레기를 20% 줄이면 연간 1,600억 원의 쓰레기 처리 비용이 줄고 에너지 절약 등으로 5조 원에 달하는 경제적 이익이 생긴다.
  -성인용 음식물 핸드북. 환경부. 2013.04-


대형 마트에 대량으로 사 온 식재료를 냉장고 가득 채우고 바라보며 든든하던 시절이 있었다.

언젠가 먹을 거라는 확신이 화석이 되어 냉동실 밖으로 나오기까지는 깨닫지 못했다.

저렴하게 샀지만 먹은 것 반 버린 것 반인 식품들은 더 이상 저렴한 재료들이 아니었고 수 없이 나오던 냉동실의 화석을 일일이 녹여 분리해서 버려야 하는 수고를 통해서 나는 깨달았다.


그래서 요즘은 포스트잇에 메모하여 그날 먹을 만큼의 재료를 산다.

반찬방에서 사 먹는 것이 더 저렴하고 효율적이라는 유혹을 떨쳐 버릴 수 없기에 반찬 방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구매하더라도 적당량의 반찬만 구매한다.

그래서인지 우리 집 냉장고는 ‘가정집 냉장실 맞나?’ 싶을 정도로 뭐가 없다.(아직 냉동실은 더 노력해야 한다)


어느 날 쌀이 떨어져 마지막 밥을 지으며 쌀을 부랴부랴 주문했는데 배송이 느려 애가 탔다.

남편은 마트에서 소포장 쌀을 구매하라고 했지만 예전에 시어머니께서 주신 보리쌀이 보였다.

삼일을 아이들과 남편에게 보리밥을 주었다. 밥을 먹기 힘들다며 꾸역꾸역 먹고 있는 아이들에게 옛날엔 보리밥도 없어서 못 먹던 시절이 있었음을 가르치며(난 보리밥을 먹던 시절이 없긴 했지만) 남아있는 보리쌀을 열심히 소진하기 시작했다.

삼 일 후 식탁에 하얀 쌀밥이 올랐을 때 아이들은 소리쳤다.


“우와, 쌀밥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환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코로나로 택배, 배달로 나오는 어마한 양의 재활용 쓰레기가 베란다를 점령했다.

예전 같으면 무지하다는 이유로 혹은 알고도 귀찮다는 이유로 그냥 버린 쓰레기였지만 환경에 대해 알아가며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실천하기 시작했다.

(지역 에코센터 ‘에코 패밀리’로 활동하며 많은 실천을 배우게 되었다)

우유팩은 엄청난 재활용 자원이며 멸균 팩 안 은박지도 재활용이 된다.(그것들을 따로 모아서 주민센터에 가져다 주면 화장지로 바꿔준다.)

음료 라벨을 아이들과 함께 떼기 시작했고 재활용에 그냥 버렸던 플라스틱 용기들을 깨끗이 씻어 모으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로 인해 더욱 위생과 환경의 공존이 힘든 엄청난 쓰레기 폭탄을 맞고 있다.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살 미래를 이렇게 더 이상은 물려줄 수 없다. 

이젠 나도 당당히 ‘용기 내!’(빈 용기를 내서 포장 음식을 받아 오는)를 할 수 있다.


‘패스트 패션’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이는 최신 트렌드를 즉각 반영, 빠르게 제작 유통하는 의류를 말한다. 의류산업으로 매년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는 세계 전체 배출량의 약 10% 정도, 한 해 동안 제작되는 옷은 약 1000억 벌 정도, 그중 버려지는 옷만 대략 330억 벌 정도다. 옷을 제작 폐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은 연간 약 120억 톤인데 이는 비행기나 선박이 연간 발생시키는 탄소 배출량보다 많은 수치라 한다. 한 벌 티셔츠와 청바지를 제작하는데 필요한 물의 양은 약 2만 리터이며 이는 한 사람이 13년 동안 마실 수 있는 물의 양이라고 한다. 의류 대부분은 페트병을 만드는 원료인 폴리에스터 소재가 사용되는데, 의류를 세탁하는 과정에서 바다로 배출되는 미세 플라스틱의 양은 매년 약 50만 톤이며 이는 플라스틱 병 약 500억 개에 해당하는 양이다.
-부산광역시 환경보호센터.‘내가 입은 옷이 환경오염을 유발한다고’. 2021.9.16-


그리고 단벌신사 남편 청바지가 찢어져 한 벌, 코로나 방콕 기간 동안 살이 10킬로가 쪄서 옷이 없는 큰아이 옷을 몇 벌 구매한 것 말고는 한 해 동안 옷을 사지 않았다.

이사를 준비하며 깨끗한 옷은 나눔하고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했고 헌 옷 아저씨를 불러 3포대나 되는 옷을 버렸다. 정작 내가 입는 옷은 계절별로 두세 벌뿐이었기에 그동안 너무 많은 비용을 낭비하고 환경을 파괴하며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렴하고 유행이라는 이유로 산 필요 이상의 옷들은 환경을 파괴하고 심지어 아프리카까지가서 쓰레기 산이 되어 자연을 오염시킨다고 한다.  

                                                

아프리카 가나의 의류 쓰레기 산. [미국 CBS 뉴스 방송 캡처]





우리의 환경은 모두의 책임이고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다.   

나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들로 비우고 소비를 줄였지만 환경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비우기 시작하니 가족이 소중히 여기는 것들이 보였고 아이들의 필요 없는 장난감을 비우니 아빠는 세상에 하나뿐인 제일 재미있는 장난감이 되었다.

함께 책을 읽으며 생각을 나누니 아이들의 마음이 보였고 욕심을 비우니 내 삶의 여백이 보였다.


외벌이가 되면 세상이 무너질 것 같았지만 다행히 남편만의 수입에도 우리는 잘 살고 있다.


올바른 소비를 통해 내 삶이 채워지고 환경을 생각하는 의식적인 소비를 통해 우리의 아이들이 자연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미래가 되길 바라며....



ㅡ'비움'  아지북스.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그림. 곽영권글-






-신현정 선생님의 글쓰기 수업 중. '주장하는 글' 써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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