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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반짝 빛나는 Dec 20. 2021

하루 세 번 화장실에 들어가는 남편 뒤통수에 대고 한말

당신의 동굴은 쾌적한가요?


"어이구~~~!

내가  이 놈의  또 오 오 옹 을~~!!" 

이라고...


화장실에 들어가는 남편의 뒤통수에 대고 소리쳤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늘..

속으로만 생각한 말이었다.

그랬던 말이 불쑥 입 밖으로 튀어나올 줄은 차마 몰랐다.

남편의 얼굴을 힐끗 보았다.

진정 생리현상까지 내가 간섭할 권리는 없었다.






정확히 남편의 이런 습관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알 수 없다.

아니, 언제부터 남편의 이 습관이 나에게 거슬렸는지 모르겠다.

기억을 더듬어 떠올려 본 어렴풋한 첫 장면은


남편의 역할이 필요한데 남편이 보이지 않았을 때


내가 그를 찾던 과거의 시간으로 거슬러간다.


식사 준비를 하려는데 아장아장 걷는 아이에게 눈을 뗄 수 없을 때

외출을 하고 와서 짐을 정리하는데 아이가 칭얼거릴 때


남편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차곡차곡 벼르고 있던 것이 쌓여서 폭발을 하였다.


관찰 주기는 이렇다.


남편은 집에 있는 날이면

아침에 한번, 아주 조용히 화장실에

(앉아있는지 뭐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지만)

있다가 물소리가 난다.  볼일+ 샤워---1시간


점심때 한번, 아주 조용히 앉아계시는 듯 볼일---30분


저녁때 한번, 아침과 같은 패턴인데 이사 전에는 욕조가 있는 집이라서 반신욕을 했던 것 같다.---1시간

(하루에 샤워 두 번은 이해하지만, 볼일을 세 번이나 보는 것은.......??)



결혼초에는 전혀 몰랐다.


신혼 때 동네 언니들이 남편 이야기를 하다가 우스갯소리로

"나는 울 남편 화장실 X 싸러 가는 것도 보기 싫을 때가 있다니까!"

라는 이야기를 듣고

"언니, 그건 진짜 아니다. 생리현상까지 그러면 너무한 것 아녜요?"

라고 말했던 나였다.


그랬던 내가 남편의 뒤통수를 대고 소리를 질렀다.


여행을 다녀와 트렁크에 짐이 한 짐이고

정리하고 세탁할 것이 산더미인데

아이들부터 씻길 생각 안 하고

같이 정리할 생각은 안 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화장실로 직행하는 남편에게,


이 놈의 또오오오오오옹을!!!!!!




신혼 초, 남편은 아주 착하고 가정적이며

나는 아주 가식(?)스러울 정도로 다정한 아내였다.

-이전 글 이중인격자 참조-


가식이라고 표현하면 좀 그렇지만 내 바닥을 남편에게 보일 일이 연애 때와 결혼 초까지는 전혀 없었다.


하! 지! 만!

출산과 양육을 통하여

남편은 여전히 착하고 가정적인 남편이었으나,

나는 점점 가면을 벗겨내고 있었다.


큰 아이를 낳고 나서 한 꺼풀(그래도, 그때는 이성은 있었다.)

둘째를 낳고 나서는 열 꺼풀쯤 동시에 벗겨졌다.(한 번씩 이성을 잃었다.)


남편과 나는 연애 때부터 결혼초까지 다툰 적이 거의 없다.

정말 싸울 일이 없었다.


하긴,

지금도 우린 다투지 않는다.


아이들 말로는

"아빠가 뭐 엄마한테 혼나지 뭐~!"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맞다.

늘, 나의 일방적인 속사포 랩으로 끝이 난다.





출산과 육아를 하며 남편은 나의 눈치를 엄청나게 보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잘  몰랐다.)


친정 나들이를 하고 돌아온 다음날 걸려온 엄마의 전화에 귀가 따가웠다.


요지는,

남편을 얼마나 잡았으면 안절부절못하고 니 앞에서 그러고 서 있겠냐고,

정말 사돈 어르신 보기가 민망하고

내 아들이 너 같은 아내 만날까 봐 속상하다며

암튼, 남편에게 잘하라며 당부의 당부를 하시고 전화를 끊으셨다.


상황은 이러했다.

아이를 막 낳고 육아를 하면서 둘 다 초보다 보니 나는 늘 어리숙했고,

그런 나를 어찌 도와줘야 하는지 몰라 남편은 늘 내 곁에 심부름을 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일단 아이에게 일이 생기거나 부모의 손길이 필요할 때,

엄마 시절엔 여자가 하는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셨겠지만,

지금 우리에겐 부부가 함께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을 하니

둘이 동시에 움직이는 게 어찌 보면 당연했다.


하지만 엄마 눈에는 그게 너무 어색했고

마땅히 딸이 해야 할 일들을

사위가 옆에서 수발을 들고 있으니

보기가 민망하셨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아이가 한 명 더 생기니 우리의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남편은 여전히

다정하고...

다정했고...

.

.

다정했다..

.

.

휴.......


내 바람은

조금 더 눈치가 빨라졌으면 좋겠고,

내가 말하기 전에 미리 움직여 주었으면 좋겠고,

아이가 둘이 되고, 두배가 아닌 네 배로 많아진 일들을 서로 분담해서 빨리 해 치워 줬음 하고 바랐다.


여전히 변함없는 남편에게

너무 변하고 변한 내가,

일방적으로 이야기하고

분노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

.

.


남편은 어느 날부터인가 그렇게 남편의 동굴로 들어갔다.


늘, 늦은 퇴근으로 일에 치여 있던 남편이

주말에 유일하게 쉬는 날엔

거실에 있어도

방에 있어도

내 눈치를 보느라

눈치와 잔소리가 없는 곳으로 그렇게 찾아 들어갔던 것 같다.



사진출처:픽사 베이



아, 이렇게 쓰고 보니 악처가 따로 없다.


그러면 나도 할 말은 있다.

월~금, 남편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집안일하고 아이들 씻기고 먹이고 돌보고 재우느라

나 조차도 피폐해져 가고 있는데

주말에 코빼기가 보이는 남편이

아이들을 봐주지 않으면

나는 누구에게 나 좀 쉬자며 붙잡고 하소연을 할 텐가?


(이렇게 변명을 좀 늘어놓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남편은 늘 그렇게 종종 화장실을 찾았다.


아주 조용하고 조용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는  남편에게 그 어떤 집안일도 분담하지 않는데,

(바쁜 남편이라 시간이 난다면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주기만 바랄 뿐이다.)


두 가지만 부탁했다.

주말에 음식물 쓰레기를 치워줄 것과

한 달에 한번 화장실 청소를 해달라고.


남편이 청소하는 날은

우리 집 화장실은 입주청소 못지않게 윤이 반짝반짝 난다.


어떤 날은 천장까지 싹~ 닦았다며

뿌듯해 하기에 폭풍 칭찬을 해주었더니

그 후로 화장실을 모델 하우스 수준으로 광을 내고 있다.


자기의 동굴이라 더 애착이 가는 걸까?

남편은 자신이 윤이 나게 닦고 청소하는 화장실을

보통의 남들보다 아주 오래 머무른다.






아이들이 놀다가 아빠가 안 보여 찾을 때면

너무 당연히 화장실 문 앞에서

아빠를 부른다.


"똥장군~~~~~!!!!

화장실에 있어요?"


그러면 화장실 안에서 장군의 소리가 들린다.

문 안팎에서 쿵작이 척척

티키타카가 이루어진다.


아이들은 조금씩 자라고

남편의 손이 덜 필요해지자

나의 요구는 예전만큼 많지 않은 것 같은데,


남편은 여전히 휴일엔

하루에 세 번 화장실에

그렇게 자기만의 동굴로 들어간다.


이젠 화장실에 가기 전에 내가 먼저

방으로 들어가 좀 쉬라며 말을 건넨다.


그러면

아이들과 많이 못 놀아줘 미안한지 멈칫하는 발걸음과 동시에  이때다 싶은 마음이 드는지,

방으로  쏙~ 냉큼 들어간다.


우리 집 화장실은 그 어느 집 보다 깨끗하고 쾌적하다 자부할 수 있지만,


이젠 남편이 화장실 말고

안방이나 서재 방을

자신의 동굴로 만들어 줬음 하는 바람이 있다.



모처럼  외출 없는 휴일

안방에서 깊은 낮잠이 든 남편을 깨우지 않기 위해

거실에서 아이들과 귓속말로 놀다가,


절대 큰소리 내면 안 된다고

아빠 피곤해서 깨시면 안 된다고

아이들에게 신신당부를 해놓고

남편의 특별 저녁 반찬거리를 사 올 만큼

나도 성숙해졌으니....^^


이제 그만  

당신의 동굴에서 나와주면 안 될까요?

하고

물어보고 싶다.


나도 잔소리 좀 줄이고 눈치 좀 덜 줄 테니,


이제 우리 같이 있는 공간이

좀  편해졌으면 좋겠다고....!


그대 이제 화장실에서 

나와 줄래요?


사진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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