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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반짝 빛나는 Nov 07. 2021

여보~ 커피 한잔할래요?

나의 커피사랑 이야기



어릴 적,

엄마가 새하얀 커피잔에 따끈한 커피를 타 놓고 전화벨이 울려 전화받으러 가시 나는 내 방에 있어도 커피 향기가 나는 식탁으로 발이 저절로 향했다.


길어지는 엄마의 통화에 아슬아슬한 '한 모금만 더, 한 모금만 더......'가 계속되고 전화를 끊고 커피를 마시러 오신 엄마가 빈 커피잔을 보며   

" 아직은 어려서 커피 마시면 안 된다고 해도 또 마셨니?"라는 엄마의 잔소리를 뒤로하고 도망쳤던 나는 늘 그렇게 엄마의 커피를 탐하는 어린아이였다.


출처: 네이버 '코지테이블'

고등학생 때 학교 안에 커피 자판기가 있었다.

쉬는 시간이 되면 수업 집중을 위한 핑계로 매점 가는 길에 있는 자판기에 달려가 커피 한잔씩을 뽑았다.


따끈한 종이컵에 후후 불며 마시던 그 달달한 자판기 커피는 공부를 열심히 하지는 않았지만 학업으로 힘든 나의 여고시절을 달래주기에 충분했다.


적을 땐 2잔 많을 땐 5잔 여름엔 얼음이 나오는 자판기였는데 오독오독 얼음 씹어먹는 그 맛에 한 여름엔 매 쉬는 시간마다 마셨던 것 같다.



그렇게 커피를 사랑하는 아이는 커서 대학생이 되었다. 대학생 때 나는 매점에 파는 '컵 커피'에 눈을 떴다.

지금은 단종된 '악마의 유혹'이라는 빨대 꼽는 컵 커피를 알바비를 커피에 탕진해 가며  종류 별로 마시는 호사를 누리니  200원짜리 자판기 커피를 마시는 선배가 비싼 컵 커피를 마시냐고 핀잔을 주곤 했었지정말 악마의 유혹처럼 그 커피를 안 마시는 날엔 밤에 잠을 잘 수 없었다.

(커피를 마시면 잠이 안와야 할 텐데ㅡ 커피를 안 마시면 잠이 안 오는 나란 사람;;)


대학교 졸업 때였을까? 

대학교 근처 온통 논밭이던 곳이 개발이 되면서 대학 정문 쪽에 커피 체인 전문점이 생겼다.


늘 프림 믹스 커피를 마시던 내가, 갈색 커피에 따끈한 우유 스팀이 우아하게 스며들며 예쁜 나뭇잎 그림이 올려간 커피의 비주얼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출처: 올어바웃 에스프레소. 2010.

그때 커피 한잔 값이 4천 원 정도였던  같다.

학생식당 돈가스 특식이 3천5백 원 이었던 걸 생각하면 커피 전문점 커피를 큰 맘먹고 사 마실 때면 '된장녀' 소리를 듣곤 했다.



돈을 벌면서부터 커피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직장 근처에 맛있는 커피가게는 꼭 가보고 집 근처의 커피가게가 생겨도 꼭 어떤 맛인지 마시러 갔다.


커피맛이 거기서 거기일 거라 생각하지만 십여 년을 넘게 커. 알. 못(커피를 알지 못하고)이고 마시는 취미만 가진 나로서도 각 가게의 특징과 맛있는 커피는 따로 있다는 것을 느꼈다.


서른이 넘어서는 이젠 체인 커피점 말고 동네에 숨은 커피 맛집을 찾아다니곤 했다.

결혼해서는 남편 퇴근 후  동네 커피 맛집을 탐방하는 게 작은 즐거움이었다.


(한창 일하며 육아할 땐 바닐라라테를 주 5일 마셔가며 버텼기에 나의 불어난 5kg의 범인은 바로 바닐라라테가 아닐까 싶다!)


신혼초에도 다투지 않았던  남편과 아이를 낳고 출산과 육아로 우울함과 스트레스로 일방적인 다툼 할 때면 남편과 나의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일단은 일방적으로 화내는 사람은 나이 했지만 남편은 퇴근하고 오면 내 눈치를 살피기 바빴다.

나에게 말은 걸고 싶고 내 기분은 아리송한 것 같고

남편은 퇴근하며 집안에 냉기가 흐를때면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그래서 내가 이야길 했다.


내가 힘들어 보이거나 화나 보이거나 할 때 퇴근길에 커피 한잔만 사달라고 그럼 나의 기분도 스르르 풀릴 거라고..


그 뒤로 남편의 퇴근길 손엔 종종

여보~~~ 커피 한잔 할래요?

라며 커피가 들려 있었다.


겨울엔 따뜻한 라테 여름엔 시원한 라테

종일 집에서 육아로 아이들과 전쟁을 치르고 있는 나를 위해 남편은 종종 커피를 건넸다.  


그럴 때면 정말 짜증 나고 힘들고 화나다가도 맛있는 커피 한 모금으로 마음이 사르르 녹는 걸 경험한다.


남편에게 정말 진심으로 화가 난 날,

'퇴근길 커피를 사 오더라도 결코 풀리지 않으리라!' 다짐 했건만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남편의 오른손에서 내가 좋아하는 커피 향이 퍼지면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으며 남편을 맞이한다.(이런, 쉬운 여자 같으니.ㅠ.ㅠ)


어떤 날은 동네 언니들과 모임이 있어 사이즈 업까지 해서 커피 4샷을 마시고 저녁을 준비하던 날,


여보~~~ 커피 한잔 할래요?

란 남편의 반가운 퇴근 소리에 애써 커피를 사 온 성의에 이미 마셨다고 말하지 못하고 그날 총 7샷을 마셔 새벽 4시까지 잠 못 이룬 적도 있었지만(희한하다 커피믹스는 7잔까지 마셔도 잠만  왔는데;;)


여전히 나는 남편  퇴근길 

여보~~~ 커피 한잔 할래요?

란 다정한 소리가 참 듣기 좋다.


퇴근길에 애써 집으로 향하던 차를 가게앞에 주차해 커피를 사고 식지 않게 바쁘게 집으로 달려왔을 남편의 따뜻한 마음과 늘 반갑고 다정한 저 소리가 참 좋다.


그러다 안 사온 날엔 조금 서운하기도 하고

'우리가 마신 커피값만 해도 지방에 작은 집 한 채를 샀겠다'며 소비를 반성하고 커피 머신을 구매한 후에도 남편이 커피를  사들고 오는 날이면

"돈 아껴야지!  집에 커피 있는데"

라고 맘에 없는 말을 해도 남편의 커피 선물이 나는 참 좋다.


나의 마음에 없는 잔소리에 커피 사 오는 남편 모습이 많이 줄긴해서 아쉽긴 하지만,


아무리 속상하고 화나는 일이 있어도 커피 한잔이면 마음이 녹아버리는 내가 참 '가볍다'라고 생각되다가도

그래도 나의 마음을 회복시켜줄 간단하고 저렴한 '매개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남편에게 그리고 나에게 오히려 좋은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요즘은 '아인슈페너'가 그렇게나 맛나더라구요.
출처: 유튜브.폴킴 최준의'커피한잔 할래요?'

아래 링크에 음악 공유~♡

https://youtu.be/SF4PP-7iv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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