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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반짝 빛나는 Oct 15. 2021

나의 첫 맞선 이야기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그중에 그대를 만나♬


 “딸~! 포항 남자 한번 만나볼래?”



나의 나이가 점점 차, 앞자리가 바뀐 어느 해!

엄마가 대뜸 나에게 말씀하셨다.


주변에서 소개해 준다 하면

"우리 빛나는 애인 있어요" 라며 철벽을 치던 엄마가,

우리 둘이 오래오래 같이 살자고 나보고 결혼은 최대한 늦게 하라던 엄마가,

어쩐 일로 나에게 사람을 만나 보라고 이야기를 하실까?

난생 처음 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내가 사는 곳에서 엄청 먼 포항 남자를?

와우! 대단한 남자겠지?!

그래, 일단 신상이나 들어 보자!



뭐하는 사람이래요?

-몰라


이름은요?

-몰라


나이는?

-몰라



흠.... 뭐지... 울 엄마 딸을 급하게 팔아 치워야 할;;;  

뭐 그런 사정이 있으신걸까?


하여튼 이름도, 직업도, 나이도 모르는, 포항의 어떤 남자를 만나 보라고 하셨다.

딱 한번 포항이라는 곳엘 가본 적이 있다.

엄마 아빠와 어색한 가족여행, 우리 집에서 포항까지 3시간, 포항에서 울릉도까지 배 타고 3시간,

그때 나는 '아~~! 포항이고 울릉도고 이곳에 다시 오나 봐라!!'

라는 맘을 먹었던 우리의 '반쪽 가족 여행'을 기억한다.(언니와 동생은 서울에 살았다)




“포항요? 그 거리에 있는 남자를 만나라면,
나는 차라리 서울 남자를 만나지요!

라며 단칼에 거절했다.


그러나!!!! 어찌어찌 하다보니...! 만남이 성사되었다.

(엄마가 내 대답을 미리 전하지 않으셨는지, 이미 약속이 잡아진것인지, 그쪽의 주선을 거절 못할 여하튼 그런 상황이 벌어진듯했다)


흠...

일단 만나 보기만 하면 된다.

엄마는 우리의 맞선이 잘 될 거라는 생각은 이미 안 하시는 듯했다.  

하루 반나절 먼 곳까지 와주신 손님 대접을, 엄마는 간곡히 부탁하였다.



딸! 멀리서 오니까,
여기서는 너 차로 이동 꼭 하고,
알지? 엄마 욕만 안 먹게 하고 와!
예의 바르게 실수하지 말고!
암튼 잘 헤어지고 와!



'무슨 생각으로 그 먼 곳의 남자를 만나보라 하셨을까?

바뀐 나의 나이 앞자리가 부담스러우셨나?

아님 소개해주시는 그분에게 거절을 못할 약점을 잡히신것인가?'


여하튼 여러 생각을 하며

'그래! 오늘 우리 동네에 온 관광객 분을 즐겁게 안내한다는 마음으로'

약속 장소에 나가 차 안에서 그 남자를 기다렸다.

(내 차로 갈아타야 했기에, 주차장이 큰 공터가 우리의 약속 장소였다)


지나가는 남자들을 재빠르게 스캔했다.

(푸하하 그냥 예의상 나가는데, 또 누굴까? 어떨까? 궁금해서 스캔하는 모양새란;; 참!)


저 멀리서 한 남자가 두리번 거린다.

밝은 네이비 정장세트를 입으시고, 안경을 끼시고, 바리깡으로 깎아자른 듯한 옆머리, 전형적인 상고 머리스타일....


헙... 완전 아저씨다!  

그래, 내 나이가 아줌마를 향해 간다는것 쯤은 이미 알고 있다.

잘 알고 있지만,

일단, 저 아저씨는 내 스타일은 아니시다!


제발...... 저 남자만은 아니어라.... 아니어라...!!

전화를 걸려는 액션을 취하신다.

내 폰을 재빠르게 바라보았다.


울리지 말아라...

울리지 말아라..

가만히 있어주거라...


잠시 후...


"띠리링~~!!"


내 전화벨이 울린다.





일단 대강 철저히 인사를 드리고 잽싸게 내 차로 태웠다.

내가 자란 이곳 도시는 아~주 아~주 좁다.

누군가라도 내가 이런 어색한 만남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바로 '놀림각!'이다.


드라이브나 하자며 태워서는 일단 아무도 모르는 외각으로, 더 먼 외각으로, 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달리고 달렸다.

지금 생각을 해보니, 늦은 오후에 만났나 보다.

밝음과 어둠의 경계선까지 우린 차를 타고 있었으니,


나는 초보 운전에, 길치에, 네비는 믄 말인지도 모르겠고...

운전하느라 신경이 곤두서 있는, 생전 처음 보는 맞선녀가 앞만 보고 1시간째 달리고 있었다.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일단 사람들이 없는 곳을 찾아 헤매는 나의 마음은 모른 채 그 남자도 어색한 첫 만남에 자동차 조수석에 앉아 앞만 보고 앉아있었다.


그래도 나름 목적지를 생각하고 움직인 주행이긴 했다.

'아, 이쯤  내가 지난번에 직장 동료와 갔던 전통 찻집이 있었는데?  

도무지 모르겠다.

역시 그럼 그렇지, 내가 그곳을 한방에 찾으면 천재였다.

순간 앞이 막막했다.


그래도 차도녀스럽게 태연하게 운전했다.

길을 굽이굽이 지나니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엄청 텅 빈 공터 같은 칠흑 같은 어둠의 공간이 나타났다.

'공사장인가? 뭔가 이리 뻥 뚫렸지? 이곳은 어디지?' 뭔가 불길한 짐작을 하긴 했지만,

어둠을 헤치고...

.

.

.

저 멀리서 완전 무장을 한 군인들이 나의 차를 저지했다.


나는 당황했다.

옆에 앉아계신 그분도 당황했다.

내가 사는 곳엔 외각지역에 공군 교육사령부가 있다는 사실을 들어서 알고는 있었다.

나는 외각으로 피하다 피하다 못해 그곳까지 간 것이었다.


(아! 그렇게까지 그분이 부끄러워 그랬던 건 아니었다. 부담스러운 나의 첫 맞선을 안 들키려고, 이분을 보기 전에 미리 계획해둔 장소임을 밝혀 둔다, 단지 못 찾았을 뿐이다)


헙;;;;;

나를 뭐라고 생각할까?

순간 그분이 웃는다.

피식도 아닌 빵~!!!!!  

'약간의 정신이 이상한 여자가 아닐까?'라는 생각 정도는 했지 싶다.


암튼 나는 서둘러 후진을 하고 나와서

내가 찾던 그 전통찻집 비슷한 찻집을 찾아 들어갔다.

예전에 동료들과 왔었을 때, 주인 사장님이 아이스크림을 직접 만드신다고 했다.

거기에 커피를 부어먹으면 ㅡ아포가토ㅡ인데 그때 먹었던 그 커피가 아주 기가 막히게 맛있었던 기억이 났다.


일단 냉큼 자리를 잡아 앉았다.

1시간을 달리고 달려온 전통 찻집에서 맞선녀는 아포가토를 달라고 한다.

그 남자는 "저도 같은걸로요~!" 하지 않는다.

그분은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앉는다.


다음 펌ㅡ'골드 아보카도 샷잔 세트'


아하하하하,,, 어색한 침묵이 시작되었다.

간단한? 자기소개 시간을 갖고 또다시 어색한 침묵이

.

.

.


우리가 주문한 메뉴가 나왔다.

아..! 다행이다.

일단은 마시며 시간을 버텨 보자,

까만 아메리카노와

내가 주문한,


아... 포.... 가... 토... 가 나왔다.


흠.... 이게 뭘까?


.

.

.

삼색 아이스크림, 레인보우 스프링클스, 아이스크림 가루로 검색 -다음 펌-


일단은 정갈한, 전통찻집 도자기에 세쿱의 삼색 아이스크림이 아주 예쁘게 담겨있고,

저 레인보우 가루가 흐드러지듯 뿌려져 있었다.

거기에 커피가 아주 촉촉이 담겨 있는.....


흠...

가게를 잘못 들어온 모양이다.

내가 갔던 그 카페가 아니다!

외곽지역의 카페들은 다 비슷해서 헛갈리기도 했지만, 내가 잘못 들어왔는데 잘 못 들어온지도 몰랐다.


그렇다.

나는 길치에,

눈썰미도 없어서,

난생처음 와 본 카페에 와본적 있는 척,

"아포가토 주세요" 라고 내가 주문했을 때,

카페 주인이 당황을 하시며 다시 나에게 "뭐라고요?" 라고 되물었을 때라도 눈치를 챘어야 했다.


그때 나는 다시 아주 친절하게

"아이스크림에 커피 타서 마시는 메뉴요~!^^"

라고 아주 상냥하게 아포가토의 정체를 풀어 화답하였으니,

그 주인은 나의 미소가 부끄럽지 않게

메뉴에도 없는 그 메뉴를 즉석 해서 만든 듯하였다.



생전 처음 보는 맞선녀가 자기를 태우고 어둠 속을 1시간을 달리더니, 공군 사령부 앞에서 군인들에게 저지를 당하고, 또 돌고 돌아 전통찻집엘 들어가서 아주 당당히 (전통찻집과는 어울리지 않은) 아포가토라는 메뉴를 주문하고, 그 메뉴가 나왔는데 삼색 아이스크림 세쿱에 알록달록 뿌려진 레인보우 가루에 커피가 잠겨있는 무엇인가를 마신다.



흠....

그는 나를 어찌 생각했을까?

정말, 정신이 조금은 나갔거나

어디가 조금은 모자랐거나

나를 그런 여자라고 생각을 해도 나는 할 말이 없다.


그 이후로도 나도 정신을 놓긴 했나 보다,

'이 만남은 틀렸구나?' 확증했는지, 의식의 흐름대로 그분과의 대화를 이어나갔다.

마음이 한결 편했다.

어른들이 주선해 준 만남이라는 사실을 잊고, 오늘 보고 영원히 안 볼 사람처럼 나는 한참 대화를 나눴다.


그 와중에서도 몇 가지 체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일단 만나고 왔으니, '엄마 마음에 안 맞는 사람이었어!'라는 이야기는 해야 했기에 몇 가지 팩트체크를 했다)


몇 번의 만남과 이별 끝에 나의 이성을 보는 눈은 나 스스로도  믿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고,

내가 혹 결혼을 하게 된다면, '엄마와 할머니께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리라!' 생각을 하였기에

엄마와 할머니께서 원하는 몇 가지의 나의 배우자 조건들이 있었다.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엄마의 조건

1. 부잣집은 싫다.(너무 차이나는 결혼은 싫다고 했다)

2. 자기 일을 성실히 잘하는 사람이면 좋겠다.(직업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만나기는 했다)


할머니의 조건

1. 건강! 건강! 무조건 건강!

2. 외동이 아니라, 형제나 자매가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대충 이 정도였던 것 같다.

일단 이 조건보다 위는 우린 '크리스천 가정'이기에 믿음이 제1등 조건이긴 했다.

(나는 믿음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그건 내 양심의 문제이긴 했다만...!)

몇 번의 대화를 나눠보니 이분이 전형적인 '교회 오빠'라는 사실은 확실해졌다.


하지만, 할머니와 엄마의 몇 가지 조건들은 사실 처음 보고 알 수가 없는 부분이긴 했다.

난 이날 정말 정신줄을 놓은 것은 확실했다.

대충, 실없는 대화들을 동네 오빠 만나듯 수다를 한없이 떨고는,


아!!!

제가 몇 가지만, 여쭤봐도 될까요?

혹시...

1. 집이 부자세요?

2. 본인의 일은 적성에 맞으신가요?

3. 건강하세요?

4. 가족관계는 어찌 되실까요?


돌이킬 수 없는 질문들을 던졌다.

그는 이 말을 듣고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정말 이보다 더 무례하고 무례한 사람이 있을까?


그는

아주 침착히 대답을 이어나갔다.

집은 부자가 아니며, 하고 있는 일을 할만하며, 건강은 최근에 건강검진에 양호하다고 나왔으며, 가족은 누나가 2명이라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나로 인해 당황스러운 시간들을 끝내고 커피숍을 나왔다.

다시 그를 1시간에 걸려 처음 만난 그 주차장으로 갔다.


그러곤 작별을 고하고 돌아서려는데, 대뜸 나를 붙잡았다.

"혹시 연락을 계속 드려도 될까요?"

헙.. 순간 당황했다.

그 말을 듣고 싶은 마음도 없었지만,

그분의 입에서 나올 줄도 몰랐다.

그래서 머뭇머뭇 있다가,,,,

"동그라미, 세모, 엑스 중에... 세모이긴 한데...;;"

라고 아주 작게 혼잣말아닌 혼잣말을 했다.

"뭐라고요?"

"아... 세모이긴 해요....!"

"아...! 세모요??? 네... 그 정도면 충분해요. 그럼 연락드릴게요!"

그렇게 우리의 첫 맞선은 끝이 났다.






 그렇게 우리는 어색한 만남을 이어가고 있었다.

어느 주말 우리는 만나기로 했는데, 울릉도로 출장을 가서 이번 주말에 만나기로 한 약속을 못 지키겠다고 했다. 나는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약속이 있던 토요일이 되자, 다행히 오늘 배가 떠서 나오게 되었다며 저녁에 나를 만나자고 하는 것이었다.


문득 우리의 반쪽 가족여행이 기억이 났다.

울릉도에서 포항까지 3시간, 포항에서 여기까지 3시간, 그렇게 6시간을 오면 저녁 8시나 될 텐데... 

그쪽이 너무 피곤하기도 할 것 같고 나의 통금시간은 9시라 안된다고 말을 했더니,

'1시간만 이라도 볼 수 있다면 충분하다' 라며 그 먼 길을 달려오셨다.

그러고 정말로 우리는 만난 지 1시간도 채 되기 전에 헤어졌고,

그분은 다시 3시간을 운전해 포항으로 돌아갔다.



첫 만남에 별로 내 스타일이 아니었던 그 어색한 남자는,

그날 나와의 첫 만남이 신선한 즐거움 이었다고 했다.

(훗날 물었더니, 그날의 기억이 너무 웃기고 어이 없어서 자꾸 생각이 났다고 했다)


그러곤 출장을 간 울릉도에서 고작 1시간 나를 보기 위해 달려와 주었다.


그 남자의 진심과 마음난 감동을 했다.

내 마음이 가장 크게 움직인 이유 였겠지만!

정말 그남자는 첫인상과 다르게 정말 괜찮고 멋진 사람이다.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말라는 말은.. 정말! 맞는말씀)


처음보는 여자의 무례함도 웃음으로 넘길 수 있는 멋진 남자였다.

(그게 나여서 그랬을거라고 믿고 싶지만, 내 남편은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그렇게 친절하고, 멋진 사람이다)


지금도 그러합니다만,,,,^^

대강 철저히(?) 고른 탓에 약간의 반전도 있었다.

(그 반전 이야기도 곧 글로 남길수 있었음 좋겠다!)


그렇게 나는 포항으로 시집을 갔고,

지금은 포항을 떠났다.


하지만 포항을 떠나온 지금도,

나는 나의 고향보다 남편의 고향을 더 그리워하며 살고있다.


(남편..  퇴직하면 우리 꼭 다시갑시다!!!!)



 

남편이 찍은 포항 바닷가



"나는 대강 철저히 살기로 했다" -브런치 북-이 이글 다음에 연결 되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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