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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반짝 빛나는 May 13. 2022

지금 알고 있는걸 그때 알았더라면...

아니, 그때 알았더라도...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도

내 인생은 썩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거라는 걸

나는...

아주 잘,

알고 있다.







도서관에 책을 빌려 집으로 오는 길엔

늘 쓰리 학세권(초. 중. 고가 붙어있어서) 사거리를 지난다.


코로나가 잠잠해져서 인가?

오랜만에 점심시간 운동장엔 아이들이 가득했다.

남자아이들은 체육대회 준비를 하는지 운동 경기를

여자아이들은 열심히 응원을 하고 있다.


까르르 웃음소리가 정겹고 사랑스럽게 들려온다.

속으로 생각했다.

'좋을 때지...!

마음껏 공부하고 마음껏 놀고

추억도 많이 쌓고 매일이 즐거울 때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요즘 말하는 전형적 꼰대 같아서

 밖으로 내지 못할 말을 중얼거리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러고는 상상해본다.

나이 마흔에 뒤늦게 공부 바람이 불어서

집구석에 콕 박혀 1일 1독하고 있는 지금의 나를 바라보며


지금 읽은 공부법을 저 때 알았더라면...

지금 읽은 독서법, 경제서, 자기 발서를 20대에 알았더라면...

지금 알고 있는 깨달음과 깨우침을 30대에 알았더라면...


내 인생이 조금은 달라졌을까?

.

.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과거의 내게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하라고 말해줄까?

그 시절을 열심히 더 즐기라고 이야기해줄까?


하지만 나는 안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도

내 인생은 썩  크게 바뀌지 않았을 라는 것을...





대학교 4학년 되기 전

적성에 맞지 않는 대학 전공으로 도저히 진로를 정할  없어서 휴학을 결정했다.

겨우 설득한 엄마와 함께

아빠를 속여야해서

공무원 준비하는 척(?)하면서 반수(대입 수능)를 준비했다.


너무 절실하고 절박한 상황이었다.

24살에 다시 고3이 되었으니

지금의 마음으로 뭐든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메가스터디 유명강사의 수업을 듣고 공부하며

몇 개월 만에 국어 및 사회 암기 과목들을 1 등급으로 다 올렸건만

도저히 영어와 수학이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이미 못 했기도 했고, 너무 오래 안 했기도 했고...)


간절함이 불가능함을 무조건 이길 것이라고

엄마에게 호언장담하며 시작한 공부였는데,

인생의 마지막 기회를 성공시키지 못할 것 같다는 좌절감에 휩싸였다.


그때 내가 목표를 정해둔 대학과 전공은

전체 1등급이 나오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나의 능력을 심히 과대평가하고 시작한 공부였을지도 모른다.


사람도 안 만나고 휴대폰도 정지시키고

미디어조차 일절 끊고 고립된 반년을 보냈던 내가...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는 벼랑 끝에 서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유일한 빛을 보는 시간,

아파트 베란다 창 밖으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던 그때의 내가 떠올랐다.

16층 아래로 보이는 작은 사람들을 보면서

'뛰어내리고 싶다'라는 마음이 든 순간

내 인생 처음으로 느꼈던 아주 무서운 생각이었다.

.

.

결과는...?

그렇다.

인생역전에 실패한 나는,,,

반년이 지나 다시 대학 4학년으로 돌아가

무사히? 졸업을 했다.





24살, 다시 꿈을 위해 공부했지만

내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 그 시간들이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고

비록 최선을 다했더라도

반드시 최고의 결과가 도출하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을...

지금의 나는 잘 안다.


그때의 마음가짐이야 정말 간절했겠지만,

실패를 할 수도

마음먹은 것처럼 공부가 잘 안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지금의 나는 잘 안다.


그때는 실패   내 인생이 망한 것처럼 한없이 좌절스러웠고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생각했던 그때의 나는

얼마나 많은 다른 선택지가 있었다는 것을...

이제 마흔이 된 나는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감사하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지금이라도 알아서 감사하고

지금이라도 깨달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


지금이라도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다시 10대의 시절로 돌아갔더라도

적당히 공부하고 적당히 놀았을 거라는 걸 안다.

그 모  나 이니까..





반년 전,

건강하셨던 아버님께서 뇌경색으로 쓰러지셔 왼편 마비가 와서 재활을 하지 않으면 다시 거동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6개월이 재활의 골든 타임이라는 소식과 함께 아버님께서는 우울증 약을 복용하시며 입원해 계셨다.

(갑자기 수족을 사용하지 못하는 뇌경색 환자들에게 종종 우울증이라는 마음의 병도 함께 온다고 한다.)


멀리사는 우리는 아버님이 다시 걷지 못하실까 봐 매일 영상통화를 하고 아이들의 재롱을 보여드리며 재활의 의지를 가질 수 있으시도록 늘 응원의 문자와 연락을 드렸다.


움직이지 않는 팔과 다리를 억지로 움직이는 연습을 해야 하는 일이 얼마나 고단하고 힘든 일인지 그땐 잘 알지 못했다.


자식들에겐 오직,

재활의 골든 타임은 6개월!  

이 사실만이 머릿속에 콕 박혀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알지... 나도 안다. 열심히 해야 하는 거 잘 안다.  

그런데 너희들 학교 다닐 때 공부 무조건 열심히 하면 1등 하는 거 좋은 대학 가는 거 알지 않냐?  

그런데 그게 되더나?

그렇게 살아지더나?"

...


삼 남매를 포함한 며느리인 나까지도 입을 꾹 닫고...

아무 말씀도 드릴수가 없었다.


다 알지만 할 수 없는 일도 있다.

다 알아도 하기 힘든 일도 있다.


하지만 아버님께서는 우리의 조급함도 사랑과 걱정으로 버무려진 마음이란 것을 이미 알고 계셨다.

매일매일 너무 힘드시지만,

하루 두 시간씩 열심히 재활을 하고 계신다.


당신은 당신의 방식대로

우리는 우리의 방식대로 응원을 보낸다.






지금 알고 있는걸

그때 알았더라면 물론 좋았겠지만,

금이라도 알게 된 것에 감사한다.


아! 물론 지금 알았더라도

별반 다를 것 없는 내 인생이 똑같이 흘러갈지라도... 말이다.  


청년:... 아! 아까워 죽겠어요. 10년 아니 5년만이라도 더 빨리 알았어야 했는데, 만약 5년 전, 아니 취직하기 전에 제가 아들러의 사상을 알았다면....
철학자: 아니, 그건 아니지 자네가 10년 전에 알았더라면 하고 생각하는 것은 '지금의 자네'가 아들러의 사상에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야.
10년 전의 자네가 어떻게 느꼈을지는 누구도 모른다네, 자네는 이 이야기를 지금 들을 운명이었던 거야.
-미움받을 용기.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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