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를 말에서 떨어뜨린 문장의 힘

최치원 <토황소격문>

by 소중담

최치원은 12세에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18세에 빈공과에 합격하였다. 이후 중국 각지를 다니며 관직 생활을 하였는데, 879년 그 유명한 '황소의 난'이 일어난다. 최치원은 회남 절도사였던 고변의 종사관으로 활약하면서 명성을 떨쳤는데, 이때 황소에게 보냈던 격문은 그를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 만들어 주었다.

그중 몇 문장을 소개한다.


"광명 2년(881년) 칠월 여드렛날, 제도도통검교태위가 황소에게 알리노라.

바른 길을 지키며 상도를 따르는 것을 도(道)라 하고 위험을 만나 변고를 다스리는 것을 권(權)이라 한다. 지혜로운 자는 시세에 순응하여 성공하고, 어리석은 자는 이치를 거슬러 패망한다...(중략)


너는 본시 먼 시골 백성으로 갑자기 억센 도적이 되어 우연히 시세를 타고 감히 강상을 어지럽히더니, 종국에는 불측한 마음을 품고 무엄하게 제위를 노려 도성을 침범하고 궁궐을 더럽혔다. 이미 죄가 하늘까지 닿을 지경이니 반드시 패망하고 말 것이다...(중략)


너희 같은 무리들이 하는 짓이 어느 시대인들 없겠는가. 멀리는 유요와 왕돈이 진나라를 엿보았고, 가까이는 안녹산과 주자가 황실을 괴롭혔다..(중략)...그런데도 잠시 간특한 꾀를 부렸을 뿐 끝내는 더러운 종자가 섬멸되고 말았다...(중략)


하물며 너는 미천한 평민으로 태어나 밭두렁 사이에서 일어나 방화와 약탈을 좋은 일로 알며 살인과 상해를 급한 일로 생각하니,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큰 죄만 있고 속죄를 할 만한 조그마한 선행도 없다. 천하 사람들이 모두 백일하에 죽이고자 생각할 뿐 아니라 땅속의 귀신들도 벌써 암암리에 없애고자 의논하고 있다. 비록 잠깐 기운을 빌려 숨을 쉬고 있지만 벌써 정신은 죽고 넋은 빠졌을 것이다...(중략)


너는 듣지 못했느냐. 『도덕경』'회오리바람은 아침 내내 불지 않고 소나기는 하루 종일 내리지 않는다.'라 하였고, 천지도 오래갈 수 없거늘 하물며 인간이랴. 또 듣지 못했느냐. 『춘추전』'하늘이 착하지 않은 자를 잠시 도와주는 것은 복을 내려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악행이 쌓이게 하여 벌을 내리려는 것이다.'라 하였다. 지금 너는 간악함을 감추고 사나움을 숨기며, 악이 쌓이고 재앙이 가득한데도 위험을 편안히 여기고 미혹에 빠져 돌이킬 줄 모른다. 이른바 제비가 천막 위에 둥지를 지어 놓고도 방자하게 활개 치며, 물고기가 솥 속에서 펄떡이지만 곧 삶기는 꼴을 보는 격이다...(중략)"




‘격문’을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어떤 일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어 부추기는 글'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군대에서 자주 사용하던 문서이기도 한데, 전투를 앞둔 아군에게는 전투의 정당성을 설파하여 명분과 사기를 얻고, 적에게는 전쟁의 명문을 의심하게 하여 사기와 전투력을 저하시키려는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최치원의 이 격문이 유명한 것은 황소가 이 격문을 읽다가,

“천하 사람들이 모두 백일하에 죽이고자 생각할 뿐 아니라 땅속의 귀신들도 벌써 암암리에 없애고자 의논하고 있다.”라는 대목에 이르러 놀란 나머지 말 위에서 떨어졌다는 일화가 전해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문장이 지닌 힘'이다.


하늘의 도와 사람의 도리를 펼치면서 옳고 그름을 논하고, 도리를 거스르는 자들에게 재앙과 화가 반드시 닥쳐온다는 사실을 과거의 사례를 들어 증명하고 있다. 이 방법은 효과적으로 상대를 압박하고 두려움을 심어준다.

권위있는 두 경전 『도덕경』과 『춘추전』의 문구를 인용하면서,

'네가 잠시 세력을 얻어 하늘의 도움을 받고 있는 듯 착각하고 있으나, 오히려 하늘이 너의 악행을 쌓이게 하여 벌을 내리려는 것이요, 회오리바람과 소나기처럼 잠시 흥하다가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준엄하게 꾸짖는 최치원의 글솜씨가 탁월하다.


한편 이런 생각을 해본다.

'하늘의 도와 사람의 도리를 거스르는 자에게 반드시 재앙과 화가 닥친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황소가 두려움에 떨고 말에서 떨어진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런 믿음조차 없었다면 최치원의 문장을 보고도 콧방귀조차 뀌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황소도 썩 괜찮은 사람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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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치원의 문장은 민음사에서 출판된 『한국 산문선』에서 발췌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