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향기, 나를 채우는 시간
"나를 채우는 시간"
올 9월쯤이었나. 문득 달력을 넘겨 보다 올해도 겨우 3개월밖에 남지 않은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언제나 내 삶에 9월은 있었는데 유독 2022년의 9월은 왜 내게 특별하게 느껴졌을까?
어디로 흘러가는지도 모른 채 정신없게만 이 시간들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지난 시간을 되짚어보면, 연말이 다가올 때마다 직장에서는 한 해의 업무 마감으로, 개인적으로는 이런저런 사람들과의 인간관계에 치이며 정작 소모되는 나 자신만 남게 된 채, 뭔지 모를 약간의 쓸쓸함을 느끼며 올해도 힘들었어.. 자조하며 한 해를 보내버리기에 바빴다.
그때 나는 내가 마치 바다 위의 부표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실재하지만 속은 비어있는, 그 무게는 가볍고, 세상의 눈에 띄는 존재이나 크게 아름답지도 않은 그런 것
올해는 부표 말고, 러버덕 정도는 되고 끝내고 싶어
평범한 직장인인 내가, 일상에서 갑자기 어떤 거창한 일을 벌이거나 도전할 수는 없었다.
그동안 하고 있던 일들에서 의미를 찾자,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더 발전시키고 기존의 것에서 연관된 새로운 영역에 눈을 돌리고 확장시켜보자
내 일상에서 꽤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던 주일미사. 그리고 성가대 활동에서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고 있는 것의 의미와 가톨릭 성가의 아름다움, 그 가치에 대해 깊이 느끼고 있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미사 시작 전 읽는 주보에서 클래식에 관한 칼럼을 우연히 읽게 되었다.
G선상의 아리아, 무반주 첼로 모음곡으로 유명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곡가 정도로 알고 있던 바흐가 아주 독실한 신앙인이었다는 사실이 우선 놀라웠고 매주 바흐와 그의 음악에 관한 칼럼을 읽으며 '클래식 음악'을 더 많이 접하고 싶어졌다.
매주 예술의 전당이나 유명 피아니스트의 공연을 보러 다닐 수는 없겠지만, 매일 아침 일을 시작하기 전 유튜브로 바흐부터 시작하여 베토벤, 모차르트, 쇼팽,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의 음악을 듣다 보니 어느 날부터는 아침에 물을 마시듯, 당연한 습관처럼 대작 클래식 작품들로 아침마다 몸과 정신을 깨끗하고 아름답게 채우고 있었다.
그즈음 다양한 책을 읽고 있었는데 그중 앞으로 인생의 내비게이션으로 삼겠다고 생각한 '논어'에서도 끊임없는 배움의 중요성과 함께 반드시 책과 함께 좋은 음악을 가까이할 것을 강조하였다.
하루의 시작을 아름다운 클래식으로 채우기 시작하면서, 무미건조한 내 일상도 다양한 선율로, 다채로운 색깔로 물들여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개인적으로는 아침에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으로 우아하면서도 경쾌하게 하루를 시작하면 일과 사람을 대하는 내 자세와 마음가짐도 더 반듯하고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여기에 조금 곁들이자면, 따뜻하게 내린 블루마운틴 커피 한 잔으로 어느 날은 마치 내가 지금 있는 이 공간이 성냥갑 같은 건조하고 딱딱한 공간이 아니라 작은 음악 연주회장에 홀로 앉아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우리들 대부분 누구나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산다. 때로는 옅은 회색 같은, 어느 날은 조금 은은한 베이지색 같은 그런 채도가 낮은 일상을.
여기에 하루 10분, 아름다운 음악으로 일상의 아주 작은 부분을 매우 선명한 색으로 채울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물들어진 작은 조각이 모여 이전과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갈 수 있음을.
클래식은 영원하다
내 육신은 우주에서 온 하나의 점이자 유한한 삶을 살다 그저 사라지는 존재일지라도
내 영혼은 보이지 않는 것들로 가득 채워 영원할 수 있기에..
영원한 고전, 클래식과 함께 앞으로도 매일 나 자신을 잘 채워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