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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로봇 Nov 02. 2022

우리 화분 같은 사이가 되자

너와 나, 우리의 적정 거리  

지금 직장에 첫 발령을 받고 근무를 시작하면서부터 나름대로의 난관(?)에 부딪혔었다. 

조직의 특성, 업무의 성격, 구성원들의 마인드 등등 아는 것 하나 없는 낯선 곳에서 회사에서는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아  매일 고군분투하는 일상이었고 게다가 몇 년 만에 하는 타지 생활까지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었던 그때.

어떤 위로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우연히 화분 하나를 들이게 되었다. 


온전히 '내 것'이라는 걸 갖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어려웠던 그때 나는 어쩌면 내 공간, 내 영역 안에 두는 그 작은 화분이 위안이 되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나는 아주 성실하고 친절한 식물 집사는 아니었다. 바쁜 업무 시즌이 다가오면 그 핑계로 며칠 동안 물을 못 주는 경우도 허다했고, 또 어떤 날은 마음이 너무 울적해서 눈뜨고 출근해 사무실에 도착하는 것만으로도 벅차 하며 출근한 걸로 어느 정도 내 할 일은 다 한 거라고 되뇌던 적도 많았으니 누군가 그 시절의 나를 보면서 자기 화분을 방치하는 불성실한 식집사 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깊은 마음에서까지 내 화분들과 멀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단연코!

팀장님 결재를 받으러 왔다 갔다 돌아다니면서, 정수기 물을 마시러 가면서, 점심을 먹고 들어오면서 볕이 잘 드는 내 자리 창가 쪽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화분들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는 언제나 이렇게 말했다. '요새 많이 못 챙겨줘서 미안해. 그래도 내가 항상 생각하고 있어. 내 마음 알고 있지? 조금 바쁜 거 정리되면 다시 사랑해줄게. 고마워'


바쁜 남자가 나쁜 남자라는 말도 있던데... 소위 말하는 나쁜 남자의 전형처럼 지금은 다정하게 못해줘서 미안해. 그래도 항상 내 곁에 있을 거지? 같은 식의 망언(?)을 던진 건 아닌가 싶다.


어쨌든 가끔은 그렇게 무심하게 굴었지만, 비가 오는 날에는 직접 자연에서 오는 물을 먹이고 싶은 마음에 사무실 카트에 화분 세네 개를 옮겨 옥상에 가져다 놓기도 하고 오늘도 잘 커서 줘서 고맙다고 예쁘다고 말해주기도 하면서 그렇게 내 화분들은 나의 고군분투 일상생활을 함께했다. 


몇 년동안 사회생활을 하며 정말 내 곁에 오래 남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한순간에 곁을 떠나버리는 경험도 하고, 잠깐 보고 멀어지겠지 하던 사람과 의외로 오랫동안 관계를 이어나가는 신기한 경험도 하면서 나는 인간관계의 부질없음 같은 허무주의에 빠진 게 아니라 오히려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앞으로의 인생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으며 살아가야 할지 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정표를 얻게 되었다. 


나를 떠나갔던 사람들을 떠올려보면 다는 아니지만 대부분 내가 너무 금방 뜨거워져서, 그들에게 너무 진심이어서 그들과 멀어졌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처음에는 그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지만...

나는 내 우정이, 내 사랑이 너--무 예쁘고, 진실되서 그 감정을, 그 시간을 지나치게 소중히 다루다 보니 오히려 지나쳐 그것이 서로에게 독과 부담이 되어 깨져버린 거였다. 


너무 소중할수록 때로는 (내가 너에게, 네가 나에게) 무심하게 흘러가는 그 시간도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줄 알았어야 하는데.. 

하루라도 물을 주지 않으면, 나를 사랑스럽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큰 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안절부절못하며 혼자 실망하고 외로워하고 불안해하다 나 스스로 말라버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물 주는 것도 건너뛰고 무심하게 지나치기만 했던 내 화분 콩콩이는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푸릇푸릇 아주 잘 자라주었다. 

조그마한 임시 화분에 심어져 있던 3천 원짜리 꽃기린은 사람들이 보며 나무가 아니냐고 할 정도로 고맙게도 나와 함께 잘 자라주었다.

내 화분들을 보며 많은 것을 깨닫고, 느끼고, 생각했다. 

우리가 화분 같은 사이였다면 조금 더 오래, 멀리 함께 갈 수 있었지 않았을까?

아쉬움도 많지만 앞으로 지내야 할 날이 나에게는 더 많기에 

이제부터라도 마음에 새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화분 같은 사이가 되자.(사랑하는 만큼, 너무 사랑하고 싶을 때 그때 명심해야 할 것. 지나친 관심과 기대는 금물이다)" 


+ 아! 지나치게 관심을 가져도 되는 게 하나 있다. 

나 자신. 

나의 마음, 때로는 들키고 싶지 않은 모습, 칭찬받아도 마땅할 내 행동, 나 자신이 스스로 정한 약속

이런 부분은 지나치게 가까이 들여다보아도 괜찮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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