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대 효과

by 긴기다림

특정 지역의 상권이 있습니다. 이 지역과 강남이 연결되는 전철이 생긴다고 합니다. 특정 지역의 상인들은 환호합니다. 전철을 타고 우리 상권으로 올 것을 기대합니다. 앞으로 손님들이 더 많아질 것이고 상가들은 돈을 더 벌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전철이 개통되고 많은 사람들이 전철을 이용합니다. 이상합니다. 이 지역 상권에 더 많은 사람이 유입되지 않습니다. 그게 다가 아닙니다. 오던 손님도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상인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오래전 상가를 공부할 때 ‘빨대 효과’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교통이 좋아져 우리 지역이 중심지와 연결될 때 우리 지역의 상가를 이용하던 사람들이 개설된 교통을 이용하여 중심지 상권을 이용한다는 내용입니다. 중심지가 주변지역의 손님을 빨아드린다는 이야기지만 같은 지역 내에서도 심심치 않게 발생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대형마트입니다. 대형마트가 지역에 들어오면 집객효과로 재래시장에도 손님이 늘어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재래시장의 손님이 대형마트로 이동하게 되는 것을 알게 되고 나중에는 적대적인 관계가 됩니다.


상권에만 ‘빨대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에도 있습니다. 직장이 다니기 싫을 때는 직장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직장에서 하는 일도 재미없습니다. 직장동료의 단점만 보입니다. 월급의 노예가 된 것 같습니다. 직장 일을 통해 얻는 보람은 1도 없습니다. 직장이 가기 싫어지면 마음은 부정적인 것에만 머뭅니다. 직장생활의 모든 것이 마음의 블랙홀로 흡수됩니다. 직장은 고해인가요? 고통을 벗어나려면 지금 직장을 그만두어야 할까요?


사람들은 직장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런 생각이 깊어지면 직장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습니다. 당장 그만두지 않으면 나의 삶은 고통으로 가득할 것 같습니다. 여기서 멈춰야 합니다. ‘여기까지’라고 마음속으로 외쳐야 합니다. 직장에 대한 지금의 부정적인 생각대로라면 지금까지의 직장생활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직장생활이 단기간에 완전히 변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직장생활이 변한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변한 것입니다. 내 마음도 잠시 변했지 영원한 것은 아닙니다. 잠시 마음이 다른 곳으로 흘러간 것입니다. 마음에 잉크를 쏟았다면 잉크가 옅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잉크로 물든 마음이 평생의 마음일 수 없습니다. 마음에 쏟아진 잉크를 보고 잉크색이 마음인양 행동하면 잉크가 옅어진 후의 마음을 책임질 수 없습니다.


어떤 마음이 일순간에 몰려와 큰 결정을 강요할 때는 마음의 빨대를 뽑아야 합니다. 주변의 모든 부정적인 것을 빨아들이는 빨대를 뽑아내야 합니다. 마음의 빨대가 직장을 그만두고 싶은 이유를 빨아들인다면 깊게 호흡한 후 다른 생각을 꺼내야 합니다. 직장이 있어 내가 누리고 있는 것을 말입니다. ‘현금흐름을 만들어 줘서 생계에 대한 큰 걱정을 하지 않는다’, ‘직장인으로서 사회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익숙한 일을 함으로써 매일 낯선 일에 놓이지 않아 평온하다’, ‘직장 외의 시간에 나만을 위한 일에 전념해도 뭐라 할 사람이 없다’ 등 직장으로 인해 누리고 있는 것들을 꺼내야 합니다.


지금 직장을 버리면 새로운 일이 턱 나올 것 같은 생각을 하며 모험을 꿈꾸기도 합니다. 직장을 던지지 않으면 영원히 직장에 매여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월급에 메이면 더 큰돈을 벌 수도, 돈을 벌 수 있는 다양한 기회도 영영 얻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럴까요?


‘배수의 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나라 한신이 10배가 넘는 적을 이기기 위해 강을 등지고 전쟁에 임하여 이겼다는 이야기입니다. 적에게 죽든 강에 빠져 죽든 어차피 죽는다면 적과의 싸움에서 삶을 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 이기게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일반적인 병법에서는 기피하는 전술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극히 이례적입니다. 드라마틱하다고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백에 아흔아홉은 패합니다.


직장이 싫다고 새로운 일도 찾지 못한 상황에서 직장을 팽개치는 것은 용기가 아닙니다.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 새로운 일을 찾는 것의 필요조건도 충분조건도 아닙니다. 직장을 그만두는 것과 내가 하고 싶은 새로운 일과는 인과관계가 강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일을 하고 싶은 마음에 기존 일을 바로 버리면 새로운 일은 더 멀어질 수 있습니다.


새 구두를 사기 전에 헌 구두를 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새 구두를 사려는 마음에 들떠 헌 구두를 버리면 맨발로 한참을 지내야 합니다. 새 구두를 사기 전에 헌 구두의 편함을 마음껏 누리는 것도 지혜로운 선택입니다.

조급하지 않아도 됩니다. 조바심으로 마음을 옥죄면 마음은 예상치 않은 곳으로 튑니다. 마음이 편해질 때 그때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도 충분합니다. 되는대로 놔두어도 소망과 의도만 가지면 적당한 시기에 우리 앞에 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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