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시장에 변동성이 커지면 공신력 있는 사람의 말을 듣고 싶어 합니다. 며칠 간의 변동성 구간에서 패닉의 역사를 찾아보기도 하고 투자계 구루들의 지혜를 찾아보기도 합니다. 투자계 셀럽의 입을 주시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면 변동성이 큰 시기에 피해를 줄이고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기대한 결과와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사이토 다카시의 ‘일류의 조건’에서 ‘잘 훔쳐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낸 사람의 행동을 잘 따라 하면 빠르게 이룰 수 있다는 말입니다. 투자계 구루들의 지혜를 빌리는 것은 ‘잘 훔치는 것’과 같은 맥락일까요?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잘 훔치는 것’은 특정 영역에서 탁월함을 보여주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그대로 따라 하는 것으로 끝나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대단한 업적을 남긴 사람의 지혜를 따라 그대로 하면 대부분 실패합니다. 위인들의 지혜는 전 인생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깨달음입니다. 우리가 위인들의 지혜를 가져다 쓴다고 위인들의 경험까지 가져오지는 못합니다. 경험을 기반으로 한 깨달음이 아니라 깨달음만 가져오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 채 적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에게 적용하면 조금만 상황이 달라져도 다른 결과를 가져옵니다. 생각한 것과 결과가 다르면 당황하게 되고 위인에 대한 믿음은 깨져 버립니다. 이런 연유로 위인, 구루, 셀럽의 지혜를 온전히 흡수하지 못하고 한두 번 적용한 후 폐기처분하게 됩니다.
전설적인 투자자의 책을 독파했다고 해도 투자를 잘하지 못하는 이유도 같습니다. 전설적인 투자자가 책에 써 놓은 지혜는 수많은 실패를 딛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쌓아온 깨달음입니다. 수많은 실패 속에서 느꼈던 외로움, 두려움, 자괴감, 공포감, 등을 이겨낸 힘으로 도달한 것입니다. 그런 후에 얻은 깨달음이니 선명한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선명한 언어로 표현된다는 것은 수많은 경험에서 잔가지를 수도 없이 쳐냈다는 것을 말합니다. 선명함만 남아 있으니 일반적인 사람은 숨겨진 생각을 읽어내기 어렵습니다.
‘행간을 읽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글에 쓰인 외형적인 문구의 의미만이 아니라 쓰이지 않은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많은 경험이 쌓일수록 개별 경험과 깨달음은 차이가 납니다. 경험과 깨달음의 경로를 세세하게 명시하면 행간의 의미는 줄어들지만 깨달음의 의미에 대해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을 쓰면서 언급했던 이야기입니다. “나의 문장들이 이해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 나의 책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다. 이 방면의 연구를 거듭해 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다. 그래서 언어 자체에 대한 아주 세세한 설명은 첨언하지 않는다. 부연 설명이 많아질수록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소지가 있다. 그래서 필요한 단어만을 제시함으로써 본질과 벗어날 수 있는 오해의 가능성을 줄이고자 한다” 이런 문장은 아니지만 이런 뜻으로 저작의 난해함을 설명했습니다. 이는 특정 시인들이 취하는 방법과도 유사합니다. 삶의 정수를 가장 간결하고 선명한 언어로 표현하려는 방법입니다. 시에 담긴 것을 모든 사람이 다 이해한다면 그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그것과는 다르게 의미를 아주 깊게 파고들기 위해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모든 것을 제거하는 방법입니다. 읽는 이가 이해하고 못 하고의 문제가 깨달음의 깊이를 잴 수 있는 척도는 아닙니다. 자신의 이해 정도와 위인의 깨달음의 깊이는 관련이 없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지혜를 가져다 사용하면 결과의 여부와 상관없이 지혜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지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결과에 대한 자신의 평가가 따라야 합니다.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왜 이런 결과에 이르렀는지에 대한 복기가 있어야 합니다. 복기의 의미는 실패했을 경우 더 강렬하게 남습니다.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 세상을 본다’고 거인의 통찰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거인의 어깨에 올라가도 각도만 다르게 보일 뿐입니다. 각도만 다르게 보이는 사물의 이치로는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다르게 보이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고 내 삶에 적용해야 합니다. 적용하고 실패한 후에 생각하고, 적용하고 성공한 후에도 생각해야 합니다. 결과에 대한 생각이 따르지 않고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오르는 일은 의미가 없습니다.
삶에서 방향을 찾지 못한다고 위인들의 생각만 좇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깨달음의 과정을 내 경험을 통하여 확인해야 합니다. 확인해서 다르면 바로 잡으려 노력하고, 확인해서 같으면 이정표로 새겨야 합니다. 위인의 지혜는 결과만 가져와서는 의미가 없습니다. 내 삶에 적용한 후의 후속작업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위인의 지혜가 성장의 힌트일 수 있으나 성장의 발판은 나의 실천과 생각이어야 합니다. 나의 실천과 생각이 따라야만 성장은 지속가능합니다. 내 안에는 위인의 깨달음 못지않은 가능성이 담겨 있습니다. 위인의 지혜를 밖에서만 찾으려 하지 말고 내 안의 영혼에서 찾으려는 시도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마중물은 땅밑의 물을 끌어내기 위함입니다. 마중물이 땅밑 물의 쓰임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마중물은 땅속의 물이 나오면 그것으로 역할을 다한 것입니다. 내 인생에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마중물이 아니라 내 안에 담겨 있는 물입니다. 그 물을 계속 끌어낼 수 있으려면 우리는 펌프의 손잡이(자신)를 끊임없이 움직여야 합니다. 마중물을 아무리 많이 준비해도 펌프질을 멈추면 내 안의 물은 한 방울도 끌어올릴 수 없습니다.
삶의 변동성(위기)은 공부의 큰 재료입니다. 위인들의 깨달음은 마중물입니다. 우리 삶이 변동성(위기)에 놓였을 때 위인의 지혜를 한 바가지 퍼서 뿌리고 우리 삶에서의 깨달음을 길어 올려야 합니다. 이런 과정이 자리 잡으면 거인의 어깨는 마중물로서의 의미를 가집니다.
오늘도 자신의 삶에서 도약을 시도하는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