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만 하는 것은 수율이 좋지 않다고 합니다. 노오력만 하면 힘만 들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다고 합니다. 부모님 세대가 근면, 성실하게 평생을 일만 했지만 생활은 녹녹지 않음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이런 말들은 우리의 노력을 돌아보게 합니다. 많은 노력이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닌지 마음이 쓰입니다.
1만 시간의 법칙에서도 쉼과 잠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쉼과 잠이 충분하지 않으면 많은 시간 연습을 해도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한다고 합니다. 노력을 하라는 것인지 그러지 말라는 것인지 정확하게 이해되지 않을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도 뜻한 결과에 미치지 못할 수 있다는 말은 의욕을 꺾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입니다.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 노력이 필요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큰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큰 노력이 필요한 것도 당연한 이치입니다. 생각만으로 이루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생각은 실천을 통해서 선명해지고 선명해진 생각이 현실을 만들어 냅니다.
실천에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첫째는 결과를 위해 지금을 참아 내지만 지금의 실천은 괴롭기만 합니다. 괴롭지만 참고 견디며 많은 노력을 한다면 좋은 결과로 보상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길은 원하는 결과에 닿아있지 않습니다. 좋은 결과를 기대하지만 실천하는 지금이 괴로우면 좋지 않은 감정과 생각이 지배하게 됩니다. 감정이 좋지 않고 지금의 행동이 즐겁지 않으면 좋지 않은 결과를 불러옵니다. 좋은 것은 좋은 것과 같이 하려 하고 좋지 않은 것은 좋지 않은 것과 짝이 되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노력과 인내만으로 지금을 채운다면 지금에 대한 나의 생각은 부정적인 것으로 가득해집니다. 미래에는 보상받는다고 생각하지만 보상은 미래이고 고통은 지금인 구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고통이 지금을 지배하고 있으면 미래가 지금이 되는 시점에서도 고통이 지배하게 됩니다. 지금 부정적인 감정이 든다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지금이 고난의 행군이기만 하다면 진흙 길을 걷는 것과 같습니다.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가는 것과 같습니다. 힘은 힘대로 들지만 속도는 나지 않습니다.
둘째는 지금의 실천이 즐거운 경우입니다. 즐거운 척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지금의 노력이 즐거워야 합니다. 지금의 실천이 즐거우려면 실천 자체가 만족스러워야 합니다.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知之者不如好之者),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好之者不如樂之者)’라고 하는 공자님의 말씀과 맥을 같이합니다.
동기이론에는 외적동기와 내적동기가 있습니다. 외적동기는 목적 달성에 대한 상, 칭찬 등이 해당됩니다. 내적동기는 실천 그 자체에 대한 만족감입니다. 물질적 보상을 위한 배움은 외적동기에 해당되며, 배움 자체에 대한 만족감은 내적동기에 해당됩니다. 때로는 외적동기도 필요하지만 배움이 끊임없이 이어질 수 있는 힘은 내적동기에 있습니다.
노력의 결과가 좋으려면 즐거운 노력이어야 합니다. 끊임없는 호기심과 관심이 솟아나는 노력이어야 합니다. 노력이 계속될 때 삶의 의미가 빛을 발하는 그런 노력이어야 합니다. 이런 노력은 힘이 들지 않습니다. 진흙이 아니라 단단한 흙 위를 걷는 것과 같습니다. 때마침 바람이 등을 밀어주기까지 합니다. 실천이 즐거우면 결과의 좋고 나쁨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잠시 좋지 않은 시기가 있다 해도 결국 더 좋은 결과를 맞이하기에 그렇습니다.
좋은 결과는 노력이 있지 않고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노력은 즐거워야 합니다. 즐거움은 호기심과 흥미를 끊임없이 유발하는 대상이어야 가능합니다. 끊임없이 호기심과 흥미를 부르는 노력이라면 좋은 결과에 이미 닿아있습니다.
크게 성취하기 위해서는 노력의 과정이 즐거워야 합니다. 최소한의 노력으로 큰 성공을 꿈꾸는 것은 이쑤시개를 던져 과녁을 뚫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과한 노력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감정을 참아 내기만 하는 노력을 피해야 합니다. 노력이 인내가 아니라 즐거움이 대상이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즐거운 노력으로 가득한 날이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