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한 기능을 익히기 위해 10시간을 꼬박 앉아서 여러 가지를 시도했습니다. 하다가 막히면 책과 인터넷 검색을 통하여 문제를 조금씩 해결했습니다. 어느 지점에서는 몇 시간을 시도해도 실마리가 풀리지 않았습니다. 9시간 정도를 씨름했지만 일의 진척은 20%도 안 됐습니다. 마지막 1시간에 70% 정도가 채워졌습니다. 아직도 100%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어느 정도 원하던 것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배움은 이런 식입니다. 익히는데 10시간 소요된다면 1시간에 10%씩 진전이 있어 10시간이 지나면 100%에 도달하는 식이 아닙니다. 배움은 어느 시점까지는 느리고, 지루하고, 전혀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구간을 지납니다. 안 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드는 구간도 지납니다. 안갯속을 헤매고 나서야 대상이 선명히 보이기 시작합니다.
배움은 균등한 양과 질로 진행되지 않습니다. 배움은 시작에 가까울수록 느립니다. 끝으로 갈수록 둑이 한 번에 터지듯이 단박에 들어옵니다.
무언가를 배우기 시작하면 그 내용에 대한 기초 지식이나 경험이 부족합니다. 특정 배움에 대한 내부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기에 내용이 들어와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새로운 배움이 어떤 형태인지 가늠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담아둘 그물이 필요한데 그물이 없어 새로운 배움을 고정시킬 수 없습니다.
새로운 배움이 들어오면 여러 가지 탐색을 합니다. 이것일까?, 저것일까?,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봅니다. 상대에 대한 상이 정확히 맺히지 않았기에 이런 시도는 대부분 실패합니다. 실패가 쌓일수록 상대에 대한 상이 조금씩 선명해집니다. 선명해지면 것을 깃점으로 해볼 수 있는 것이 조금씩 많아집니다. 선명해진 대상으로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이런 과정은 상대를 더 선명하게 합니다. 끝으로 갈수록 더 선명해진 대상을 상대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처음에는 실체가 보이지 않아 시행착오 확률이 높지만 끝으로 갈수록 실체가 드러나기에 시행착오가 줄어듭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기에 시작의 시간은 느리고 끝의 시간은 짧아집니다. 배움의 대상과 주체에 따라 빨라지는 시기가 달라 시기를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배움을 쉽게 이루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처음의 지루함, 언제부터 속도가 날지에 대한 불확실함, 안갯속을 지날 때의 불안함 등이 어우러져 학습자의 의지를 꺾습니다. 배운 것을 떠 올려보면 모든 것이 다 이런 과정을 거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배움의 시간은 균등하지 않고 어느 시점까지는 정확히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배움은 추상적인 과정을 거치지만 반드시 구체적인 형태에 이르게 됨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새로운 배움이 추상을 지나 정확한 모습이 보인다고 끝은 아닙니다. 모든 배움은 더 큰 배움의 퍼즐 조각입니다. 한 조각으로는 전체 형태를 알 수 없습니다. 조각들이 모여 산이 될지 바다가 될지는 또 다른 배움의 과정을 지나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배움은 늘 이런 과정을 거칩니다. 하나의 배움이 안갯속을 해치고 선명하게 보이는 시기를 거치지만 이 과정도 더 큰 배움을 위한 또 다른 안갯속입니다. 안개가 걷힌 것 같지만 그곳도 여전히 더 큰 배움의 안갯속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어디까지 이를지 모르지만 과정에 대한 이해가 있지 않으면 작은 배움에서 멈춥니다. 삶은 배움이고 배움의 끝은 어떤 배움의 과정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