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부모가 되면 아이도 잘 자란다”는 믿음은 많은 부모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상식이다. 내가 아이에게 얼마나 정성을 다하느냐, 어떤 태도로 대하느냐에 따라 아이의 성격과 인생이 달라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부모들은 아이에게 더 좋은 습관을 들이고, 올바른 태도를 가르치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이러한 통념을 정면으로 반박한 심리학 이론이 있다. 바로 주디스 리치 해리스의 [양육가설]이다.
해리스는 부모의 양육 방식이 아이에게 끼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훨씬 제한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녀는 “만약 부모의 방식이 결정적이라면, 왜 같은 부모 밑에서 자란 형제들이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지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아이의 성격이나 사회성은 부모보다는 또래와의 관계, 그리고 아이가 처한 사회적 환경 속에서 형성된다고 말한다.
해리스는 아이의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세 가지로 나눈다. 첫째는 유전으로, 타고난 기질과 성향이다. 둘째는 공통 환경으로, 부모의 양육 방식이다. 셋째는 개인 환경인데, 여기에는 아이가 속한 또래문화가 포함된다.
해리스는 개인 환경, 특히 또래 안에서 아이가 어떤 사회적 규칙과 문화를 접하느냐가 성격과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사회적 맥락이란, 아이가 살아가는 또래 세계 안에서 경험하는 분위기, 규범, 인간관계를 뜻한다. 예를 들어, 협동을 중시하는 반 분위기 속에서 자란 아이는 자연스럽게 협력적인 태도를 익힌다. 반대로 경쟁과 공격이 만연한 환경에 놓인 아이는 더 공격적이고 방어적인 성격을 갖게 될 수 있다. 해리스는 이러한 맥락이 아이의 정체성 형성과 행동 양식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아이는 왜 부모보다 또래의 영향을 더 크게 받을까? 그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첫째, 아이는 자신이 속한 집단에 적응하고 싶어 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친구와의 관계가 자신의 정체성에 더 중요한 기준이 된다. 둘째, 또래 관계는 평등한 상호작용 속에서 이루어진다. 부모와의 관계가 위계적이라면, 친구들과의 관계는 협상, 갈등, 경쟁, 화해 등 다양한 사회적 기술을 연습하고 적용하는 공간이다. 셋째, 또래 집단의 규범은 아이의 행동을 실제로 바꾼다. 말투, 옷차림, 취미까지 친구들에 맞춰가며 행동을 조정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는 부모가 아무리 반복해서 말해도 잘 바뀌지 않던 습관들이 또래 안에서는 쉽게 바뀌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부모의 역할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해리스는 부모가 직접적으로 아이의 성격을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아이가 어떤 사회적 환경에서 자라느냐를 설계하고 조율하는 조력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부모가 실천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우선, 아이의 친구 관계에 관심을 갖고 자주 살펴야 한다. “요즘 누구랑 잘 지내?”처럼 가볍게 묻고, 어떤 분위기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는지 눈여겨본다. 두 번째로, 아이가 건강한 또래문화를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다. 협동이 강조되는 스포츠나 감정을 나누는 활동, 창의적인 모임 등에 참여시켜 아이가 긍정적인 사회적 경험을 쌓도록 유도한다. 세 번째는 실수와 갈등도 성장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친구와 다툰 일이 생기면 “왜 그랬어?” 하고 혼내기보다는 “그때 너는 어떤 기분이었어?”라고 감정을 꺼낼 수 있도록 도와주면 좋다. 네 번째는 아이의 놀이와 관심사를 함께 관찰하는 것이다.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방식으로 노는지를 지켜보면 아이가 사회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지 파악할 수 있다. 다섯 번째는 부모의 기대보다는 아이의 현재를 인정하는 것이다. 내성적인 아이에게 리더가 되라고 강요하기보다, 조용하고 집중력 있는 면을 인정하고 격려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여섯 번째로는 독서를 통한 간접 경험을 권할 수 있다. 책 속의 다양한 인물과 상황, 감정을 접하면서 아이는 실제 사회 관계에서 필요한 공감 능력과 판단력을 키울 수 있다.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것은 아이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둘러싼 사회적 맥락을 바꾸는 일이다. 지금 부모에게 필요한 것은 더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자기계발이 아니라, 아이가 어떤 세계에서 자라고 있는지를 민감하게 살피고, 그 환경을 조율할 수 있는 실천이다.
부모가 아이의 친구 하나, 놀이 하나, 활동 하나에 관심을 갖고 유도하는 것만으로도 아이의 세계는 바뀔 수 있다. 아이를 바꾸려 하기 전에, 아이가 살아가는 ‘세계’를 바꿔보자. 진짜 변화는 바로 그곳에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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