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은 행복을 줄인다. 돌아보면 행복은 순간이고 걱정은 길다. 걱정은 인생이라는 도화지의 배경이다. 바다가 잔잔할 때는 많지 않다. 끊임없이 파도가 일고, 어떨 때는 많은 것을 삼켜 버린다. 문제가 해결되면 또 다른 것이 온다. 회의적이라서가 아니다. 찬찬히 보면 삶이 그렇다. 좋은 일은 쉽게 과거로 사라지고 현재는 다른 일이 점령한다. 다른 일은 언제나 걱정과 함께 온다.
보유한 자산이 오를 때도 있고, 떨어질 때도 있다.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을 때가 가장 많다. 이익보다 손실을 더 크게 받아들이기에 손실의 기간이 더 길게 느껴진다. 웬만한 자산은 장기적으로 우상향이지만 마음속에 그려진 자산의 차트는 우하향이다. 자산을 사지 않아 나만 이익을 보지 못한 것에 대한 상실감도 있지만, 자산을 사도 상실감이 클 때가 많다.
문제는 다음 문제를 부른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은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는 문제에 직면한다. 이런 일은 죽을 때까지 반복된다. 모든 사람이 다 그럴까? 새로운 상황을 만들려 하지 않는 사람은 이런 일이 없을까? 그렇지 않다. 생계에 치이고, 지옥이라 불리는 타인에게 치인다. 어떤 포지션을 선택하든 삶은 고뇌다.
하고 싶은 것을 내려놓고, 최소한의 의식주로 만족하는 사람은 어떨까? 이런 사람은 환경을 최소한으로 줄이기에 소모되는 감정의 양이 적다. 생물로서의 삶에 만족하고 주어진 인생을 최소한의 비용으로 살아간다면 소모되는 감정은 적다. 남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인연에 연연하지 않는다면 생물학적인 삶으로 마감할 수 있다.
이기적 유전자의 셔틀로써 의미를 다하는 것이 크게 비루하지는 않을 수 있다. 많은 것을 바라든 그렇지 않든 삶은 큰 바다에 놓인 돛단배다. 바다를 가르며 원하는 곳으로 나갈 수 있고 그 자리에 머물 수도 있다. 머물러 있든 원하는 곳으로 가든 바다 위에 놓여 있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움직여도, 움직이지 않아도 한 번의 파도에 가라앉을 수 있다.
삶이 고뇌라 해도 주어진 삶을 마다할 필요는 없다. 생명이 태어나는 것은 세상이 바라는 것이 있어서가 아니다. 생명의 움직임들이 모인 것이 세상이다. 세상의 이치가 생명의 소임을 다 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움직이는 모습이 세상의 이치다. 생명을 다하는 것이 생명체의 소임이고 고뇌는 나와 나 이외의 것이 만나는 곳의 마찰이다. 고뇌는 모든 삶을 관통한다.
부정적인 감정으로 불려지는 것이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부정적인 감정이 없다면 삶을 개척할 수 있을까? 생명은 새로운 환경에 놓이고 환경과의 저항을 겪으며 모습을 바꾼다. 모습을 바꾸지 않는 것은 없다. 모습을 바꾸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으로부터 세상은 멈춘다. 움직임이 없다는 것은 소멸하지 않는 것인데 소멸이 없다는 것은 생기지도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움직임은 멈춤을, 멈춤은 움직임을 전제로 한다. 영원히 멈춰 있다는 것은 움직임이 작동하지 않는 공간이 생겼다는 것이다.
사람은 움직임과 멈춤을 끊임없이 오가야 한다. 변화가 삶인데 변화를 견디는 힘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 힘은 새로운 모든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출발한다. 걱정, 두려움, 공포는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견디는 일이다. 이런 감정을 피하고 싶은 마음은 당연하지만, 선택지가 없는데 찾으려 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가성비, 가심비, 효율성의 말들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속내를 살펴보면 자기기만이다. 어떤 방향으로든 마음의 짐을 덜어내려는 자기 최면이다. 방법이 딱히 있겠나. 삶의 고뇌를 그냥 놔두는 것 그리고 견뎌내는 것이 전부라는 것 외에 무엇이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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