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감과 가난의 두려움 앞에서

by 긴기다림

나로 늙어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은퇴라는 시간 앞에 섰을 때,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걸까? 세상이 축적해 온 소문과 지식은 늘 나에게 유리한 것만을 주지는 않는다. 국민연금이 고갈된다는 불안감, 어차피 못 받을 것이라는 불신은 겉으로는 내 자산을 지키는 방패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내 안에서 깨어 있어야 할 이성은 잠들어 있고, 막연한 두려움의 목소리는 오히려 함성을 지른다.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늙어감이 두렵고, 노후의 가난이 두렵다. 경제력을 잃고 누군가에게 무시당할까 봐 두렵다. 이처럼 원초적인 두려움을 우리는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


현실의 제도는 이렇게 말한다. 국가는 무너지지 않도록 태어났다. 기금의 고갈을 막기 위한 개혁을 피할 수 없다. 납입 연령이 65세로 늘어나고 보험료율이 오르는 변화를 피할 길은 없다. 내가 믿고 있던 과거의 지식과 제도는 변하도록 태어났다. 그것을 피할 길은 없다. 내 노후와 자산은 스스로 행한 것이다. 내 현재의 선택은 미래 나의 연속체다.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 그것을 내 노후의 든든한 안전망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전혀 다르다. 후자는 충격이지만 동시에 큰 힘이 된다. 막연한 불신에만 머물던 시선을, 국가의 지급 보장과 물가 상승 반영이라는 긍정적인 지표로 옮길 수 있게 해 준다.


원래 제도가 그렇게 진화하며 나를 지켜주는 것이라면, 기금이 고갈될 것이라는 불신에 얽매일 이유가 없다. 이는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이 아니라, 부부 합산 200만 원이라는 노후의 베이스캠프를 구축하기 위한 적극적인 ‘받아들임’이다. 이 변화가 온전히 받아들여질 때, 막연한 빈곤의 두려움에서 비롯되는 고통은 사라진다.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는 돈에 대한 결핍이 있다. 자산이 폭등하던 시기에 한 조각도 주머니에 담지 못한 상실감은 무엇으로 치유될까? 뒤처졌다는 느낌은 숫자에서 시작되지만, 시간이 지나도 남는 건 그때의 감정이다. 하지만 더 가졌느냐보다, 지금 나는 무엇을 하며 다가올 시간을 준비하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자유로워지기 위해 놓아야 할 것들은 많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단단하게 움켜쥐어야 할 기본이 있다. 마음속에 있는 막연한 상념을 끄집어내고 싶다. 내 연금액의 실체를, 모바일 앱을 열어 있는 그대로 보고 싶다. 내 생각보다 적은 숫자에 멋쩍고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이렇게 끄집어내고 확인하고 나면, 뜬구름 잡던 불안은 걷히고 조금은 후련해진다.


과거의 미납액을 채우고 반환일시금을 돌려놓아야 한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결국 당장 주머니의 돈이 아까워 관성 앞에 백기를 든다. 좋은 재테크와 나쁜 재테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닐지 모른다. 어쩌면 편안함만 좇으려는 습관 자체가 가난의 굴레일 수 있다. 몸과 마음에 새겨진 안일한 길로 되돌아가려는 관성을, 우리는 어찌해야 할까?


시간이 흐른다. 65세라는 숫자에 끌려갈 것인가, 아니면 연기연금과 조기수령이라는 제도를 통해 나의 시계를 내가 통제할 것인가. 자유는 스스로 주도권을 쥘 때 비로소 찾아온다. 익숙한 선택 말고, 추납이라는 조금은 불편한 선택을 마주할 때 궤도는 수정된다.


“의도와 반복, 그것은 사람의 뇌를 변화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불신이라는 우물 안 개구리에게는 우물 입구만큼의 하늘만 허용된다. 광대한 노후의 여유를 보려면 당장의 손실을 감수하고 목숨을 걸고 우물 밖으로 나와 제도를 직시해야 한다. 지금 있는 곳이 안전하다는 착각, 눈앞의 돈만 쥐고 안주하고 싶은 나약함을 이겨내야 한다.


압도적인 노후의 안정감은 기존의 틀을 부수지 않고서는 절대 이룰 수 없다. 이미 은퇴 자금 계획이 완벽히 세워진 자산가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연습을 하자. 폼 잡지 말고, 거창한 투자로 단번에 밀어붙이지도 말자. 오늘 할 일만 하자. 아니, 내 연금액을 조회하고 과거의 빈틈을 메우는, 지금 할 일만 하자. 딱 거기까지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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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준비 #국민연금 #은퇴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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