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유독 자신의 기준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물론 타인에게 무조건 맞추며 끌려다니는 것 역시 스스로를 갉아먹는 행동이다. 하지만 자신의 방식만이 정답이라 여기며 타인을 거칠게 몰아세우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강하게 요구만 하는 이들의 모습은 주위 사람들을 피곤하고 지치게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렇게 목소리가 크고 강하게 밀어붙이는 사람일수록 그 내면은 놀랍도록 취약하다는 점이다. 진정으로 내면이 단단하고 여유로운 사람은 굳이 언성을 높이거나 타인을 억지로 통제하려 들지 않는다. 오히려 내면의 불안도가 높기 때문에, 자신의 통제권에서 벗어나는 상황이 두렵기 때문에 겉으로 더 가시를 세우고 목소리를 키우는 것이다. 겉으로는 강하고 주도적인 척하지만, 실상은 내 방식대로 안 될까 봐 두렵다. 상황을 장악하지 못하면 내가 무너질 것 같다는 방어 기제의 발현일 뿐이다. 빈 수레가 요란한 법이고, 겁 많은 개가 더 크게 짖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런 사람들은 어깨에 힘을 좀 빼라고 말해주고 싶다. 세상은 본인의 통제대로만 굴러가지 않으며, 타인은 누군가의 편의와 안도감을 위해 존재하는 부속품이 아니다. 내 기준이 틀릴 수도 있다는 작은 인정, 타인의 방식도 나름의 합리성과 이유가 있다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윽박지르고 강요해서 얻어낸 타인의 동행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진짜 권위와 존경은 타인을 굴복시키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고 기꺼이 져줄 줄 아는 내면의 넉넉함에서 나온다.
무엇보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사람과 관계의 변화는 결코 하루아침에 강압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누군가를 내 입맛에 맞게 단번에 고치려는 시도는 폭력이다. 모든 긍정적이고 영속적인 변화는 가랑비에 옷 젖듯 서서히, 서로의 온도와 보폭에 적응해가는 과정 속에서 스며들어야 한다. 억지로 휘어놓은 나뭇가지는 손을 놓는 순간 튕겨져 나갈 뿐이다. 기다려줄 줄 아는 인내심 없이 닦달만 하는 것은 관계를 망치는 지름길이다.
모든 문제의 핵심은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있다. 많은 갈등이 나의 편함을 관계의 기준으로 삼을 때 발생한다. 내가 편하기 위해 타인이 불편해지는 것을 당연시하는 태도는 이기적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 혹은 작게는 두 사람의 관계조차도 그 기준은 결코 어느 일방의 편함이 될 수 없다.
건강한 관계의 기준은 언제나 조율이어야 한다. 오케스트라가 연주 전 각기 다른 악기들의 소리를 맞추며 튜닝을 하듯, 때로는 삐걱거리고 불편하더라도 서로 양보하고 음정을 맞추며 접점을 찾아가는 것이 성숙한 어른의 태도다. 나의 편함이라는 이기적인 잣대를 내려놓고, 합의점을 찾는 것, 그것이 진짜 강한 사람들이 관계 맺는 방식이다.
내면의 빈곤을 큰 목소리로 채우려 하지 말자. 조급하게 타인을 바꾸려 압박하기보다, 나부터 힘을 빼고 상대방의 리듬에 귀를 기울여 보자. 나의 편함보다 우리의 조율을 먼저 생각할 때, 비로소 관계는 숨을 쉬고 진짜 의미 있는 긍정적인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