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없는 대화에서 벗어나는 길

by 긴기다림


누군가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것은 어렵다. 경청이 관계에 좋다는 것은 알지만, 실제로는 만만치 않다. 가장 가깝고 친밀한 관계에서도 상대의 이야기에 5분 이상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지만, 머릿속에서는 이미 ‘다음에 내가 할 말’을 고르느라 분주하다. 내 안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공감의 자리는 좁아진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회사에서의 힘든 일을 털어놓을 때 우리는 흔히 실수를 범한다. 친구의 감정에 머물러주기보다 “나 때는 더 심했어”라며 경험담을 꺼내거나, “그럴 땐 이렇게 해야지”라며 성급한 해결책을 들이민다.


퇴근 후 배우자가 오늘 하루의 피곤함을 이야기할 때도, 눈은 스마트폰에 고정한 채 “응, 그랬구나”라며 영혼 없는 대답만 건네곤 한다. 상대는 대화를 원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벽을 마주한 듯한 공허함뿐이다.


우리 사회는 타인에게 진심 어린 관심을 두지 않는다. 타인에게 관심이 생기는 순간은 대개 나보다 못한 상황에 놓인 상대와 자신을 비교하며 안도할 때뿐이다. 남이 잘되는 것에는 좀처럼 마음을 쓰지 않는다. 내 안에서는 늘 크게 외친다.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 나는 지금 이것에 관심이 있어. 너의 이야기는 궁금하지 않아.’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모두가 자기 이야기만 한다면, 내 목소리는 결국 공허한 메아리가 된다. 타인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다는 느낌은 관계에서 가장 중요하고 그것을 통해 자존감이 형성된다. 나에게 귀 기울여 주지 않는 관계는 유지하는 것조차 버겁다.


경청은 철저하게 나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경청은 인간의 본성과는 반대 지점에 놓여 있기에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사람은 본래 자기 자신에게 가장 큰 관심이 있기 마련이다. 본능적인 관심의 방향을 잠시 접어두고 상대의 마음속 울림에 귀를 연다면, 관계에 긍정적인 숨구멍이 만들어진다.


받으려면 먼저 주어야 한다. 내가 먼저 들어주어야 누군가도 내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를 한다.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관계가 풍성할수록 행복을 느낀다. 내 행복이 타인의 반응에 의해 결정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방향의 키를 쥐고 있는 것은 결국 나다.


경청은 상대를 위한 배려이기 이전에, 나를 위한 수행이다. 내 안의 소란을 잠재우고 타인의 언어에 자리를 내어주는 순간, 비로소 관계라는 숲에 바람이 통한다. 내가 먼저 누군가의 빈 공간이 되어줄 때, 나의 메아리도 누군가의 가슴에 닿아 선명한 울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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