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오래 살 줄 알았으면 먹고 싶었던 아이스크림을 실컷 먹었을 텐데.” 책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에 나오는 구절이다. 건강을 위해 평생을 절제하며 살아온 할머니의 노력이 엿보인다. 동시에 기대보다 길어진 삶 앞에서, 과도하게 자제했던 지난날에 대한 회한도 읽힌다. 매 순간을 딱 맞게 산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늘 정각을 목표로 한다. 약속 시간이 12시면 서두르다 너무 일찍 도착하고, 조금 여유를 부리면 금세 늦어버린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너무 잘해주려다 관계의 균형이 무너지고, 무심함이 지나치면 인연이 끊긴다. 주식 투자도 고점에서 올라타 하락을 맛보거나, 겁나서 팔고 나면 계속해서 상승하기 일쑤다.
한 번에 과녁의 중심을 맞추는 일은 어쩌면 불가능에 가깝다. 100M 달리기 선수가 최고 기록을 내려면 결승선에서 멈춰 선 안 된다. 마음속 결승선을 그보다 먼 곳에 두어야 최대 속도로 통과할 수 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기준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할 때가 많다.
건강도 그렇다. 술과 담배를 가까이하고도 장수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나름의 적정선을 지켰겠지만, 대개는 그 선을 넘기 쉽다. 술잔을 들기 전 다짐은 쉽게 무너지고, 화가 나는 상황에서 금연 결심은 속수무책이다. 때로는 화낼 구실을 스스로 찾아다니는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다.
감정 조절도 마음 같지 않다. 남 탓하지 않으려 참다 보면 엉뚱하게 가족에게 화풀이하게 된다. 참다못해 마음의 빗장을 열면, 쌓였던 불만이 쓰나미처럼 터져 나와 상대와의 관계를 집어삼킨다. 남는 것은 불편한 마음뿐이다.
내가 생각하는 중용은 한 번에 평균값을 맞추는 칼잡이의 솜씨가 아니다. 기준선 위아래를 오가는 진동의 평균 언저리다. 결과가 기준보다 과하다고 해서 낭비된 에너지를 아까워할 필요는 없다. 조금 모자랐다고 해서 안타까워할 것도 없다. 남으면 모자란 곳의 보험으로 여기고, 모자라면 남았던 기억에서 위안을 얻으면 그만이다.
두루뭉술한 '그즈음'이나 '언저리'라는 말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경계가 뭉그러진 풍경을 좋아한다. 어떻게 세상을 날카로운 칼날 위에 딱 세울 수 있겠는가. 기준을 좀 넘어도 죽지 않을 정도면 되고, 기준에 못 미쳤어도 출발선에서 절반 이상 왔다면 충분히 근사하다.
논리의 칼날로 무를 자르듯 효율만 따지는 삶이 꼭 정답은 아니다. 기준 근처를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끊임없이 돌팔매질하는 것만으로도 인생은 훌륭하다.
간잽이도 아닌데 삶의 간을 매번 딱 맞추려는 노력은 삶의 긴장도를 높인다. 조금 짜면 밥을 좀 더 먹거나 싱거우면 밥을 조금씩 먹으면 된다. 국이 짜면 냄비에 담아내 가운데에 놓아 찌개로 먹으면 된다. 찌개가 싱거우면 그릇에 퍼서 밥 옆에 놓고 국으로 먹는 여유면 충분하다. 때로는 더 멀리 가기도 하고, 때로는 못 미치기도 하지만 아까워하지도, 탓하지도 말자. 그것이 나를 존중하는 자세와 태도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