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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안에 있습니다

by 긴기다림

유쾌하고 즐겁게 살고 싶습니다. 이런 마음이 들 때 걱정되는 것은 가정의 경제 상황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산다면 건강에는 좋을 수 있으나 경제적으로는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직장인은 월급에 맞춰 즐겁게 살면 됩니다. 자영업을 한다면 적게 벌고 적게 쓰는 것에 익숙해지면 됩니다. 소득에 맞춰 즐겁게 사는 방법으로 소확행, 워라밸 등이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소득과 소비의 욕구를 줄이면 즐거운 삶은 현실적으로 가능합니다.

소득과 지출을 조절하면 즐거운 생활이 가능합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 것을 어려워합니다. 어떤 이유로 어려워할까요? 다른 사람의 플렉스가 너무나 쉽게 공유됩니다. 특정 자산으로 많은 수익을 냈다는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려옵니다. 이런 소식은 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됩니다. 다른 사람의 플렉스에 자신의 왜소함을 실감합니다. 소비를 조절하던 마음의 빗장은 이웃의 플렉스로 쉽게 풀립니다. 다들 저렇게 사는데 나도 그래도 될 것 같습니다. 보여주는 행복에 물들면 자신이 소외되는 가식적인 행복에 빠집니다. 플렉스의 주인공이나 바라보는 이 모두 알맹이 빠진 행복에 취하게 됩니다. 엄청난 부자의 플렉스야 별나라 사람의 이야기니 우리의 소비를 자극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분리해야 하는 것은 이웃의 플렉스입니다.

비트코인이 지금과 같이 엄청난 가격이 되기 전에는 햄버거 가격에 비유했습니다. 햄버거 10개 또는 햄버거 50개 정도 금액을 투자했다며 우스개 소리로 말했습니다. 2011년 당시 햄버거 하나의 가격(약 900원)과 비트코인 1개의 가격(약 900원)이 비슷했습니다. 당시 비트코인을 햄버거 100개 정도 가격으로 구입해서 지금까지 팔지 않았다면(거의 불가능합니다) 95억 이상의 자산가입니다. 특정 자산으로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는 뉴스에 사람들 마음속에는 풍선이 부풀어 오릅니다. 주인공이 주변 사람이면 마음속에 애드벌룬이 떠오릅니다. 나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해당 자산을 무리해서 매수하지만 내가 주인공이 되는 뉴스는 찾아오지 않습니다. 부러움, 시기, 질투, 과욕으로 부풀어 오른 풍선은 이내 터지고 맙니다. 풍선이 터지고 나서야 정신이 들고 자신을 책하지만 부질없습니다.

얼마 전 특정 코인이 반감기를 앞두고 급등했습니다. 또 다른 코인이 현물 상장지수펀드 승인 소식에 가격이 오르고 있습니다. 다른 코인도 덩달아 오르고 있습니다. 좋은 일이라 할 수 없지만 코인에 대한 관심이 미국, 일본보다 우리나라가 훨씬 높습니다. 높은 관심이 뉴스를 만나 매수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정 이벤트로 매수세가 몰릴 때는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시간을 두고 흙탕물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려야 물속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물속에 무엇이 있는지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없습니다.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구분하는 침착함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돈은 묘합니다. 많으면 좋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돈은 엄청난 중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돈이 많아지면 더 많은 돈이 달라붙는 속성이 있습니다. 돈만 붙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도 들러붙어 버립니다. 돈이 많아지면 더 많은 돈을 기대합니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혈안이 됩니다. 돈만 보이면 이때부터 여유와 즐거움은 뒷전이 됩니다. 돈은 언제나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구심력과 원심력의 균형이 무너집니다. 구심력과 원심력의 균형이 무너지면 돈의 열기에 타버리거나 돈의 혹한기로 기본적인 생활을 걱정할 수도 있습니다.


삶의 기본값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행복의 모습은 달라집니다. 행복을 위해서 많은 돈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보여주는 소비를 줄이면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은 배제하고 물건의 쓸모에만 관심을 가진다면 소비종목과 가격에서 자유로워집니다.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욕망을 줄여야 합니다. 남의 시선에 맞춘 욕망은 더욱더 그렇습니다.

행복한 가정은 힘든 것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서로를 믿고 존중하고, 건강한 생활을 하며, 적은 지출로 만족한 생활을 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다른 가족보다 더 많이 벌고 싶은 욕구, 더 비싼 것을 사고자 하는 욕구만 조절한다면 행복의 가속은 우리가 밟을 수 있는 엑셀로 가능해집니다. 남의 차가 빠르다고 남의 브레이크를 내가 밟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180km가 한계인 내차 엑셀을 계속해서 밟는다고 300km까지 속도가 나지는 않습니다. 결국 과함은 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남의 플렉스, 남의 자산 폭등에서 마음을 거둬야 합니다. 남의 플렉스와 자산 폭등은 그들의 영역입니다. 우리 행복은 우리 영역에 있습니다. 쉽게 찾지 못하고 있지만, 행복은 모든 가정의 세팅값입니다. 믿어야 보입니다. 보여야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행복해야 그 씨앗이 또 다른 행복을 싹틔웁니다.

더 좋아졌으면 하는 바람을 덜어내고 지금 있는 것의 가치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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