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향동의 가을은 온통 노란빛이다. 거리마다 나란히 선 은행나무들, 그 아래 깔아놓은 노란 양탄자는 한 편의 영화 속 풍경이다. 그 풍경 속으로 발을 내디딜 때마다 은행잎들은 사각사각 깊어가는 가을을 이야기한다.
올려다본 하늘은 파란 물감을 부어 놓은 듯 구름 한 점 없고 아낌없이 쏟아내는 햇살로 내 미간에 기분 좋은 주름을 만들어 주었다. 어두컴컴했던 집 안에서 나오니 밝은 기운이 온몸에 스며든다.
집안 베란다 창으로 비스듬히 들어오던 햇빛은 나를 품어주기에는 부족했다. 무기력하게 점심도 거른 채 침대에서 뒤척이다 육체까지 파고드는 아픔을 느끼며 일어났다. 마음의 병이 몸까지 병들게 한다고 했던가. 두려움을 느끼며 머리카락을 모자에 대충 쓸어 넣고 무작정 아파트 1층으로 내려왔다.
햇살이 다녀간 침침한 출입구를 지나자 눈부신 세상이 펼쳐졌다. 머리가 아파 며칠간 외출을 안 한 사이 세상은 진노랑으로 물들어 있었고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렇게 다른 공간을 오갈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절정을 지난 은행잎들은 바람이 없는데도 간간이 하나, 둘 바닥으로 떨어지며 짧았던 생을 마감하고 있다. 가을마다 반복되는 일이건만 그 모습이 오늘따라 내 눈길을 붙잡는다. 그리고 그것은 해쓱한 내 얼굴을 연향동의 가을처럼 만들었다.
이제 결심할 때가 왔다. 다짐이라도 하듯 은행나무를 올려다본다. 다시는 나무를 타기 위한 아슬한 곡예는 하지 않으리라.
나는 원래 물속을 유영하며 먹이를 얻는 물고기였는지 모른다. 물 밖에서는 살아갈 수 없는.
하지만 땅에서 다람쥐로 살아가는 이들은 내가 자신들처럼 나무도 잘 타길 바랐다. 내가 제일 잘하는 것은 헤엄치기인데.
숨 막히는 나무에서 비늘에 생채기를 내가며 오르려고 버둥대지만, 손도 발도 없는 나는 결국 떨어지고 만다. 그들은 뒤에서 수군댄다. 나는 물 밖에 나오면 숨조차 쉴 수 없는데 무엇이 힘드냐고 한다.
성인이 된 후, 주위에서 원하는 대로 나무에 오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몸의 비늘이 벗겨져 상처가 생겨도 '노력하면 다람쥐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믿고.
하지만 그 결과 다람쥐도 물고기도 아닌 흉측한 모습으로 변해 갔을 뿐. 눈부시던 은빛 비늘은 군데군데 뜯겨 갔고 나무에 매달리려고 용을 쓰던 지느러미는 손도 아닌 이상한 모양으로 변해버렸다.
육지에서 바다로 되돌아간 고래 이야기를 아는가. 중력 때문에 걷기 힘들었던 땅 대신 물의 힘으로 떠서 살아갈 수 있는 푸른 바다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를. 나는 고래가 되고 싶었다.
빛나는 은빛 비늘을 가졌던 시절로 돌아 갈 수는 없지만, 이제라도 잃었던 비늘을 찾아내어 제 자리에 하나하나 맞춰 주고 싶다.
사람이 죽음 가까이 왔을 때 가장 후회하는 것이 인생을 자신의 뜻대로 살지 못한 일이라고 한다. 남의 이목 때문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제대로 뜻 한 번 펼쳐보지 못하고 죽는 것이라고.
나를 옭죄는 가지들을 자르고 스스로 날아 오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외침이 울린다.
나뭇꾼 남편이 감춰 놓은 내 날개옷. 날개가 너무 크고 화려해 숨겨 놓아도 날개가 언제나 한쪽으로 삐죽 나와 있던.
내 몸에 비늘을 다 맞추는 날, 그 옷을 입고 멋지게 날아 오를 것이다.
그러나 그 날개옷이 지금의 내 몸에 맞을런지. 불어버린 나를 감당 할 수나 있을런지...
맞지 않는 날개옷에 몸을 구겨 넣어야 할 중년 여인, 그녀는 또 다시 나무에 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