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야 호수의 물결은 북국 바람의 무늬를 그리며 번져 갔다. 4월이지만 북해도는 차디 찬 입김으로 땅 속의 생명들을 숨게 했다. 엄마는 그 풍경과 하나가 된 듯 호수 앞에서 입을 굳게 닫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듯 여행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통증이 나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여행 내내, 꽃도 피지 못 한 눈 덮인 들판과 컴컴했던 삿뽀로의 야경은 엄마의 뒷모습과 닮아 있었다.
엄마의 팔순은 오늘이 어제보다 더 작아지는 몸, 어느 곳도 혼자 갈 수 없게 만드는 시름과 함께 왔다. 겉으로는 의연해 보였지만 한 해가 다르게 쇠약해졌다.
더 늦기 전에 엄마와 우리 남매가 다 모인 여행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와의 추억을 하나 더 쌓고 싶었다.
생각해보면 형제들이 모두 출가하여 가정을 이루고 살면서 원가족이 다 모인 여행을 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엄마의 팔순 기념으로 세 자매가 엄마와의 여행을 계획했다.
여행지로 여러 곳이 추천되었지만 다리가 불편한 엄마를 고려해 가까운 일본 북해도로 결정했다. 서로의 일정에 맞춰 빠르게 진행하느라 약간 쌀쌀한 날씨였지만 출발했다.
나의 원가족.
아버지는 오래전에 세상을 등지셨고 오빠에게 의견을 물었으나 돌아온 대답은 예상대로 '노'였다. 언제부턴가 자매들과의 일에는 항상 빠졌던 그. 섭섭했지만 차라리 잘 되었다고, 같이 가면 불편할 수도 있다고 우리들은 마음을 추슬렀다. 그러나 여행 중 가끔 드러나는 엄마의 그늘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어린 시절, 오빠는 참 순진하고 착했다.
오빠 초등학교 저학년 때, 형편없는 점수의 시험지들을 내 유치원 가방 속에 잔뜩 숨겨 놓아 엄마에게 무척 혼났던 일이 있었다. 왜 하필 고자질쟁이 여동생 가방에 그것을 숨겼는지는 지금도 불가사의다.
또 언젠가는 문방구에 학용품을 사러 갔는데 해가 저물도록 돌아오지 않자 부모님이 찾아가 보니 문방구 앞에서 울고 있었단다. 이유는 모르는 형이 문구를 사다 준다고 돈을 가져갔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안 온다는 것이었다.
그 이후 나는 심심하면 '메롱' 하며 약을 올렸고 사기까지 당했다고 오빠를 놀렸다. 어릴 적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그에게 복수를 꿈꿔왔던 나는 이 신나는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그렇게 어리석고 순진했던 오빠가 철이 들며 공부도 열심히 했고 번듯한 직장도 가졌다. 그리고 여전히 자상했다. 칼질도 못하던 나를 위해 사과도 깎아 주었고 집안 청소를 할 때면 힘든 물걸레질을 도맡아 했다.
그러나 그렇게 살갑던 오빠가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면서 갑작스레 멀어져 갔지만, 원가족과 분리되어야 원만한 결혼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던 우리는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우리에게 잘했듯이 아내와 자녀에게도 잘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섭섭했다. 한 번쯤 그가 깊이 생각해 보길 바랐었다. 오빠도 함께 한 엄마의 팔순 여행을 그리며 어린 시절 추억을 공유한 가족끼리의 행복한 대화를 꿈꿨고 기분도 조금 들떴었다.
무엇이 사람을 이리도 변하게 했을까?
''마누라, 철 좀 들어. 아직도 소녀감성이면 이 세상 살기가 힘들다고.''라고 하는 남편의 걱정이 귓가에 울렸다.
그 넓은 평원이 보랏빛 라벤더 물결을 이루고 그 향기로 가슴 벅 찰 때, 눈 녹은 들판이 초록의 숨결로 가득할 때, 다시 한번 북해도에 오고 싶다. 오빠도 함께, 꽁꽁 묶어서라도 데려오고 싶다.
우리 4남매를 바라보며 활짝 웃음 지을 엄마, 그녀의 가슴속까지 보랏빛 향기로 가득 채워져 그 행복한 풍경과 하나 될 엄마를 보고 싶다.
사과를 깎아 내 손에 쥐어주며 싱긋 웃던 오빠. 그는 어디에 꼭꼭 숨어 버렸는지.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꼭꼭 숨어라......'
이번에도 어릴 때처럼 순진하게 그 말을 다 믿어 버렸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