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씻어 말린 크고 작은 네모진 밀폐 용기 두 개를 꺼낸다. 용기 가운데에 금방 지은 밥을 약간 식혀 담고 양옆의 공간에 버섯 양파 볶음, 떡갈비 구운 것, 호박 새우젓 볶음, 그리고 기본 반찬인 김치를 담아 두 개의 도시락이 완성되었다. 생수와 남편이 즐기는 커피도 타서 보온병에 담았다.
퇴근한 남편의 차를 타고 내가 운동하는 공원의 전망 좋은 곳으로 가서 도시락을 먹는다. 그리고 내가 공원에서 한 시간 가량 운동을 하는 동안 남편은 차에서 기다려준다. 차에 있는 이유는 피곤하다는 것, 요즘 같은 세상에 운동 안 하고 잘도 버틴다.
운동이 끝나고 남편과 집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저녁 시간이 마무리된다. 이것이 요즈음 몇 달간 일주일에 두세 차례, 우리 부부의 저녁 풍경이다.
나는 음식을 만드는 것에 특출한 능력도 없고 그냥 평범한 정도의 주부라고 할 수 있다. 손도 느려 몇 시간씩 음식 준비를 하는데, 먹어치우는 것은 순식간인 것을 보며 참으로 덧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내가 음식 솜씨가 아주 좋으신 시어머니가 계신 곳으로 시집을 왔다. 시집 온 첫해부터 명절 때마다 장만하는 음식 규모에 놀랐고, 그 음식을 전부 먹어치우는 시댁 식구들의 식성에 한 번 더 놀랐다. 짧은 시간에 뚝딱뚝딱 음식을 감칠맛 나게 만들어 내는 시어머니가 부러웠고 모든 음식을 집에서 다 만들어 내는 시어머니의 체력에 불안하기도 했다.
손도 느리고 체력도 약한 맏며느리. 입맛도 싱거워 밍밍하게 음식을 하는 며느리가 마음에 차지 않았겠지만 서로 적응해가며 25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문제는 남편의 습관이다. 싱거운 음식에는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는데, 한 번 상에 올랐던 반찬에 다시 젓가락을 대지 않는 버릇은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다. 밑반찬이 없이 그때그때 매일 새로운 음식을 만들었던 시어머니 덕(?)을 내가 톡톡히 보고 있는 것이다. 기본 밑반찬은 항상 준비되어 있던 친정과는 다르게 나는 밑반찬은 아예 하지 않고 매일 새 반찬을 장만해야 했다. 결혼과 동시에 반찬 때문에 고되게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도시락을 싸서 야외에서 맛나게 먹던 생각이 났다. 바깥에서 도시락을 먹으면 김치만 가지고도 맛있게 먹었던 기억을 떠올린 것이다. 밥을 꼭 식탁에서만 먹으란 법도 없지 않은가. 어디서 먹든 즐겁게 먹으면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도시락을 싸 가지고 야외에서 저녁식사를 실행해 보았는데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집에서는 반찬 몇 가지에 국이나 찌개를 끓여 식탁을 차려도 먹을 게 없어 보이고 초라해 보이기 십상이다. 하지만 도시락은 다르다. 어제 먹던 반찬도 슬쩍 끼워 넣고, 반찬이 부족하다 싶으면 계란 프라이를 해서 밥 위에 얹는다. 그러면 일단 푸짐하고 먹음직스러워진다. 그 도시락을 남편은 와구와구 맛나게 먹으며 ''당신 도시락 장사해도 되겠어.'' 한다. 이 남자는 왜 그렇게 계란만 보면 마음이 한없이 너그러워지는지 우스울 때도 있다. 국이 없어도 맛있게 먹고, 특히 남편은 음식을 남기는 성격이 아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이 도시락의 반찬을 깨끗이 비워낸다. 반찬 낭비도 않게 되고.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인 것이다.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이 부족할 때야말로 도시락이 빛을 발한다. 디저트로 참외를 손질해 용기에 담고 거기에 커피까지 챙겨 넣는다.
''아이고, 계란 부치느라 힘들었네.''
이런 엄살에 남편은 ''울 마누 님 수고했어.''라고 하며 계란을 걷어내면 앙징맞게 웃고 있을 어제의 반찬들을 보고도 모르는 척, 나에게 속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