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애
여우가 두루미를 집으로 초대해 납작한 접시에 먹음직스러운 수프를 담아 대접한다. 화가 난 두루미가 이번엔 여우를 초대해 병에 수프를 담아 내놓는다. 여우도 마찬가지로 수프를 먹지 못한다. 이것은 이솝우화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여기에서 "왜 안 먹니? 맛이 없니?"하며 두루미의 수프까지 먹어버린 여우가 다 잘못한 것일까.
<심리학이 이토록 재미있을 줄이야>의 저자 류혜인은 이렇게 설명한다. 어쩌면 여우는 단순히 '착각'한 것인지 모른다고. 심리학에서 말하는 '허구적 합의 효과' 때문일 거라고. 허구적 합의 효과란 자신의 생각이 보편타당할 것으로 생각하여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행동하리라는 잘못된 믿음을 말한다.
나에게 옳은 것은 분명 남에게도 옳을 것이라는 생각. 인간은 저마다 자신의 입장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자기 중심성에 의한 착각을 하기 쉽다고 한다.
'약속을 잘 지키는 어린이가 됩시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어린이가 됩시다'
초등학생 시절, 이런 글귀들이 액자에 걸려 있었다. 무심코 되뇌던 이 문장들은 하얀 도화지 같던 내 머리를 채워가기 시작했다. 부모님도 약속을 꼭 지켰고 거짓말은 용납하지 않는 분들이었다. 안팎으로 이런 영향을 받아 어른이 되어서도 이 문장들은 내 삶의 중요한 지침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그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찮았다. 문제는 내가 상대에게도 그것을 바라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다양한 인생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데, 내 잣대를 들이대니 당연히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상대가 약속을 어기거나 거짓 행동을 하면 그들을 이해하기보다는 단절시키는 쪽을 택하기도 했다. 나와 다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을 감정적으로 밀어내었고 그만큼 내 운신의 폭도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인생의 중반부로 접어들면서 내가 저항 없이 받아들이고 지켜온 원칙들이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기보다는 마이너스로 작용하는 빈도가 높아졌다.
서로 다른 사고의 한계를 맞닥뜨릴 때마다 프라이드를 가지고 지켜나가던 내 삶의 규칙들이 뿌리째 흔들렸고 나는 왜 이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약속은 지켜지면 좋은 것이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그것이 꼭 결격사유는 아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나름의 상황이 있고 이해하자고 들면 못 할 게 없었다.
모든 것을 내 기준으로 재단하고 살아온 시절. 차라리 속은 편했던 그때의 진실은 착각에 의한 왜곡이었을 수도 있다.
옳다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옳다고 믿어온 것들이 나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나온 사고의 결과는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나는 이제까지 어리석은 착각의 모래성을 쌓아온 것인가.
시대가 변하면서 예전에 옳다고 믿던 것들이 붕괴하여 뒤죽박죽된 세상에 내 가치관도 때에 따라 변해버리는 비겁쟁이가 되어버렸다. 이젠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마저 무색하다. 힘이 빠져 체력이 달리니 마음 편한 게 건강을 지키는 길이라고, 부딪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나 스스로를 세뇌시킨다.
내가 평생 사랑하며 지켜나가고 싶던 것들이 두리뭉실하게 퇴색해버린 지금, 영원할 것 같던 사랑이 길을 잃어버렸다.
나는 변심한 애인처럼 그들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