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시우 이야기 -1

by Eun

주말 아침, 모처럼 구름 한 점 없는 쾌청한 날씨다. 얼마 전 로얄골드맨션에서 있었던 선아 아빠의 사망 사고로 술렁거리고 어수선한 동네에 따스한 햇빛이 쏟아진다. 시우 아빠는 베란다 창문을 열고 이불을 탈탈 털어 난간에 걸쳐놓는다. 이불을 빼앗긴 시우가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몸을 웅크린다. 그 모습을 본 시우 아빠는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시우를 안고 얼굴을 비빈다.

"시우야~ 일어나야쥐. 아침 먹어야쥐."

아빠의 말에 팔다리를 쭉 펴고 기지개를 켠 시우는 부스스 눈을 뜨고 해맑은 눈으로 아빠를 보며 미소 짓는다.

"아빠, 라면 사서 같이 먹자. 따뜻한 거 먹고 싶어."

"그래, 그럼 아빠 밥한다. 라면 사 와. 옷 따뜻하게 입고."

"라면이다~ 라면이다~ 시우는 라면이 좋아. 얼른 갔다 올게."

라면을 제일 좋아하는 시우는 엉덩이를 흔들고 노래를 지어 부르며 옷을 껴입는다.


노래를 지어 부르며 편의점에서 라면을 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시우는 경비실 앞 평상에 앉아있는 선아를 보았다. 오랜만에 보는 누나였기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선아 누나~~"

"어~ 시우야, 어디 갔다 와? 아~ 라면 사 오는 길이구나. 우리 시우 좋겠네~"

시우는 선아에게 달려가 옆에 앉았다. 그런데 평소의 누나의 모습이 아니라 뭔가 좀 달라 보이는 것 같았다. 무표정했거나,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표정은 밝아 보였고 목소리에도 편안함이 느껴졌다. 선아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시우는 죄책감이 조금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자 갑자기 시우도 기분이 좋아졌다. 시우는 자신의 다리에 몸을 비비며 드러눕는 희망이를 쓰다듬었다.

"희망이가 시우를 좋아하나 보다. 꼬리를 흔드네~"

"정말? 나 좋아해서 그러는 거야? 와~ 신난다. 희망아, 이리 와."

시우는 희망이 앞으로 달려가며 오라고 손짓을 했다. 희망이는 조금 불편하게 뜀박질하며 시우에게 달려갔다. 그러더니 얼마 전 폴리스라인이 있었던 공간을 즐겁게 뛰어다녔다. 그 모습을 본 선아는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날도 응달의 눈은 아직 녹지 않았지만 한낮의 햇살은 제법 따뜻했다. 집에 있는 것보다 오히려 나와 있는 것이 나은 시각, 시우는 선아와 평상에 나란히 앉아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 폴리스라인이 있었던 한 지점을 같이 응시하고 있었다. 보면 볼수록 그날의 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것 같았다.

"무슨.. 생각해?"

선아가 시우에게 물었다. 시우는 선아의 눈이 자신을 그날로 끌고 가 사건의 한가운데에 데려다 놓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말하면 안 돼. 그럼... 그렇게 되면...'

머뭇거리는 시우의 모습을 보던 선아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시우야~ 그날... 말이야. 우리 아빠 저렇게 되기 전날에 말이야..."

시우는 흔들거리는 자신의 발을 쳐다보며 무심코 내뱉는듯한 선아의 말에 불안해졌다.

"혹시... 그날 아빠 늦게 집에 오시지 않았어? 요즘 아빠가 매일 철야해서 밤늦게 온다고 혼자 있기 무섭다고 했었잖아. 그래서 내가 같이 있어줄까라고 했더니 괜찮다고 옥상에서 아빠 기다리면 안 무섭다고 했었잖아. 그래서 말인데... 혹시 그날도 아빠 기다린다고 옥상에 있지 않았나 해서 말이야."

선아를 쳐다보던 시우는 자신도 모르게 말이 새어 나올까 봐 손으로 입을 막으며 말했다.

"아.. 모르겠는데? 기.. 기억이 안 나네. 누나, 나 이제 들어갈게. 아빠가 라면 사면 바로 집으로 오라고 했는데 깜박했다. 헤헤~~ 희망이도 안녕."

선아는 손을 흔들며 급하게 건물로 뛰어 들어가는 시우의 모습을 끝까지 쳐다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옥상을 쳐다보았다.

'말해. 말해, 시우야. 너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니....'

선아의 마음과 별개로 시우는 얼마 전 있었던 사건으로 괴로웠다. 집으로 가기 위해 계단을 오르다 201호라고 적힌 문을 보자 다시 소름이 끼치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빠, 잘 갔다 와."

시우는 오늘도 옥상에 올라 아빠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아빠는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손만 대충 흔들며 자신을 기다리는 승합차를 향해 바삐 걸었다.

"한 번을 안 돌아보네. 힝~"

시우는 아쉬운 듯 흔들던 손을 내렸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허무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멍하니 길을 바라보았다. 시우는 매일 아빠를 기다린다는 핑계로 옥상에 올라가지만 사실 마음 한구석엔 저 길로 엄마가 걸어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도 있었다. 얼굴도 모르는 엄마지만 그래도 나에게도 엄마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막연히 기다려지는 것이다. 그러나 늘 기대하는 마음은 허무한 마음으로 연결되었다. 시우는 또 다른 아쉬움을 털어내고 이제 뭐 할까라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그 순간, 1층 현관 근처에서 자신을 쳐다보는 길춘남과 눈이 마주쳤다. 시우는 갑자기 몸이 굳는 것 같았다. 길춘남은 자신을 째려보는 것 같은 눈을 천천히 거두고는 열쇠를 손가락에 끼워 돌리며 오토바이를 향해 걸어갔다. 출근을 하는 것이다. 시우는 길춘남이 고개를 돌리자 아주 조용히 쪼그리고 앉으며 몸을 숨겼다. 시우는 손으로 입을 막았다. 기억은 또다시 복도에서 길춘남과 눈이 마주쳤던 기억으로 되살아났다.


그날, 시우는 길춘남을 발견하고 현관문을 닫았었다. 옥상에 올라가는 것을 포기하고 거실로 들어가려고 신발을 벗을 때 복도에서 "깽~~ 깽"거리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희망이 소리가? 다친 건가? 아파하는 소리 같은데... 하~ 어떡하지? 별일... 아니겠지 뭐. 오늘은 안 되겠어.'

시우는 나가기를 포기하고 방으로 다시 들어가기 위해 일어섰다. 그 순간, 또다시 현관문 소리가 들렸다. 좀 전에 들었던 소리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201호 아저씨가 집으로 들어가는 걸까? 살짝 볼... 까?'

시우는 큰 숨을 쉬고 다시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마치 문이 열릴 줄 알았다는 듯 자신을 쳐다보는 길춘남과 눈이 마주쳤다. 길춘남은 열려 있는 자신의 집 현관문을 조용히 닫으면서도 문틈 사이로 보이는 시우의 눈동자를 놓치지 않고 끝까지 응시했다. 비웃는 입모양, 먹잇감을 포획한 맹수의 눈을 한 길춘남은 조용히 한 계단.. 한 계단을 올라왔다. 손에 든 플라스틱 생수 통이 리듬을 타며 흔들거렸다. 그 모습을 본 시우는 얼른 문을 닫고 잠금장치를 걸었다. 심장이 터질 듯이 쿵쾅거렸다. 얼른 방에 들어가서 이불속에 몸을 숨기고 싶었지만 다리는 풀려버렸고,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시우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큰 죄를 지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덜컹~"

현관문 손잡이를 잡는 소리가 들렸다.

"끼익~~ 끼익~~"

쇠들의 마찰 소리가 날카롭게 났다. 소리가 날 때마다 문 손잡이가 왼쪽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그 소리는 마치 쇠사슬에 묶인 괴물이 지하감옥을 벗어나기 위해 철창을 비트는 소리와 같았다. 잠시 후 문 손잡이는 잠긴 것을 확인했다는 듯 멈췄다. 정적이 흘렀다.

"꼬마야~ 아저씨가 할 말이 있는데... 듣고 있지?"

낮고 음산한 목소리가 쇳소리가 났던 복도 공간을 한 바퀴 돌아 동굴같은 울림소리가 되어 시우 귀에 나지막하게 들려왔다.

"넌... 오늘.... 나... 안 본 거야... 누가 물어보면 아무도 못 봤다고 해야 해... 알겠지? 안 그러면... 키키키~ 아저씨가... 혼내줄 거거든.. 키키키"

괴물같은 중저음 소리는 닫힌 현관문을 넘어 기대어 앉아 있는 시우에게로 정확하게 전달이 되었다. 시우는 자신도 모르게 헉! 하는 소리가 나자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리고 겁에 질린 놀란 토끼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것도 못 봤어.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어. 난 아무도 못 본 거야. 그런데 왜 못 봤다고 해야 해? 몰라, 이유는 없어. 그냥 아무것도 난 몰라. 아.. 아빠! 아빠는 왜 안 오는 거야?'

기괴한 웃음소리를 끝으로 또다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시우는 길춘남이 이제 갔다고 생각했다. 조용히 몸을 움직여보았다. 아직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엉금엉금 기어 거실 쪽으로 갔다. 그 순간, 요란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연이어, 현관문 쇳소리가 들렸다.

"철컥, 철컥, 끼익~~~"

시우의 등 뒤로 현관문이 열렸다. 놀란 시우의 심장은 멎을 것만 같았다.

"시우, 아빠 왔다. 어? 거기서 뭐 해?"

시우가 현관에 웅크리고 앉아서 놀란 눈으로 아빠를 쳐다보았다. 혼자 있을 시우를 생각하며 단숨에 계단을 뛰어올라 잠긴 문을 열었던 시우 아빠도 깜짝 놀랐다.

"시우, 아빠 기다린 거야? 그런데 왜 놀라? 무슨 일 있었어?"

시우는 아빠를 보자 갑자기 모든 힘이 풀렸다. 그러자 꾹 참았던 울음이 터졌다.

"으허헝~~~~"

"시우, 왜 그래? 혼자 있어서 무서웠어? 아빠 늦어서 미안해."

"으허헝~~~"

"시우, 오늘따라 왜 울어? 시우야~~"


다음날 눈을 떠보니 바깥이 시끄러웠다. 시우는 울다 잠들어 퉁퉁 부은 눈을 비비며 베란다로 나가보았다. 사람들이 건물 밖에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어? 경찰차다."

차를 좋아하는 시우는 빨간 불빛이 돌아가는 경찰차를 자세히 보기 위해서 고개를 쑥 내밀었다.

"잘 안 보이네? 옥상에 올라가서 봐야지."

시우는 얼른 슬리퍼를 끌고 현관문을 열었다. 아침이어서 그런지 복도에 햇살이 들어와 밝았다. 시우는 곁눈으로 아래층을 한번 쓱 훑은 후, 옥상으로 올라갔다. 뒤꿈치를 들고 목을 쑥 내밀었다. 난간에 기대어 내려다보니 노란색 끈이 건물 입구 한편에 둘러쳐져 있고, 그 안에서 선아와 선아 엄마가 경찰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바닥에는 흰색 물감으로 어떤 모양을 만들어 놓았다. 마침 구급차가 도착하고 흰 천을 씌운 물건을 구급 대원들이 들어 차로 옮겼다. 그건 누가 봐도 사람이었다. 시우는 큰일이 벌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일일까? 저 사람은 누굴까? 시우는 본능적으로 길춘남을 찾았다. 하지만 모인 사람들 중에 길춘남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선아가 두리번거리다가 고개를 들어 옥상을 쳐다보았고 시우와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선아는 평소처럼 반갑게 손을 흔들지도 않고 무표정으로 계속 시우를 응시했다. 시우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마치 죄를 지은 것처럼 몸이 오그라들어 얼른 숨어버렸다.

'선아 누나가 날 봤잖아? 내가 여기 있는 걸 어떻게 알았지? 그런데... 나는 왜 숨는 거지?'

시우는 뭔가 자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젯밤의 일이 떠올랐다. 어제 201호 아저씨는 왜 자신을 보고도 아무것도 못 봤다고 말하라고 했을까? 그럼 그냥 말하면 되지 왜 혼내줄 거라고 겁을 줬을까? 시우는 사람을 미워하면 안 되다는 아빠의 말을 지키고 싶었지만, 201호 길춘남은 미웠다. 아니, 미운 정도가 아니라 이제 더 싫어졌다. 시우는 투덜거리며 집으로 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갔다. 그러다 3층에 다다랐을 때 시우는 멈칫했다. 아래층에서 휘파람을 불며 내려가는 길춘남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시우는 다시 몸이 움찔거리는 것을 느끼곤 얼른 집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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