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자는 며칠째 몸살을 앓고 있다. 30년 김밥 장사를 하는 동안 쉬어 본 날이 다섯 손가락에 들 정도로 악착같이 일했던 그였지만, 지금은 삼일째 누워있는 것이다. 아니 누워있다가 벌떡 일어났다가를 삼일째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누웠다가 벌떡 일어나 부엌으로 가 물을 벌컥 마셨다가 소파에 앉았다가 나가려고 옷을 입었다가 벗었다가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천문자는 태어난 이래로 이렇게 집중한 적이 없었다. 가슴이 쿵쿵 뛰었다.
"생각을 해보자. 분명 이유가 있을거여."
천문자는 얇은 기억의 실을 붙잡고 과거로 가는 중이다. 천문자는 돌아가신 할머니를 생각했다. 그리고 할머니 무덤에 갔던 날을 생각했다. 그때 울면서 무슨 말을 했던가를 생각했다. 그 말속에 답이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그날 자신이 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를 떠올려야 했다. 눈을 부릅뜨고 누워있으니 감기약 기운이 솔솔 올라왔다. 눈꺼풀이 의지와 상관없이 스르르 감겼다.
눈을 떠보니 어느새 주위는 어두워져 있었다. 왜 이렇게 춥지? 천문자는 손을 더듬어 이불을 찾았다. 손끝에 까끌하고 촉촉한 잡초가 만져졌다. 엥? 웬 풀? 천문자는 기대 있던 몸을 곧추 세우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거렸다. 저 멀리서 새소리가 들렸다. 문자는 이곳이 낯설지 않았다. 여기가 어디여? 낯익은 곳인데? 혹시? 설마... 할머니 무덤인겨? 문자는 놀래 자빠질 지경이었다.
"문자야, 핼미여~ 정신이 드냐?"
"할.. 할머니여? 정말 할머니여?"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는 문자 앞에 떡하니 허리를 펴고 무덤 위에 앉아 웃고 있는 사람은 분명 돌아가신 할머니였다. 문자는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지만 눈앞에 할머니가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기 때문에 아무런 의심 없이 할머니 손을 덥석 잡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할머니~ 무심한 할머니. 그렇게 가버리고 나 혼자 얼마나 외롭게 살았는지 알기나 해. 왜 이제야 나타나는 거야. 내가 할머니를 얼마나 찾았는데... 왜 이제야, 이제 죽을 때가 돼서야 나타나는 거야. 나 데려가려고 온 거지? 그렇지? 그려~ 같이 가. 나 할머니 따라갈 준비 됐어. 흐엉흐엉~~~"
늙어버린 문자지만 할머니 앞에서는 마냥 어린 손녀가 되었다. 보고 싶었던 할머니가 눈앞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문자는 행복했다. 거기다 만질 수도 있다. 천문자는 할머니 손을 붙잡고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 할머니 품에 안겼다. 쿰쿰한 할머니 냄새가 났다. 그리운 냄새였다. 문자는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편안함인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이렇게 시간이 영원했으면 했다. 할머니도 그런 문자의 마음을 아는지 인자하게 웃으며 천문자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한참을 그렇게 안고 있던 할머니가 문자의 손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이것아~ 왜 이리 손이 쭈굴쭈굴한 거야. 얼굴은 또 왜 이리 칙칙하고. 어디 보자. 내가 보니께 맨날 몸빼만 입고 다니던디. 피부과도 다니고 백화점도 좀 다녀라."
"허허~ 할머니가 피부과, 백화점을 어떻게 안데? 위에서는 다 보이나 봐."
"그려~~ 말을 안 할 뿐이지. 위에서 다 보고 있었으. 나 떠나고 어떻게 사나 걱정이 돼서 매일 쳐다봤지. 용케 잘 살길래 다행이다 했는데..."
눈물을 훔치던 천문자가 그윽한 눈으로 할머니를 쳐다보다가 '용케 잘 살길래'라는 말을 듣자 갑자기 할머니 손을 뿌리쳤다. 할머니가 보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서운한 것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잘 살다니! 내가 왜 이렇게 살게 된건디, 다 할머니랑 그 중매쟁이한테 엮여서 이렇게 산거 아니여. 나는 시어머니를 처음 봤을 때부터 기분이 쌔~했는디, 할머니가 나 죽기 전에 너 시집가는 꼴 보고 잡다고 해서 이렇게 된 거 아니여. 얼마나 서러웠는데 잘 살아서 다행이라니! 다행이라니! 할머니 제정신이여?"
할머니를 째려보며 모진 소리를 뱉은 천문자는 아예 무덤을 등지고 뒤돌아 앉아버렸다. 붉은 태양이 사위어가고 있었다. 서쪽 하늘은 붉게 물들었고, 시원한 바람은 문자의 몸빼를 펄럭거렸다. 과거는 과거일 뿐. 다 묻어버리고 잊어버리자고 다짐했지만 상처받은 영혼의 그림자는 끝없이 문자를 따라다녔다. 살아있어서 산 것일 뿐, 살고 싶었던 적 없었던 시간의 아픔이 길어지는 그림자처럼 크게 다가왔다.
"저.. 저 성격 하고는... 쯧. 그려... 그건 미안하게 되얐다. 그럴 줄 알았겠냐. 서글서글하니 웃는 게 너희 할아버지랑 닮아서 내가 마음이 앞선나벼. 내가 미쳤지. 그게 구렁텅인 줄도 모르고 널 보냈으니... 사실은 너 그렇게 사는 거 보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러. 말은 안 했지만, 너희 시어머니한테 달려가 몽둥이로 패주고 싶은 마음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
할머니의 말에도 천문자는 꼼짝하지 않았다.
"아이고~~ 문자야. 용서해라. 할미가 미안해. 그 힘든 시간 다 견뎌낸 네가 대견해서 한 말이여."
"..."
"미안하다고 안 혀냐. 그래서 내가 하도 미안해서 꿈에 나타나서 말했잖냐. 그게 네 삶에 대한 보상은 안 되지만 내가 책임을 져야겠다 싶어서 왔다고, 끝까지 이겨내고 살다 보면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했잖냐. 어뗘? 번호가 이번엔 맞은겨?"
할머니의 말에 문자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지, 번호!"
이렇게 외치며 할머니를 쳐다보자 할머니가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문자를 쳐다보았다. 그런 할머니를 보니 또 화가 났다.
"아니, 번호도 말이여, 이왕 불러줄 거면 알아듣도록 불러줄 것이지 말이여. 뭔 당최 알아듣지도 못할 소리만 지껄이고 간단 말이여. 내가 꿈에서 깨서 얼마나 당황한 줄 아는겨? 이게 뭔 소린가~ 싶어서 얼마나 머리를 싸맨 줄 아는겨? 내가 토요일마다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은 줄 알어? 이번인가 싶으면 아니고, 또 토요일이 되면 이번은 진짠가 싶으면 또 아니고... 으이구, 도움을 줄려면 빨리 줄 것이지 이제야 도움을 주면 어쩌자는 거여. 그 많은 돈이 내가 왜 필요하것어. 내일 죽어도 이상할 것 없는 나인데 말이여."
할머니는 꽥꽤거리며 소리를 지르는 천문자를 보며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허허~ 소리 지르는 모양새가 꼭 먹이 빼앗긴 오리 같구먼. 오래 기다리느라 수고혔어. 이것아~ 그렇게 큰 복을 주는 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여. 모든 기운이 맞아떨어질 때를 기다려야 하는 거여. 너한테 말했다만 네가 29번의 시련을 이겨내고 사랑하는 가족이 5명이 되면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고 했지."
"그랬지. 그리고 할머니 생일을 기억하라고 했지. 이상했어~~ 보통 잊지 마라고 하지 기억하라고 안 하잖어."
"허허~ 그려. 잘 찾아왔구먼. 문자야, 이제부터 할미가 하는 말 잘 듣거라."
할머니는 천문자의 흰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천문자는 할머니의 눈을 쳐다보았다.
"그러니까 이제.... 그리고... 그다음엔...."
"할머니~~ 네에~~ 할머니~~ 가지 마~~"
천문자의 눈에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해가 지고 어둠이 거실까지 밀고 들어왔다. 천문자는 꿈인지 모를 곳에서 현실로 돌아왔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한동안 눈을 뜨지 않았다. 대신 덮고 있는 이불을 끌어당겼다.
"끄억~ 끄억~"
천문자는 얼굴을 이불에 파묻고 울었다. 어릴 적 자신의 손을 뿌리치고 집을 나갔던 엄마. 그런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울었을 때처럼 지칠 때까지, 굴곡진 등을 들썩거리며, 달이 휘영청 뜰 때까지 울고 또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