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13

by Eun

천문자는 며칠째 괴롭히던 몸살이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몸이 찌뿌둥했다. 나이가 들수록 조금만 신경 써도 금방 몸살이 왔으며, 나아지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그리고 나아지고 나선 그전보다 체력은 더 떨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체력이 떨어진다고 마냥 이불속에서 지낼 수 없다. 천문자는 창을 열고 크게 심호흡하며 폐 가득 시원한 바람을 집어넣었다. 옷을 단단히 입고 통장과 도장을 챙겼다. 오늘은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날이다.

"어머나~~ 김밥 할머니, 몸은 좀 괜찮아요? 큰 병에 걸린 것 같다고 다들 걱정했는데"
천문자를 본 사과 댁이 걱정스레 인사를 한다. 시장 상인들은 김밥 집이 장사를 안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일주일째 가게 문을 열지 않았으니 다들 그 속 사정이 궁금했다. 아픈 거 아니야라는 말은 아픈가 봐로, 많이 아픈 거 아니야라는 말은 큰 병에 걸렸나 봐로 와전되었다. 천문자는 '큰 병이지, 암만 큰 병이야'라고 생각했지만 겉으로는 웃으며 말했다.
"나이가 드니까 한번 몸살이 오면 잘 안 났는구만. 며칠 끙끙 앓다가 이제야 다 나아서 나와보는 거야."
"아~ 그러면 그렇지. 겨울 막바지라 그런지 날씨가 더 말썽이죠? 나이 드시면 잔병도 잘 안 나아요. 조심하셔야지~"
"그래~ 허허. 사과 댁이 나 걱정을 많이 했나 봐. 고마워."
"..."
"엉? 근데 뭘 그리 빤~~~ 히 쳐다보는 거야?"
"아~~~~ 난 또... 아니다~"
"뭔 말을 반토막만 하는 거야?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속 시원히 해봐~"
"아~~~ 큭큭. 난 또 김밥 할머니 주말 지나고 소식이 없길래 복권에 당첨돼서 안 나오나 보다 생각했지 뭐예요. 그래서 김밥 장사 때려치우나 보다 생각했는데~~~~ 아닌가 보다~"
"엥? ~~ 크음~~ 뭔 소리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당첨... 되면 내가 이렇게 시장에 나왔겠어?"
천문자는 놀란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고 손을 휘저으며 얼른 뒤돌아섰다.
'하여튼~ 저 사과 댁은 쓸데없이 촉이 좋고 지랄이여~~'

오늘은 가게 정리만 하고 내일부터 장사해야겠다며 대충 사과 댁의 눈을 따돌린 뒤 천문자는 시장에서 조금 떨어진 부동산으로 향했다. 몸뻬 바지를 입은 나이 든 할머니의 등장에 부동산 소장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서 오세요, 할머니. 여기 좀 앉으시고. 자~~ 뭐 보시게? 전세? 월세?"
천문자는 실내를 천천히 둘러보고는 한쪽에 자리 잡은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소장에게 앉으라고 손짓을 했다. 소장이 맞은편 소파에 앉자 천문자가 또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했다. 소장이 몸을 앞으로 기울여 가까이 가자 천문자가 손을 입에 대고 조용히 말했다.
"건~~~ 물~~~"
"에? 건물은 무슨? 아~~~ 원룸 알아보시게요? 얼마짜리로 보여드릴까요? 천에 사십? 오백에 삼십도 있고~ 근데 이건 반 지한데 괜찮겠어요?"
천문자는 피식 웃으며 두 손가락으로 허공에 네모 모양을 그리며 말했다.
"아니~~ 건~~~ 물 말이여. 원룸 건물~~~"
"원룸 건물이요? 그러니까~~ 원룸을 얻는 게 아니라 건물을 사.. 사신다고요? 허~ 할머니 진짜 재밌으시네... 진짜요? 진짜 보여드려?"
천문자는 만족한 듯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짠가 의심하며 자신을 쳐다보는 소장의 눈을 보니 더 이상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음하하~~~ 으하하~~~"

천문자는 부동산 소장과 발품을 팔아가며 비교한 끝에 마음에 드는 건물을 구입했다. 꿈에 나타난 할머니의 말처럼 그 쓰임이 충족될만한 건물이었다. 노란색 톤의 삼 층 건물로 일 층에 두 개의 상가가 있는데 한 곳은 비어있고, 한 곳은 꽃집을 운영 중이었다. 상가 앞쪽엔 덱이 깔려있고 지붕은 초록색 어닝이 달려있었다. 이층엔 투룸이 두 개 있고, 삼층은 주인 세대가 그 층을 다 쓰고 있었다. 옥상엔 원룸 옥탑방이 있는데 옥상 마당을 꽃집에서 가꾸고 있어 제법 정원 같은 느낌이 났고, 건물 한 벽면에 능소화 가지가 어지러이 설켜있었다.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마음에 든 건 애초에 건물을 지을 때 만든 건물 이름이었다.
"건물 주인이 처음에 이 건물을 지을 때 평생 살 생각으로 지으신 이름이랍니다. 천만다행! 천년만년 다 같이 행복하게 살자는 뜻이래요. 좀 우습죠? 그래도 건물 이름이 좋아서 그런지 여기 기운이 좋아요. 주인이 갑작스레 이사를 하게 되어서 내놓으셨지만 절대 팔 생각 없었던 건물이랍니다. 할머니 운 좋으신 거예요, 이런 건물 나오기 쉽지 않아요. 그리고 요즘 금리가 싸서 은행에 돈 넣어놔도 이자 몇 푼 안 되는 거 아시죠? 요즘은 꼬박꼬박 월세 받고 편안하게 말년을 보내시는 게 최고예요. 어때요?"
부동산 소장이 웃으며 천문자를 쳐다보았다. 그때, 마침 바람이 구름을 밀어내며 따뜻한 햇볕이 눈으로 쏟아졌다. 천문자가 찡그린 눈을 가까스로 뜨며 소장을 바라보았을 때 머리 뒤로 광명이 비치는 것 같았다. 우주의 광명, 진리의 광명이 상서로운 빛을 비추고 있었다. 천문자는 계시를 받은 것 같았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천문자는 웃으며 말했다.
"천만다행이라... 정말 이 건물을 사게 된 것이 천만다행이네요. 좋습니다! 이걸로 하지요. 아 참! 그리고 나 꼬박꼬박 월세 받으려고 건물 사는 거 아니에요. 다 같이 행복하게 살려고 하는 거랍니다."
"예? 그게 무슨...?"
"그냥 그렇다고요~~ 음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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