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다행

by Eun


시끄럽던 사고 현장에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천문자와 이유리, 김선아, 박영진, 정시우와 시우 아빠만 남겨졌다. 그들은 지금 같이 있지만 각자의 공간에 빠져있는 중이었다. 경비실 앞 평상에 이리저리 앉아 왜 이렇게 되었는지 과거를 회상하기도 하고, 특정한 대상을 정해놓고 화를 내며 답답해하다가 다시 우울해하며 머리를 감싸고 괴로워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새 한 마리가 푸드덕거리며 날갯짓을 했지만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고, 주위가 어두워져 가고 있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때까지 가만히 아빠 옆을 지키고 있던 시우가 주위 눈치를 보더니 조용히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아빠... 시우 배고파요..."
정신이 없어서 시우를 챙기지 못했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자 모두 동시에 시우를 쳐다보았다. 그들은 다시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집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시우 아빠가 무겁게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집에.. 좀 갔다 오께. 뭐라도 남아있으려나... 끙~~~"
그 모습을 무심히 쳐다보던 박영진이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아 맞다! 나도 같이 가요. 어떡하지, 어떡하지? 불에 타진 않았겠죠? 아니겠지? 으... 어떡하지? 이럴 때가 아니야, 정신 차리자! 정신!"
박영진이 자신의 뺨을 두 손으로 찰싹찰싹 때리며 요란스럽게 몸을 움직이자, 그 모습을 보던 천문자도 두 손으로 자신의 뺨을 철썩 때리며 일어났다.
"됐고! 다들 이제부터 내 말 잘 들어요. 흠... 인정하기 싫겠지만 건물은 불이 나서 더 이상 살 수 없어요. 그을음도 많아서 수리비도 많이 들뿐더러... 설령 수리한다고 해도 노후된 건물이라 안전을 보장하지 못해요. 지그..."
천문자가 말을 이어가려는데 조용히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시우 아빠였다.
"죄... 죄송합니다. 다... 저 탓입니다. 흐흑~ 정말... 정말 죄송하고 미아납니다... 흑흑~~"
가까스로 용기 내서 꺼내는 말들이 목구멍을 통해 간신히 흘러나왔다. 떨면서 고개를 조아리는 아빠의 모습에 시우가 '우리 아빠 잘못 아니에요. 제가 저녁에 아빠 추울까 봐 장판 온도를 올려서 그래요. 훌쩍~ 그러니까 제 잘못이에요. 죄송합니다~훌쩍~훌쩍'하며 아빠 품에 얼굴을 묻었다. 모두 시우가 아빠를 생각하는 마음에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한 사람은 예외였다. 박영진은 갑자기 자신에게 불어닥친 불운이 억울했다. 그깟 눈물이 지금 상황을 해결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감상에만 빠져있을 것이 아니다고 생각한 박영진은 자신이 한마디 해야겠다고 마음먹었고, 이왕이면 큰소리 좀 쳐야겠다고 생각하며 시우 아빠를 째려보았다.
"아니~~ 지금 할 말은 아니지만... 지금 당신 때 무... ㄴ... 음 흡흡!"
하지만 그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눈치 없는 박영진이 시우 아빠를 향해 손가락을 뻗으며 말을 시작하자 천문자가 유리와 선아에게 눈짓을 했고, 그 신호를 받은 유리는 박영진을 평상에 앉혔고 선아는 박영진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아이~~~ 뭐 하는 거야?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다들 말은 안 해서 그렇지 같은 생각 아닙니까? 나만, 또 나만 나쁜 놈인 거예요? 사실이 그렇잖아요. 따질 건 따져야죠. 안 그래요? 그러니까~~ 내 말은... 아니... 지금? 뭐 하시는... 아니 왜 이러세요?"
갑자기 박영진의 말을 듣던 시우 아빠가 무릎을 꿇으며 울기 시작했다.
"흐흑~~ 흑~ 죄송함다. 미아납니다. 저 돈 없어요. 저 한국 있어야 함니다. 흑흑~~ 죄송함다~ 흐흑~~ 한 번만 봐주세요~ 꺼억꺼억~~"
점점 커져가는 시우 아빠의 울음소리에 다들 멈칫하며 당혹해하다가 동시에 책망하는 눈으로 박영진을 바라보았다. 박영진은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이라며 중얼거리더니 평상 끄트머리에 뒤돌아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도 이러려고 한 말은 아니었다. 박영진은 아무도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섭섭했다. 기대 없이 자란 인생이었다. 그럭저럭 학교생활을 했고 성인이 되어서는 회사 면접에서 번번이 떨어졌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았던 세월이 십 년이었다. 가발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만난 김진호를 통해 어럽게 직장에 취업했을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었다. 혀 차는 소리와 함께 혼이 안 나는 날이 없는 직장 생활이었지만 이렇게라도 살아갈 수 있는 게 어디냐며 만족했었고, 알뜰살뜰하게 아껴 이 집을 장만했을 때는 자기 인생에 다른 집은 없다며 평생을 살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런 집이 타버렸고 자신에겐 다시 이 과정을 되풀이할 능력이 없었다. 더 이상 화를 낼 용기도 없는데, 불안하고 억울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와 박영진을 괴롭혔다.
박영진의 축 처진 등을 쳐다보던 천문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계획에는 박영진이 없었다. 유리와 선아를 부모처럼 보살펴 주고, 시우가 학교를 다니며 한국에서 잘 지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까지가 계획이었다. 하지만 외면할 수도 없었다. '딱한 사람 같으니.. 어찌 저렇게 매번 힘도 못 쓰고 주저앉을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천문자는 처진 기분을 걷어내기 위해 착! 착! 손뼉을 쳤다.
"됐고! 지금부터는 내 말을 따라주길 바랍니다. 각자 자신의 집으로 가서 챙길 수 있는 것들만 챙겨 나와요. 중요한 문서나 통장, 도장은 꼭 찾아서 챙기고, 짐이 많으면 한쪽으로 모아놔요. 그건 다음에 한꺼번에 옮기도록 하죠. 일단은 꼭 필요한 것들만 챙겨요. 알겠죠? 앞으로 일은 차차 생각하기로 하고 지금은 현재에 집중하자고요."

어스름한 저녁이 되었다. 그들은 손에 가방을 들고 불이 탄 건물을 향해 서 있었다.
"자... 이제 갑시다. 일단, 밥 먹으러 가요. 밥을 먹어야 힘이 나지요. 날 따라오세요. 시우야, 할머니랑 같이 가자."
시우의 손을 잡은 천문자가 먼저 뒤돌아 걷기 시작했다. 주춤거리며 뒤돌아보는 발걸음도 있었지만 그들은 발걸음은 건물과 멀아질수록 오히려 홀가분했다.
차마 발이 안 떨어지는 건 박영진뿐이었다. 그 모습을 본 천문자가 되돌아가 박영진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앞서 밀며 등을 토닥거렸다. 박영진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그려졌다.
"영진 씨, 그런데 뒤통수에 머리카락이 왜 이리 들쑥날쑥해? 언제 이발한 거야? 이번 일 정리되면 이발부터 해."
"네..."
영진은 습관적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 뒤 손에 든 가방끈을 곧추 잡았다. 가방 속에는 회사가 폐기하려던 프로젝트 서류가 있었다.
"띠리리링~~"
유리의 전화기가 힘차게 울렸다. 유리 엄마 안사영이었다. 움찔하던 유리가 전화를 받자 고함소리가 들렸다.
"야! 어떻게 된 거야? 뉴스에 났던데 그 건물에 불이 났어? 2층 총각이 불을 냈다던데 맞아? 아이씨~~ 그 새끼가 진짜~~~ 그건 그렇고 그 돈은 누구 거냐? 아직도 남아 있으려나? 너 지금 1층에 가봐라. 거기 돈이 있는지 뒤져봐. 있으면 찾아서 챙기고 엄마한테 전화해. 알겠지? 내가 그 자리에 있었으면 당장 챙기는 건데. 너 엄마 말 알아 들었어?"
스피커를 통해 안사영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천문자가 어쩔 줄 모르는 유리에게 다가가 핸드폰을 뺏었다.
"됐고! 다시는 유리한테 전화하지 말아요. 이 엄마야, 죽다 살아난 아이야. 그 화재 현장에서 죽다 살아났다고. 생사 걱정이 먼저 아니여? 자식보다 돈이 중하단 말이여? 한 번 더 이딴 전화하면 두 번 다신 유리 못 보는 줄 알어."
흥분한 천문자가 핸드폰을 던졌다. 던져진 핸드폰을 가만히 쳐다보던 유리가 천천히 꾹꾹 핸드폰을 밟았다. 그 모습을 보던 선아도 유리 옆으로 와 핸드폰을 사정없이 팍팍 밟았다. 선아와 유리는 서로를 보며 피식 웃다가 울었다. 그리고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들은 다시 길을 걸었다. 시간은 밤을 향해 흘러갔지만 달빛을 비춰주려고 급하게 구름 뒤에서 빠져나온 달 덕분에 골목길은 밝았다. 달이 밝아 그들의 그림자는 길고 짙었다. 하지만 골목길에 길게 늘어진 그들의 달그림자는 하나로 보였다.


에필로그

"우와~~~ 근데 여기가 어디예요? 건물이름이 천만다행... 꼭 우리 지금 모습인데... 혹시 이렇게 될 줄 알고~~~ 아얏! 왜 때리는~~~ 아야, 아파요. 아니~~ 내 말은~~~~"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얼마 전 화재에서...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져... 미등록 이주민... 일명 떠돌이 아이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관련 정책을 챙겨보라는 대통령의 직접 지시가 내려졌습니다... 다음 소식입니다..."




지금까지 "로얄골드맨션"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처음 써보는 소설이지만 끝까지 썼다는 것에 만족하고 퇴고를 이어가려 합니다. 도움이 되는 충고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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