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나서 할머니한테 버럭 했다.
7-80년대엔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거리를 많이 다니지 않았다. 인식의 문제가 많았던 시절인듯하다. 집에 장애가 있는 가족들은 숨기고 다녔으며, 부끄러워하던 시절이었던 거 같다.
나 역시 장애가 있는 사람을 보면 색안경을 끼고 봤으니까.
어리석었던 시절이었던 거 같다.
지금은 많이 변했다.
사회도 나도...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나의 사고방식이 잘못된 게 많다는 걸 알고부터 계속 노력 중이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를 뿐이라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도 있다고.
어느 날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가 한참있다가 왔다.
내 앞에서 버스를 타는 아저씨는 양쪽에 목발을 짚었으며, 오른쪽 다리에는 붕대가 감겨있었다. 무릎부터 발까지 감겨있었다.
옷이 낡았다. 며칠 입고 있는 듯한 느낌의 옷차림이었다. 깔끔한 차림은 아니었다. 머리도 조금 부스스했다. 50대 후반으로 보였다. 운동화를 신었는데, 깔끔하진 않았다. 한동안 운동화도 씻지 않은 듯했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깔끔하진 않아서 그런지 버스를 타는 과정에서도 사람들이 멀리하는 듯 보였다.
몸이 불편하니 행동이 느린 건 당연한 거 아닌가.
아저씨는 목발을 버스 계단 한 칸씩 오르느라 시간이 걸렸다. 걷기도 힘들어 보였다.
몇 칸 되지 않는 계단이 본인에겐 힘겹게 느껴지겠지?
난 그냥 뒤에서 천천히 기다렸다. 부축해드리고 싶었는데, 그것도 맘처럼 쉽지 않았다.
여자였으면 부축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아저씨가 힘겹게 올라간 후 내가 올라갔다.
버스 안 사람들 시선이 아저씨한테 몰렸고, 인상을 쓰는 사람들도 몇 있었다.
놀라운 건 그 누구도 자리양보를 하지 않았다.
어릴 때 버스에 어른들이나 불편한 사람들 타면 양보하라고 배우지 않았던가?
우리나라는 그런 나라라며?
아저씬 세정거장을 서서 갔다. 양쪽 팔에 목발과 함께.
힐끔 쳐 다들 보면서 그 누구 한 명 세정거장을 가는 동안 양보하지 않았다.
나도 아저씨가 내리는 곳에서 내리게 되었다.
아저씨는 힘겹게 뒷문으로 향했다.
산에 갈 때도 올라갈 때보다 내려올 때가 더 힘들지 않던가?
뒷문 계단으로 내려가는 아저씨는 역시나 힘들어했다. 버스를 탈 때보다 내릴 때가 시간이 더 걸렸다.
내 맘은 몇 번이나 잡아줘라고 하지만, 맘처럼 되지 않았다.
뒷문 앞에 앉아계신 할머니가 아저씨가 마지막 계단을 내려가자 기다렸단 듯이 날 바라보며 웃으며 말하셨다.
"저런 사람을 왜 태우노. 그지요?"
마치 내게 동의를 구하는 말투였다.
하... 0.1초? 그 순간 내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들었다.
난 어이가 없었다.
무슨 용기가 났는지 난 큰소리로 말했다.
"할머니, 저런 사람도 할머니랑 똑같은 사람입니다."
말하는 순간 속이 다 시원했다. 할머니를 째려보듯 쳐다봐주고 내렸다.
할머니와 버스 안 사람들은 내 말을 듣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저 괘씸하다는 생각? 아니면 아저씨한테 미안한 맘? 뭔들~~~
저런 사람? 어떤 사람이 저런 사람인거지?
장애라는 거 선천적일 수도 후천적일 수도 있지 않던가?
본인과 가족은 평생 장애 없이 산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보이는 장애만이 장애는 아니지 않나?
마음의 장애는 장애 아닌가?
언젠가 예전에 할아버지가 버스를 타셨는데, 초등학생이 벌떡 일어나 양보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대학생들도 있었고, 젊은 어른(?)들도 있었음에도 젤 어린 초등학생이 양보를 했다.
그 모습에 나이는 어른인 사람들은 뭘 느꼈을까?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을까?
나? 난 서있었다. 난 양보한다. 양심이 자꾸 날 두드리기도 해서.
당신은 양보하시는가?
설마 난 나이가 들지 않을 거란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지...
시간은 누구나에게 공평한 법.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러쿵저러쿵 흉보려 하지 말고 어른이라고 불리는 우리가 먼저 솔선수범을 보여야 하는 거 아닌가?
아이들은 우리를 보고 배우니까.
나이를 무기로 삼으면 안 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