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가해차랑 부부는 사고 내고 고기 사러 갔다.

추운 겨울이었다.

딸이랑 큰맘 먹고 큰 마트를 가던 중이었다.

그날따라 둘째는 따라가지 않겠다고 했고, 갈까 말까 망설여지긴 했는데 맘먹었던 마음이 사라질까 길을 나섰다.

오랜만에 애들이 좋아하는 연어와 스테이크용 고기를 사기 위해서.

옆에 앉은 딸은 신났다. 좋아하는 연어를 먹을 수 있다는 기쁨에.

양이 많은 만큼 회로도 먹고 연어장으로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손질은 당연히 신랑이 한다. 난 음식 못하는 재능이 있는 거 같다. 다행이다. 딸은 이런 기회가 많지 않기에 내가 큰맘 먹고 가자고 했을 때 얼씨구나하고 바로 준비한다.

집 밖은 위험하다는 딸도 이런 날의 행동이 빠르다.


운전석에 앉아서 네비를 찍고 출발했다.

집을 출발해 긴 터널을 지나면 시내 쪽으로 이어진다.

터널을 지나면 왕복 9차선 도로가 나온다.

우리가 가는 방향은 5차선, 반대는 4차선이다.

난 5차선으로 달리고 있었다.

갑자기 2차선에서 차가 한 번에 바로 확 꺾어 5차선으로 오더니 내 차를 박았다.

사이드미러로 보이지도 않았다.

몇 초 사이에 쾅하는 괴음이 났다. 그 소리가 나는 순간 앞이 하얗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차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운전석 쪽이 가해차량에 의해 충격이 갔다.

우리 차는 반바퀴 가까이 오른쪽으로 돌았다.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까? 세상은 하얀데 내 몸이 차와 함께 차방향으로 도는 느낌은 들었다.

딸도 놀래서 악 소리 지르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정말이지 1,2초?

다행히 다른 차들은 괜찮았고, 가해차량과 우리 차만 도로옆으로 세웠다.

우리가 가는 방향에 총xx식육점 하나가 있다. 제법 크다.

차를 세우고 가해차량 부부가 내렸다. 젊었다.

난 당연히 내려서 우리 쪽으로 와서 괜찮냐고 물어볼 줄 알았다.

부부는 멀쩡하게 내리더니 자기차만 둘러보는 거였다. 와... 이게 맞는 건가?

난 놀래서 말했다.

"그렇게 갑자기 확 들어오면 어떡해요? 애가 놀랬잖아요."

그랬더니 남자가 그런다.

"우리 깜빡이 켰는데요."

운전은 여자가 했다.

어이없었다.

깜빡이 켜자마자 2차로에서 5차로까지 한 번에 확 오면 괜찮다는 건가?

운전 처음하나? 아니 오히려 처음 운전하는 사람이 더 조심하지 않나?

내가 들으라고 아이도 놀랬다고 했으면, 첫마디가 괜찮냐고가 아닌가?

부부는 우리 차를 보더니 남자가 그런다.

"별거 아니네. 앞에 조금 찌그러진 게 다네. 우리 차가 더 수리비 많이 나오겠다."

상대방은 스파x, 우리는 트레일x.

우리 차는 색상도 붉은색이다.

우리 차 운전 쪽 앞 찌그러지고 사이드 깨지고, 라이트 부서지고. 라이트 일반 라이트가 아닌 걸로 안다.

가해차량은 보조석 옆라인만 긁혔다.

남자는 계속 자기들 잘못 아닌, 내가 더 잘못했다는 식으로 말했다.

지들은 깜빡이 켰다는 얘기만 계속하고.

왜? 깜빡이 켜고 유턴도 마음대로 하지?

그러면서 남자가 또 그런다.

"병원만 안 가면 돈 얼마 안 나와요."

헐. 그걸 말이라고? 이 상황에서 한다는 말이. 우리한테 괜찮냐고는 물어봤니?

난 놀란 딸을 진정시키고, 신랑한테 전화를 한 뒤 보험회사를 불렀다.

이 남자가 또 말했다.

"보험사가 어디세요?"

그거 알아서 뭐 하려고?

나중에 신랑이 그랬다. 같은 보험사면 가해자들의 잘못이 더 줄어들수도 있다고. 우리 보험사가 꼼꼼한 보험사면 자기들이 더 불리하니까 물어보는 거라고.

참 대단하다. 그 상황에서 가해부부는 그런 것까지 생각했단 건가? 처음사고 낸 거 아닌가?

어떻게 얼굴이 저렇게 철판 저리 가라일 수가 있지?

사람이 사람다워야 하는 거 아닌가?

보험사에서 오는데 시간이 걸렸다.

우리 쪽이 먼저 왔다.

직원은 블랙박스 양쪽을 확인하더니 그런다.

"이건 상대방이 100%인데요. 이 상황을 피할 수 없습니다. 저라도 못 피해요."

우리 쪽을 힐끔거리면서 남자는 대화를 들었다. 감시하나? 찔리는 게 있긴 하니?

남자가 여자 쪽으로 가서 수군거렸다. 부부들이 조금 전의 자기는 잘못 없다는 기세가 아주 약간 수그러들었다.

한참 기다리니 상대편 보험직원이 도착했다.

"혹시 저희 쪽 분들 어디 가셨나요?"

그걸 왜 우리한테 물어?

"여기 계시라 했는데 안보이시네요."

오잉? 조금 전까지 있었는데... 상대 보험직원이 통화를 하더니 조금 있다 부부가 나타났다.

어디서? 바로... 정육점에서 나오는 거다. 그것도 손에 고기를 든 채.

교통사고 내고 고기를 사러 간다고?

이 사람들 고기 사러 왔다가 사고 낸 건가?

정육점 위치를 정확히 모르고 왔다가 지나 칠 거 같으니까 차선을 그렇게 위험하게 확 꺾어서 온 거였나?

아무리 고기를 사러 왔다고 한들 이 상황에 이정신에 고기를 산다고?

이 부부들 정체가 뭐지?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들어있는 거지?

살다 살다 이런 부부들은 또 처음 본다. 사고 내고 고기 사러 갔다 온다고?

하... 어이없다.

보험직원 두 명 다 어이없어했다.

아마 그들도 이런 경우 처음이겠지?

양쪽 직원들이 다시 블랙박스를 양쪽으로 확인하더니 서로 얘기하고 끝났다.

렌트하겠냐고 물어봤다.

차를 매일 사용해야 해서 렌트하겠다고 했다.

사실 그 부부가 괘씸하기도 했고 내일 당장 차도 써야 했다.

희망에 부풀어있던 딸의 연어는 그렇게 사라졌다.

저녁에 딸이 어깨와 목이 아프다고 했다. 나도 아팠다. 사고 때문에 아픈 건 줄 몰랐다. 사고 났을 때 정신이 없어서인지 어디 아픈 곳 없는지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병원 갈 생각도 안 했다.

사고 난 그 순간은 긴장해서 아픈 것도 몰랐을 수도 있다고들 말했다.

다행히 딸이 방학중이라 아침이 되고 병원을 갔다. 아침 되니 더 아팠다. 딸도 웬만하면 아프단 소리 잘 안 한다.

병원 가기 귀찮아서라도 말을 잘 안 하는 딸이다. 오죽하면 내가 끌고갈정도니. 그런 딸이 아프다고 했다.

입원하기로 했다.

가해자에게 연락해서 입원할 거라 했고, 보험 접수번호가 필요하니 접수해달라고 했다.

이 남자! 진짜 인간이하인가?

지금 바쁘다나? 병원접수하는데 하루가 걸리냐? 것도 자기들이 사고 내고선? 우린 병원인데? 몇 시간이 지나서 접수됐다고 연락 왔다.

장난하나? 딸이랑 나는 이것저것 검사하고 입원 기다리는데 이 남자 때문에 몇 시간을 기다렸다.

너무 괘씸했다.

사고 내고 고기를 사러 가지 않나. 우리 차 고치는 거 별거 아니라고 하질 않나. 자기 들차가 더 긁혔으니 수리비 더나 올 거라고. 병원 안 가면 돈도 얼마 안 들 거라고.

자기들 차 조금 긁힌 건 큰일이고, 우리 차 운전석 쪽 찌그러지고 앞범퍼 긁히고 라이트 깨진 건 별거 아니라고?

마치 자기들이 피해자인 것처럼 떠들질 않나.

가해자들이 자기들 잘못 인정 안 한다고 했다. 보험사에서 분쟁할 거냐고 했다.

한다고 했다. 시간이 걸려고 하겠다고 했다.

분쟁하는 과정에서 담당자가 연락 왔다.

이 상황이 사실은 가해자가 100% 맞는데, 이론적으로도 하다 보니 우리가 10%는 될 거 같다고.

내가 열받아서 따졌다.

그러면 분쟁에 참석하는 직원분들 중에 한 명이라도 그 상황 피하면 나도 10% 인정하겠다고.

직원이 그랬다.

아무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들 말들은 한다고.

2차로에서 5차로까지 한 번에 확 오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그런데도 그 이론... 그래 이론. 실전과 다른 이론.

분쟁하는데 2달? 3달이 걸렸다. 가해부부들이 계속 자기들 잘못을 인정 안 했다고 했다.

결론은 가해 90% 내가 10%.

우리 차 수리비 200만 원 넘게 나왔다.

색상이 붉은색이라 견적이 더 든다고 했다.

가해 부부들 놀랬겠지?

웃긴 건 우리 입원하고 다음날 자기들도 입원했다고 신랑 쪽으로 연락이 왔단다.

억울하니?

우린 보험접수 바로해줬다.

저 부부들이랑 다르니까.

가해 부부는 아이가 없었다. 그러니 아이 어떠냐고 단 한 번도 물어보지 않지.

부부들도 애가 있었다면 달라졌을까? 괘씸하다.

뭐라고 해야 하나?

상대 보험사에서 우리 입원하지 며칠 안 됐는데 전화 와서 합의 얘길 꺼냈다.

이야~ 가해부부만큼 어이없었다.

"합의요? 지금 그 얘기가 나옵니까? 합의할 생각 없습니다. 아이 괜찮냐고 물어보는 게 순서 아닌가요? 우리가 입원을 한 달 했습니까? 일 년을 했습니까? 애 괜찮냐고는 아무도 안 물어보고 합의요? 왜요? 그 부부들 돈 얼마 안 들 거라면서요. 전화하지 마세요. 합의 생각 없으니까요. 먼저 끊습니다."

뚝.

우린 병원에 입원할 수 있는 최대기간을 입원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게 젤 중요한 거 아닌가?

기본은 지키면서 살아야 하는 거 아닌가?

기본?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약속 아니던가?

최소한 우린 기본을 지키면서 사람답게 살자고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데.

이런 일을 겪을 때면 참...


가해부부 반성은 했을까?

반성이란 단어 알긴 할까?

미안한 맘이 조금이라도 있을까?

자기들이 뭘 먼저 해야 했는지 뒤늦게라도 알았을까?

그날 산 고기 맛있었을까?

그것도 비싼 고기였을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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