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삶이 부러울 때가 있다.

너의 투정조차 부럽다.

by 쉼이되고싶은 나무



주위를 돌아보면 다들 고민 없이 흘러가는 대로 하루하루 탈 없이 사는 것 같다.

고민이란 걸 가지고들 살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의 얼굴엔 웃음들이 가득하다.

뭐가 저리 즐거울까?

물론 나도 그들의 삶을 하나하나 다 들여다본 게 아니라서 자세히 알 수는 없다.

누군가를 알게 되고, 갑자기 빨려들 듯 가까워지는 사이가 있다.

그러다가 멀어지는 것도 한순간일 때가 있지.

아이들의 일로 우리 셋은 서서히 가까워졌다.

일 년, 이년, 그렇게 벌써 6년?

그동안 탈 없이 잘 지냈고, 우린 평생 잘 지낼 사이라며 얘기하곤 했다.

그런 무시무시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니. 말은 쉽게 내뱉는 게 아닌데.

그건 어디까지나 셋이 경제적으로도 비슷할 때의 얘기였다.

뭐 우리도 돈을 모으진 못해도 먹고는 살았으니까.

금수저냐 은수저냐 하는 말이 그냥 나오는 건 아닌 거 같다.

어디서 태어나느냐도 복불복이지만, 그냥 인생 자체가 복불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난 뭐 부모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고.

누구에게 도움받을 생각도 안 하지만, 우릴 도와줄 사람도 나도 신랑도 그 어느 쪽에도 없다.

우린 그저 우리가 다 알아서 해야 한다.

누가 사고 치면 수습은 우리가 하고. 에효. 전생에 나라를 팔았던 게 맞다.

A랑 B 집은 어릴 때부터 은과 금의 중간쯤의 집안에서 자랐다. 사실 내가 보기엔 금수저에 가깝다.

별 부족함 없이…. 그래서 가끔 내 어릴 적 얘길 하면 이해를 못 할지도 모른다. 겉으로면 그랬냐며 안타까워하지만 금세 화제를 바꾸곤 했다. 그렇지. 당연하지. 겪지 않은 일을 어떻게 이해하겠어?

화목한 집안 분위기에 부모님들이 경제적으로도 걱정 없으셨고, 아이들 교육까지 관심이 있으셨으니 정성 들여 키우셨을 거다.

태생부터 나랑 달랐던 건지도 모른다.

지금도 뭐.

A랑 B 집의 공통점은 지금도 부모님들이 지원을 해주신다. 부럽다.

A는 두 아이의 엄마다. 친정엄마께서 애 둘 키우기 힘드니 애 한 명을 끝까지 책임져주신다고 생활비를 주신다.

아이들이 태어난 그 순간부터.

어떻게 보면 당연할지도 모르지만, 지금도 그냥저냥 별 탈 없이 잘 사는 집을 보면 어릴 때부터 별걱정 없었고, 흔히 말하는 평범한 삶을 살아온 거 같다.

대학 가고 좋은 곳 취직하고 가정을 꾸리고.

평범한 삶…. 내겐 어려웠는데.

어떻게 이런 삶이 평범한 거지? 내겐 금수저 집안인데???

A의 친정어머니가 살아오신 과정도 그 시대에 잘 사셨더라. 귀하게 대접받으시면서. A를 키우시면서 최고만을 해주셨더라. 대체 주위엔 잘 살아오고 있는 집안이 왜 이리 많지? 난 아닌데?

지금 손녀 중 한 명을 지원해 주시면서도 당연히 최고만을 해주신다. 무조건 좋은 거 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아이들의 로망이겠지? 이런 할머니.

B 집도 부모님들이 장사하셨는데, 지금도 많이 버신다.

어릴 때부터 A랑 비슷한 환경이었고, 무난하게 대학 나와서 괜찮은 회사에 취직해서 지금까지 이어진다.

본인들이 어느 정도 삶을 사니, 자연스레 신랑들도 어느 정도의 삶을 사는 사람들을 만나는 거 같다.

흔히 말하는 끼리끼리?

어떻게 보면 그들에겐 이 삶이 평범하고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우연히 아이들로 인해 인연이 되었다.

A랑 B는 지금도 잘살고 있다.

난…. 지금 힘든 상황이다.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듯 세상에서 내가 제일 힘든 시기라고 생각하며 사는 그런 상황? 일이 안 풀리려 하면 어찌 이렇게도 꼬이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돈이 원수라는 말이 맞을까?

올해 초에는 그래도 버티긴 했다. 서서히 버티기도 힘든 상황이 되어가고 있고.

하루하루가 숨쉬기도 벅차다. 아침에 눈 뜨는 게 두렵다. 밤에 자기 전 누울 때도 맘이 편하지 않다.

누군가 그랬다. 얼마나 좋은 일이 오려고 지금 한꺼번에 그러는 거냐고. 말은 쉽다.

올해 초가 지나자 서서히 A랑 B는 둘이서 만나는 시간이 많아지고, 마치 내겐 비밀이라도 되는 듯 쉬쉬거린다.

난 A랑 B 중 A랑 더 이야기를 많이 하긴 했다. 사람들 사이에도 잘 통하고 편한 사이가 있는 거 같다.

예전부터 우리가 알게 된 시점부터 A가 투덜거리는 거 들으면서 그런 생각은 했었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사는구나 하는

내가 받고 싶었던 부모 사랑이 이런 거구나.

내리사랑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하면서.

난 저 상황이면 많이 감사할 건데.

와 사람들이 이렇게 사는 게 평범하다고 하는구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고개는 끄덕이지만, 투정조차도 내겐 사치로 느껴질 때가 많았다.

A는 가게를 운영하는데 꽤 잘된다. 위치가 좋기도 하고.

종일 사람들이 쉼 없이 온다. 특별한 날은 더 바쁘다.

그런데도 투정을 부린다. 사람들이 많이 와서 짜증 난다고.

내 가게에 손님이 오는 건 감사할 일인데. 우리 가겐 손님이 안 와서 걱정인데. 난 우리 가게에 오시는 한 명 한 명이 너무 감사한데. 지금도 가게를 그만 접어야 하나 고민하는데.

사람이 많아서 쉴 틈이 없어서 짜증 난단다.

난 그조차도 부러운데.

사람이 너무 많이 와서 힘들어서 짜증 내고 투정 부리는 거 나도 해보고 싶다.

그렇게 오는 손님 덕분에 A는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사는 거 아닌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당연하게 생각하는 게 부럽다.

어떻게 살면 이렇게 살 수 있는지 내겐 영화 같은 이야기다.

무엇이 사람을 멀게 만들까?

나도 누군가가 가진 게 많다가 없어지면 그 사람을 멀리하게 될까?

A랑 B는 서서히 둘이서만 뭘 하더니 이젠 아예 내겐 물어봐 주지도 않는다.

그렇게 조금씩 난 뒤로 밀려나는 거 같다.

처음엔 섭섭하고 화도 났다.

점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 사는 게 어떻게 될지 내일 당장 모른다지만, 힘들 때 외면하는 사람들은 진정 내가 가까이 둘 사람들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사람한테 뒤통수 맞은 적이 한두 번은 아니었지만, 그때마다 두 번 다시는 사람 믿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건만. A랑 B를 알고 지낸 후 더는 그럴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나의 오만이었던 걸까.

또 한 번 크게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다.

내가 좋아서 가까이 있는 사람이 있긴 할까?

A는 운동 배운다고 B가 있는 곳까지 지하철로 40분? 거리를 매일 온다.

웃긴 건 B의 집이 우리 집 뒤다.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이다.

그렇게 매일 온다. 처음 몇 번은 자기들 운동 끝나면 나도 합류해서 편의점에서 간식도 먹었다.

내가 A에게 요즘 맘이 힘들다고 말하기 전까지.

그 말이 부담되었나 보다. 내가 뭘 바라거나 해달라는 거 아닌데 싫었나 보다. 난 자기 투정과 불만을 그리 들어줬는데.

그저 편하게 놀고 마시는 게 좋았나 보다.

그 말을 한 뒤론 자기 둘만 뭘 해도 한다.

말로는 시간 되면 차 마셔요~ 얼굴 봐요~라고 하지만,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사는 날 부를 생각이 없는 거다.

가끔 연락하게 되면 어제 너무 많이 마셔서 오늘 일하면서 종일 잤다는 둥.

내가 조만간 차 한잔하자 했다.

사실 마음만 있으면 운동 끝나서 한 시간 차 못 마실라? 맘이 없는 거지. 싫은 거지. 내가 하소연하는 것도 아닌데.

그러면서 오늘 톡이 왔다.

'언니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연락해요.'

뭐니? 우리가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만 만난 거였나? 어쩌면 마음의 여유가 아닌 금전의 여유가 있을 때 만났던 건 아니고? 지금까지 나의 착각이었나? 내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연락하라고?

받아들이기 나름이지만, 참 씁쓸하다.

그 톡을 끝으로 연락을 안 하려고 한다.

내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땐, 자기가 가진 것을 당연히 여기며 투정 부리는 사람이 아닌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을 만나기로 했다.

세상 사는 거 참 아이러니하다.

누군가는 자기 상황을 감사할 줄 모르고 하나부터 열까지 투정을 부린다.

다른 사람은 그토록 살고 싶어 하는 삶인 줄 모르고.

난 숨쉬기도 벅찬 하루하루를 보내지만, 이 하루하루도 감사하려 한다. 누군가에겐 나의 벅찬 하루도 간절히 바라는 시간일 수도 있으니까.

물론, 그 6년이라는 시간 동안 추억도 있다. 같이 웃고 즐거웠던 시간도 분명히 있다.

그 기억들을 간직하려 한다. 좋은 추억이 있어서 감사한다.

가끔 그들이 떠오를 때면 좋은 기억을 꺼낼까 싶다.

부러워하는 거 이제 그만하고 싶다.

참고, 견디고, 기다리면, 길이 열린단다.

얼마나 참고 견디고 기다려야 할지 모르겠지만, 한번 믿어볼까 한다.

믿어보는 게 내게 살아야 한다는 소리를 들려주는 거 같아서.

누군가를 부러워하는 것도 그만두련다. 그런다고 내 것이 되지 않으니까. 그럴수록 내게 너무 미안하니까.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하늘이 내게 말하는 거 같다.

살아야 한다고. 내 아이들을 내가 지켜야 한다고. 꼭 살라고. 분명히 길이 있을 거라고.

난 지금도 간절히 빌어본다.

제발 그 길을 찾을 수 있길.

제발 내게 기회가 주어지길.

턱 막히는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시고 삼킨다.

다시 내게 되뇐다.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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