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 대상포진.
나의 어린 시절은 좋았던 기억이 거의 없다.
초등학생 전 (내가 어릴 땐 국민학교였다) 기억은 거의 안 나지만, 난다고 해도 좋았던 기억은 아니다.
슬프게도 내겐 아픈 기억과 하루하루 힘든 기억이 많다.
뭐가 그리도 힘들었을까…. 왜 그리 날 괴롭혔을까…. 어린 나이부터.
가족이라는 단어가 너무 힘들었다. 가족이란 단어가 날 무조건 복종해야만 하게 만들었다. 오직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난 살면서 가족들에게 상처를 더 많이 받았고, 지금도 상처받는 중이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도 벗어나지 못하는 관계.
이젠 법이 바뀌어서 호적을 팔 수도 없단다. 쩝….
초등학교부터 나의 하루하루는 정말 기억하고 싶지도 않다.
좋은 말은 거의 들어본 적이 없고, 어쩌면 욕이란 욕은 다 듣고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나처럼 욕을 많이 듣고 산 사람도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세상에 이런 욕도 있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내가 그렇게 욕을 많이 먹을 정도로 정말 잘못했나? 수없이 많은 자책을 했다. 왜 사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조차도 모른 채.
끊고 싶어도 끊지 못하는 관계가 가족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단어가 가족일 수도 있다.
내겐 지옥보다 더 지옥 같은 곳이 가족과 집이었다.
벗어나고 싶어 발버둥 쳐도 항상 내 발목을 잡았다.
살면서 난 다짐했다.
내가 가정이란 걸 가지게 되어 아이가 생기면 절대로 나처럼 키우지 않겠다고.
집이란 곳을 오고 싶어 하는 곳으로 만들겠다고. 쉴 수 있는 곳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사람이 밖에서 좋은 말보다 안 좋은 말을 더 많이 듣고 지내는 거 같다.
적어도 집이란 곳은 빨리 들어가고 싶은 곳이어야 하지 않나?
내게 집이란 곳은 들어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고, 벗어나고 싶은 곳이었다.
어쩌다 밖에 나가면 최대한 늦게 들어가려고 무작정 방황하다가 들어온 적도 많다.
쉬는 날은 집에 있는 게 더 괴로워 나가곤 했다. 불러주는 이가 없어 갈 곳이 없었지만, 나갔다. 종일 다리아파 쉴 곳이 없어도 밖에 돌아다니는 게 더 편했다.
아침에 눈 뜨는 게 너무나 끔찍했던 하루하루였다.
자기 전 눈감으면서 내일 눈뜨지 않길 바랐던 적이 많았다.
스트레스는 끝이 없었다. 어쩌면 내가 숨 쉬고 있는 조차도 스트레스였는지 모른다.
내가 내가 아니었으면 조금 나았을까?
어느 날, 가슴과 배 사이가 따끔거리면서 아팠다. 아니 따가웠다.
긁히거나 했을 때의 통증과는 달랐다.
거울 앞에서 윗옷을 올렸더니, 꼭 긁혀서 난 것처럼 가슴과 배 사이에 상처가 있었다. 빨갰다.
별생각 없이 긁혔네 하고 후*딘 연고를 발랐다.
바르는데도 상처 부위가 따끔거렸다.
며칠이 지나도 상처와 통증은 그대로였다.
웬만하면 병원을 잘 안 가는 나다.
별생각 없이 지내다가 갑자기 피부과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런 생각을 하는 건 드문데 그날따라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른다.
다만, 꼭 그날 피부과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오후에 바로 피부과에 갔다.
무슨 사람이 그리 많은지 한참을 기다렸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원에 다닌다는 게 놀라웠다. 나처럼 미련하지 않은 사람들인 거지.
대기자의 모습도 다양했다. 아이를 데리고 온 엄마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기도 했다. 나이 든 부모를 모시고 온 사람도 있었고,
내겐 특별한 모습들이었다.
내 차례가 되어 진료실로 들어갔다.
그땐 이십 대 초반이라 여의사를 찾았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긴 부끄러웠다. 나의 큰 몸매를 같은 여자에게 보여줘도 부끄러운데. 대기자가 너무 많아 여의사 상담은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고민 끝에 남자 의사 선생님으로 했다.
그땐 내가 20대 초반이었고, 남자 샘은 대충 지금 기억으론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쯤으로 기억된다.
의사 선생님의 질문에 언제부터 증상이 있었고, 어떻게 아픈지 설명을 쫙! 했다.
의사 선생님이 상처를 보겠다고 했다.
아…. 보여주기가 부끄러웠다. 게다가 배를. 웁스. 심호흡 한 번 하고 용기를 내어 옷을 걷어 올렸다.
"이거 대상포진인데."
선생님은 보시자마자 바로 말씀하셨다.
대상포진? 그게 뭐지? 살면서 첨 듣는 용어 많이 듣고 산다 싶다.
꼭 세상 주인공처럼 남들 겪지 않는 일도 많이 겪고, 힘겹게 이겨내어 결국은 꽃밭으로 들어가는 뭐 그런 아름다운 주인공은 될 수 없으려나? 정해진 각본처럼 연기만 하면 되는 그런 주인공이라면 참 아름다울 텐데 말이다.
"안 아팠습니까? 이거 아픈데."
선생님은 배 주위도 한번 점검하듯 보시면서 말씀하셨다.
"조금 따갑긴 했어요."
난 혼나는 학생처럼 작은 소리로 눈치 보며 말했다.
"이제 20댄데 벌써 대상포진입니까? 나이 드신 분들한테 많이 나타나는데 스트레스가 많습니까? 면역력도 약해지고…."
말끝을 흐리셨다. 아마도 뒷말은 체격은 크면서 비실거리냐는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혼자 잠시 했다.
일주일 동안 매일 적외선 치료받고, 처방해 주는 약 매일 바르라고 하셨다.
생전 처음 받는 적외선 치료였다. 적외선 쐬는 동안 아무런 느낌은 없었다. 10분 정도 했던 거 같다.
일주일…. 귀찮은데.
계산하는데 직원이 그런다. 비누도 하나 써보라고. 전용 비누라나? 비누 가격이 아름답지 않다. 무슨 비누가 이만 원? 게다가 연고는 또 왜 그리 비싸? 보험이 안 된다나? 환자한테 장사하는 건가?
십만 원 가까이 되는 계산을 하고 나오는데 기분은 나쁘다.
피부과가 집에서 멀지는 않았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길었다. 예약받지 않아 무조건 현장 접수다.
웬만하면 병원 잘 안 가는 나로선 갈 때마다 접수하고 기다리고. 이것도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싸게 주고 산 비누와 연고를 매일 부지런히 발랐다.
비누는 하루에 두 번인가 사용하라고 했던 것 같다.
아마 그때의 일주일이 살면서 제일 많이 씻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어질 정도다. 비싼 비누라 다른 곳도 써볼까 하는 유혹이 있었지만, 대상포진용 비누라 참았다. 비누를 다른 곳에 사용하면 그곳도 대상포진이 걸릴 거 같은 느낌이 들어 찜찜했다.
일주일 동안 부지런히 써도 비누가 별로 줄어들지 않았다. 차라리 작은 비누 만들어서 싸게 팔지.
사람들은 머리가 참 좋은 거 같다. 장사꾼들!!!
내가 그 돈을 벌려면…. 흑흑.
일주일 동안 매일 피부과 가서 의사 선생님 만나 상처 보여주고, 적외선 치료받고 계산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꾸준함이 이긴다고 했던가!
처음 진료 날 선생님이 일주일 정도 꾸준히 받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말씀하셨는데, 역시 경험의 비결인가.
일주일 되던 날 상처가 깨끗해졌다.
마법이라도 부리는 줄!
적외선 치료 잠시 받는데도 매일 만 원 이상 들었던 거 같다.
그때가 20년 조금 지난 지라, 지금은 기계도 더 다양하고 좋아졌겠지. 치료비도 내려갔으려나?
대상포진이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주로 나타난단다. 선생님도 이렇게 젊은 나이 대상포진은 거의 없다고 하셨다.
스트레스.
그렇지, 만병의 근원이 스트레스지.
20대 초반에도 난 힘들었지.
지금 생각해도.
대상포진이 다른 부위에도 나타날 수 있으니 잘 지켜보라고 하셨다.
다행인 건 머리에도 대상포진이 나타나는 예도 있는데, 머리가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사람이 살면서 불행 중 다행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어쩌면 나도 그럴지 모른다.
일주일 피부과 다니면서 그 당시에도 난 나에 대해 부정적이었고 우울했다.
긍정적으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지를 몰랐던 거 같다.
그 누구 한 명 긍정적으로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으니까.
나도 너무 몰랐으니까.
이제 반백 살을 눈앞에 두니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이 어떤 건지 조금 알 것 같아.
아직 배울 게 많고, 지금이라도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지금까지 내 인생에 아주 미안한 삶을 살았던 거 같다.
날 되돌아보면서 위로할 줄 몰랐고, 날 응원할 줄 몰랐으니까.
난 왜 그럴까? 왜 나만 이럴까? 왜. 왜. 왜라는 왜를 끊임없이 내게 던졌다.
무엇보다 난 왜 태어났을까? 라는 너무도 자신을 아프게 하는 말을 많이 했었다.
아직 내가 잘하는 것도 내세울 것도 없지만, 이젠 더 이상 내 인생에 미안해하면서 살고 싶지 않다.
어쩌면 남들보다 늦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은 걸지도 모른다. 이 일을 제대로 잘 해낼지도 확신이 없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고 싶지도 않다.
뭐라도 해보고 싶다. 내가 살아있다는 걸 느끼고 싶다.
지금도 삶에 허우적거리지만, 두 아이를 보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아직 잘 모르지만, 오늘도 살아보려 한다.
오늘도 몇 번이나 내게 말해준다.
괜찮다고.
아직 늦지 않았다고. 해보자고.
가끔 주위에 대상포진으로 치료받으러 다닌다는 말을 들을 때가 있다.
난 속으로 웃어준다.
‘난 20대 이미 지나갔다.’라고 말하면서.
대상포진이 빨리 지나간 만큼 나의 내면은 그만큼 성숙해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