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상기태를 딛고

잘못된임신

by 쉼이되고싶은 나무

난 몸매가 크다.

뭐 체격이라고도 하지. 살집도 많다. 어찌 보면 덩치라고 표현해도 아니라고 못 할지도 모른다.

내가 임신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했다.

몸매가 큰사람은 애를 제왕절개 해야 한다느니, 임신이 어렵다느니 말이 많다.

결혼한 지 1년이 안 되어 임신인 걸 알았다. 어찌나 놀랐는지.

내가? 임신을? 하면서 영화의 주인공이 된 거 같은 느낌이었다.

이 몸매에 임신을? 기쁨과 긴장의 환호가 내 안에서 메아리쳤다. 누구든 붙잡고 나 임신했다고 외치고 싶어질 정도였다.

신랑과 산부인과에 갔다.

처음엔 큰 병원 산부인과에 갔다. 쌍둥이란다. 웬일이래?

나랑 신랑은 집에서 가까운 산부인과에 가기로 정했고, 바로 작은 산부인과로 갔다.

한동안 산부인과 다니려면 가까운 곳이 좋으니까.

산부인과 원장님이 남자분이셨다. 오래 하셨다.

의사가 남자냐 여자냐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내겐 의사 선생님이었으니까. 전문간데 뭐가 중요하리.

원장님이 초음파를 보시더니 표정이 굳어지셨다.

옆방의 다른 여자 원장님을 부르셨다.

"여기 와서 봐봐. 이거 포상기태지?"

남자 원장님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포상기태? 그게 뭐지?

나랑 신랑은 눈을 마주쳤고, 서로 멍한 표정으로 입만 방긋거렸다.

"네. 그런 거 같은데요."

여자 원장님도 손으로 턱을 쓸어내며 말한 뒤, 방으로 돌아갔다.

남자 원장님이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말씀하셨다.

포상기태에 대해서.

내가 살면서 별일을 다 겪는다. 대상포진도 겪었었고. 그것도 20대에 처음 들었다. 포상기태.

아기집은 있는데 아기는 없단다. 몸은 임신으로 받아들인단다. 점점 아기집이 커져서 잘못하면 암으로도 변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수술해야 한단다.

신랑은 방금 다른 병원에서 쌍둥이라고 했는데 무슨 소리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원장님인 소견서를 적어줄 테니 그 병원에 가보라 고했다.

한걸음에 다시 큰 병원으로 갔고, 날 진료한 의사를 만났다.

소견서를 보더니 다시 초음파를 보자 했다. 이날 초음파를 몇 번을 보는 건지.

초음파를 보면서 그런다. 포상기태가 맞는 거 같다고. 자기가 심장 소리로 잘 못 들은 거 같다고.

어이가 없었다. 우린 너무 정신이 없어서 다시 작은 산부인과로 돌아갔다.

작은 병원이라 수술해서 혹여나 치료받아야 할 상황이 되면 큰 병원으로 옮겨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원장님이 믿음이 갔다. 나의 몸매에 임신했다는 사실에 너무 흥분해서 다른 걸 못 본 거 같다.

그때 의사한테 오진 아니냐고 따졌어야 했나? 의사도 아차 했을 건데 아무 말 안 하고 정신없어 나온 우리를 보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을까?

지나서 생각해 보면 큰 병원에서 오진한 거 아닌가?

수술 날짜를 잡았다.

며칠 뒤 수술했다.

전신마취를 했다.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검은 큰 개가 나를 하염없이 쫓아왔다. 살기 위해 그렇게 전력 질주한 적은 없었던 거 같다. 꿈이었을 건데 너무 생생했고, 땀 흘리며 전력 질주했다. 주위엔 아무것도 그 누구도 없었다. 오직 어두운 공간에서 난 앞으로만 하염없이 달렸다. 내 뒤론 검은색의 큰 개가 짖으면서 달려왔다. 그 개 역시 전력 질주였다.

얼마나 달렸을까? 눈앞에 미끄럼틀이 보였다. 저기가 아니면 진짜 죽을 거 같았다.

미끄럼틀이 초록색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옆으로 돌아서 계단으로 올라가기 급박했다.

정면에 보이는 미끄럼틀 미끄럼을 양손으로 양쪽을 꽉 잡고 미친 듯이 올라갔다.

미끄러지면 끝이라는 생각에 정신없이 올라갔다.

사람이 급박한 상황이면 없던 힘도 생긴다더니 정말인 거 같았다.

다행히 날 쫓아오는 큰 개는 미끄럼으로도 계단으로도 올라오지 못했다.

난 있는 힘껏 살려달라고 소리쳤고 그 순간 잠에서 깼다.

깨어나니 난 다른 병실로 옮겨져 있었다.

비몽사몽으로 상황판단이 안 된 내 눈앞엔 걱정으로 가득한 눈으로 날 바라보는 신랑이 보였다.

순간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내 옆엔 다른 사람이 누워있었다.

그 여자는 출산 후 잠시 있는 거였다. 조리원도 같이 운영하는 곳이어서 방 정리 중이라고 했다.

하…. 이럴 수가 있나?

내 옆에는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축하받고 있는데, 난 수술하고 꿈에서 쫓기고 눈뜨니 눈물만 났다.

신랑도 이런 내 맘을 아는지 말없이 내 머리를 쓰다듬고만 있었다.

"수고했어."

이 말만 반복하는 신랑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난 누워있어도 그저 눈물만 났다. 날 보면서 신랑은 차마 눈물을 흘리지 못했겠지?

두어 시간 있다가 병원을 나왔다.

나오기 전에 원장님이 당부하셨다.

일주일마다 피검사를 해야 하고, 피 수치가 임신이 아닌 정상 수치로 내려와야 한다고.

한 이 주 정도 했나? 피 수치가 다시 올라갔다.

원장님은 큰 병원 가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왜 그리 심장이 떨리는지 숨이 멎을 거 같았다.

대학병원에 가서 진료받았다.

수술을 또 해야 한단다. 몸에 남아있는 찌꺼기가 있어서 수치가 올라간 거란다.

또 날짜를 잡았다.

수술실에서 기다리는데 의사와 간호사는 떠들고 즐거워 보였다.

하긴, 난 우울해도 자기들은 일인 걸 어쩌겠어.

난 당연히 전신마취 할 줄 알았는데, 부분마취를 했다.

가위질 소리와 이런저런 소음들이 다 들렸다. 기분 참 묘했다. 꿰매는 건지 따끔한 느낌도 있었다.

회복실로 와서 오래 있진 않았던 거 같다.

의사가 그랬다.

6개월 동안 1주일마다 피검사를 해서 수치가 정상이 되면, 다시 6개월 동안 1달마다 피검사를 해서 정상 유지가 되면 완치라고 한다고 했다.

너무 길게 느껴졌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병원에서 나오는데 길에 보이는 아이들만 봐도 눈물이 났다. 내가 아이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집에 와서 신랑이 그랬다.

임신이란 걸 알기 전에 꿈을 꿨단다.

꿈에 뭔가가 품에 안겼는데 보니까 죽어있더란다.

이상한 꿈이 다했는데 이런 일이 생긴 거였고 차마 말을 못 하겠더란다.

난 더 이상 임신이 무서웠고, 이런 일이 또 생길 거 같아 임신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신랑한테 말했다.

우리 둘이 살아도 되겠냐고? 임신이 안 될 수도 있다고.

신랑이 괜찮단다. 우리 둘이 살면 된다고 한다.

그 말 듣는데 눈물이 났다.

피검사 중간에 다시 수치가 올라가서 항암 주사를 두 번 맞았고, 다행히 수치가 정상으로 내려갔다.

6개월 동안 정상 유지가 되었다.

이제 겨우 완치라는 두 글자를 들었는데 의사가 그런다.

3개월인가 6개월 안에 임신이 안 되면 불임이라고.

불임 두 글자 듣는데 너무 화가 났다.

내가 버럭 했다.

이제 치료 끝난 사람한테 그게 말이냐고. 불임이란 말을 그렇게 쉽게 하시냐고.

뒤에 서 있던 간호사도 움찔했다.

말을 그렇게밖에 못하나? 본인 일 아니라고.

내가 두 번 다시 이 의사한테는 절대로 진료 안 받겠다고 결심했다.

한동안 어디서든 아이만 보면 자동으로 눈물이 났다.

어쩌면 맘 한편에 임신이라는 단어를 지웠을지도 모른다. 그냥 둘이 살면 된다고 생각했고, 혹여나 신랑이 아이를 원하면 그땐 내가 보내줘야 한다는 생각도 했다. 두 번 다신 나에게 임신이라는 경험이 찾아올 거란 생각은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몇 달이 흘렀다.

신랑이 친구 결혼식으로 주말에 다른 지방에 가게 되었다. 난 몸이 너무 안 좋아 혼자 보냈다.

집에 혼자 있는데 먹은 것도 없는데 왜 그렇게 속이 더부룩한지 소화제를 먹었다.

며칠 뒤 그날이 될 때가 됐는데 소식이 없어 혹시나 하고 임신테스트기로 테스트했다.

선명한 두 줄이 나왔다. 너무 놀랐다. 첫 임신보다 더 놀랐다.

그 짧은 순간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기 끔과 걱정과 두려움이 순식간에 같이 지나갔다.

다음날, 신랑과 함께 작은 산부인과에 갔다.

초음파를 보는 준비를 하는데 너무 떨리고 긴장되고 무서웠다.

원장님도 우리를 기억하시고, 걱정되냐고 물으셨다.

"이제 봅시다."

이 한마디에 내 몸의 모든 신경이 쏠리는 거 같았다.

원장님이 소리를 크게 하셨다.

둥둥...이었나? 뭔가가 뛰는 소리였다.

"들리죠? 심장 소립니다. 이제 6주 정도라서 심장만 보입니다. 여기 점 같은 거 보이죠? 아깁니다."

나랑 신랑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신랑 눈에 눈물이 맺혔고, 난 임신 맞냐고를 몇 번이나 물었다.

원장님은 귀찮아하시지 않고, 몇 번이나 임신이라고 대답해 주셨다.

다음 예약일을 말씀해 주시고, 너무 무리하게 하지 말라고 하셨다.

우린 몇 번이나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고, 신랑은 예전에 원장님께 화내서 죄송하다고 했다.

원장님은 괜찮다고 이렇게 좋은 일로 다시 만나서 축하한다고 하셨다.

세상이 변해 보였다.

연애하면 세상이 달라 보이듯 임신도 그랬다.

이번엔 임신이 확실했다. 변하지 않은 나의 큰 몸매에 임신이 확실했다.

신랑은 먹고 싶은 거 없냐고. 없다. 뭐 당장 먹고 싶은 게 생길까.

내 심장은 계속 방금 들었던 빠른 속도의 심장처럼 거칠게 뛰고 있었다.

신랑이 집에 와서 그런다.

친구 결혼식 날 내가 소화제 먹었던 그날.

신랑이 꿈을 꿨단다.

여왕벌이 자기 품으로 들어왔다고. 태몽이었나 보다.

여왕벌? 딸인가? 나랑 신랑은 딸이면 좋겠다고 했다.

임신기간 동안 난 먹는 걸 더 조심했다.

내가 큰 몸매가 보니 걱정도 되기도 했고, 그때 내가 33살이어서 조심스럽기도 했다.

요즘은 결혼도 늦어지고 있기도 하고 출산도 늦어지고 있지만, 그땐 35살 이상 출산하면 노령 출산이라던가? 조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어찌 됐든 임신성 당뇨병과 기형아검사 여러 과정이 있었고, 아기한테 안 좋은 게 가면 안 된다는 생각에 더 조심했던 거 같다. 다행히 아기는 탈 없이 잘 크고 있었다.

처음 배에 뭔가 툭 튀어나오는 거 보고 놀랐다. 태동이었다.

와우! 나의 큰 몸매에 태동을! 감동이었다.

난 사실 태동도 못 느낄 줄 알았다. 나랑 비슷한 큰 몸매의 누군가가 임신을 했는데 자기는 태동을 느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걱정되어 초음파를 보면 애는 안에서 너무 잘 놀고 있다고 했다.

고맙게도 내 아기가 힘차게 발길질해주는 덕분에 태동이란 걸 느낄 수 있었다. 아기가 클수록 그 힘도 세졌다.

임신기간 동안 원장님은 제왕절개 단어를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으셨다.

출산일이 다가오자 내가 물었다.

혹시 제왕절개수술을 해야 하냐고.

원장님이 그러신다. 자연분만 문제 있냐고. 원장님이 보시기엔 가능하고 정 안되면 그때 생각하자고 하셨다.

그 말이 힘이 됐다. 자연분만의 가능성이 있다는 말에 감사했다.

출산예정일은 5월 18일.

이날 유도문만을 하자고 했다. 아기가 충분히 자랐단다. 시간이 지나면 아기가 커질 수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딸이란 건 7개월째 말씀해 주셨다.

신랑과 나는 환호했다. 원장님이 이런 부부는 처음이란다. 다들 첫아이는 아들을 원했다고 하셨다.

어쨌든 딸 생일이 18일인 건 억양도 그렇고 내키지 않았다.

진료 며칠 전 원장님께 여쭸다. 혹시 1주일 정도만 기다렸다가 그때 유도분만 하면 안 되냐고.

1주일 정도는 괜찮을 거라고 하셨다.

5월 25일이 되기 하루 전. 유도분만 하기로 했다.

25일은 음력으로 시어머니 기일이다.

밤 12시 땡 하자 귀신같이 진통이 시작됐다. 정말 상상도 못 했다. 유도문만 하기로 해서 이미 병원 갈 준비는 해뒀었다. 신랑이랑 병원에 연락하고 부랴부랴 갔다.

무슨 진통을 8시간을 하는지…. 아침까지 진통했다. 출산을 위한 진통이 신기했다.

점점 주기적으로 바뀌더니 왜 사람들이 진통의 아픔을 기억하면 출산은 평생 한 번만 할 거라는 말이 이해되었다. 너무 아팠다. 시기를 놓쳐 무통 주사도 못 했다.

3분 정도 죽을 듯이 아팠다가 2분 괜찮아졌다. 이걸 몇 시간째 반복하는 거다.

그렇게 8시간을 진통하다 보니 이젠 분만실 가도 된다고 했다. 아기가 이제 나올 준비를 했다는 뜻이다.

분만실로 들어가니 왜 그리 온몸이 추운지. 느낌이었겠지.

드디어 출산이었다.

진통을 그렇게 했는데, 쑥 나와주면 좋았을걸. 아기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아기가 머리는 내려왔는데 아래로 안 내려온단다.

다행인 건 아침이라 병원에 간호사분이 4분 정도 계셨다.

원장님이 간호사분들 다 부르시더니 내 배를 여기저기 가리키시면서 두 손으로 힘껏 누르라고 하셨다.

간호사 선생님들 인정사정없이 눌렀다.

잘못하면 아기의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고 나오다가 걸리면 위험하다고 있는, 힘껏 누르라고 하셨다.

내 배를 여기저기 누르는데 숨이 막혔다.

몇 번을 눌렀는지 숨 막혀 죽을 것 같았다.

사람이 살고자 하는 의욕이 간사하게 만드나 보다.

그 순간 아기보다 내가 죽을 거 같아서 소리소리 질렀다.

나 죽는다고, 숨 막혀 죽는다고….

난 소리소리 지르면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시어머니가 떠올랐다.

제발 아기 살게 해 달라고 빌었다.

나 죽는다고 배를 그만 누르라고 하면서도 시어머니께 내 아기 살게 해 달라고 비는 이 상황은 인간의 이기심인 걸까?

원장님이 수술해야 하나라고 말을 뱉은 그 순간 거짓말처럼 아기가 쑥 나왔다.

아기가 나온 뒤 아기보다 더 큰 뭔가가 몸속을 쑥 하고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탯줄이었다.

원장님이 아기를 안고 나를 향해 보여주셨다.

아…. 감사합니다. 눈물이 났다.

"현재 아침 8시 18분 3.4kg 52cm 공주님입니다."

난 회복실로 옮겨졌고, 회복실 가면서 신랑과 마주쳤다.

"고생했다."

이 말을 하면서 내 손을 꽉 잡고 같이 회복실로 갔다.

조리원도 예약해둔 상태라 방 정리할 동안 회복실에 있는 거였다.

얼마 전 여기서 수술하고 회복실에서 내 옆에 출산한 여자가 있었는데, 그 여자 자리에 지금 내가 있는 거였다.

'감사합니다.'

수없이 되뇌었다. 건강한 딸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조리원에 매일 원장님이 아침마다 오셔서 산모들의 안부를 물으셨다.

"원장님. 밑이 너무 아픈데 원래 이런가요?"

"아플 만하지요. 보통은 한 군데를 찢는데 산모님은 세 군데를 찢었으니 아픈데 당연합니다."

그랬다. 내가 기도하는 그 순간 원장님은 노하우를 발휘하신 거였다. 그 짧은 순간의 판단으로 내 아이를 살리신 거였다.

지금 난 두 아이의 엄마다.

둘째는 아들이고 난 둘 다 자연분만했다. 둘째는 첫째보다 훨씬 덜 아프게 나와줬다.

물론 무통은 둘 다 못했다.

난 살면서 보통의 사람들이 겪기 쉽지 않은 일을 어릴 때부터 지금도 그 삶을 살고 있다.

포상기태라는 설명만 들어도 무시했던 그 병명을 잘 이겨냈다.

치료과정이 쉽지 않았다.

피검사를 하는 날은 종일 긴장했었고, 다음날 병원에서 전화로 피검사 결과를 알려주기 전까진 물 한 모금도 제대로 넘어가지 않았다.

그 1년이라는 시간을 버텼다.

강한 사람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고 한다.

난 오늘도 살아남기 위해 애쓴다.

어떤 날은 내가 생각해도 내가 너무 가여울 때가 있다.

그래도 살아가고 있다.

더 이상 내 인생에 미안해하지 않기 위해 살고 있다.

충분히 미안했으니까.

이젠 큰 몸매도 조금 줄여볼까 하는 맘으로 매일 아들과 밤에 걷는다.

어쩌면 지금 또 나의 인생 중 힘든 시기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살고 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진 살아보려고 한다.

상황을 탓하고 싶고, 누군가를 원망해서 내 힘듦을 줄여보고 싶기도 하지만 내가 이겨내고 살아야 할 내 삶 인다.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내 삶이다.

오늘 하루도 힘들지만, 감사하면서 하루를 또 살아가고 있다.

살다 보면 꽃길이란 것도 걸어볼 수 있지 않을까?

부디 그 꽃길이 내가 살아있는 동안 걸을 수 있어 보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