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감사합니다"

3살부터 팽이사랑에 빠진 아들이야기

둘째 아들은 지금 중1이다.

아들이 3살 때 둘째 조카가 7살이었다.

서울에 사는 언니네가 명절이라고 왔다.

둘째 조카는 그 당시 방영 중인 베이* 에 나오는 팽이를 가져왔다.

우리 땐 나무팽이를 줄로 감아서 돌리는 게 다였는데. 게다가 돌리기는 얼마나 힘들었는지. 내 기억에 난 제대로 돌려본 적이 없다.

나무팽이가 은근 사람을 도전하게 만들기도 했다.

아들이 3살일 때 뭐든 뺑뺑 돌아가는 걸 좋아하던 시기였다.

바람개비만 보면 넋을 놓고 바라보곤 했으니까.

조카가 가져온 팽이는 신세계였다.

팽이를 돌리는 도구(런처라고 부른다)를 끼워서 쫙 빼면 팽이가 돌아간다. 팽이판은 또 어찌나 멋지게 나오는지. 사이즈별로 다양했고, 모양도 여러 가지였다.

아들은 팽이에 눈을 못 떼고 있었다.

명절이라 길진 않지만 이틀정도 있다가 갔는데, 결국 조카가 아들이 팽이에 눈을 못 떼니 팽이를 놔두고 갔다.

동생한테 주는 선물이라나?

그 팽이를 시작으로 우리 식구는 악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팽이의 종류에 깜짝 놀랐다. 다 똑같아 보였는데 부속하나의 모양에 따라 다양했고, 색상은 왜 그리 많은지.

아들이 팽이에 푹 빠져있었다. 잠잘 때도 팽이를 베개옆에 두고 잤다. 자다가 깨서 팽이가 있는지 확인까지 했다.

신랑은 그런 아들을 위해 마트를 수시로 방문했다.

삼촌들은 팽이를 사다 날랐다. 나한테 혼나도 몰래 사 오곤 했다.

문제는 팽이를 혼자 돌리다가 같이 돌리자고 한다.

한번 시작하면 두세 시간은 기본으로 팽이를 돌렸다.

3살인데 무슨 팽이를 저리 잘 돌리는지. 체력은 무한대인 줄. 도구도 아닌 손으로도 돌렸다.

뿐만 아니라, 집에 있는 그릇이며 컵 기타 등등 문구며 살림도구며 죄다 돌려보곤 했다. 유리컵도 돌렸을 정도다. 냄비도 예외는 아니었다.

팽이 천재일 줄 알았다.

지금까지도 팽이 사랑은 이어지고 있다.

그때부터 모아 온 팽이가 백개는 충분히 넘는다.

이젠 자기 용돈으로 팽이를 사긴 하지만, 한정판도 있고 팽이의 출시도 끝이 없다.

사람들의 장사 머리는 정말 대단한 거 같다.

우린 첫 팽이를 만난 그날부터 지치도록 팽이를 같이 돌렸다.

일하고 들어온 신랑은 점점 다크서클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촌동생도 가끔 우리 집에 오면 팽이를 쳐다보지 않기 시작했다.

아들은 눈에 빛을 내며 어른들에게 다가가지만 점점 거절당하는 횟수는 늘어났다.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십분 돌려도 힘든데... 몇 시간을.

난 아예 처음부터 같이 돌려주지 않았다. 탁월한 선택이었던 거 같다. 내게 미래를 볼 줄 아는 능력이 숨겨져 있던 건 아니었을까 싶다.

마트를 갈 때마다 팽이를 산건 아니었지만, 아빠 입장에서 새로운 게 나오면 자꾸 사주고 싶나 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들도 혼자 돌리는 시간이 늘어났다.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해 가는 거지!

혼자 돌리는 거 보면 안쓰러워 마음이 흔들릴 때도 있었다.

그렇다고 돌리기 시작하면 한두 시간은 기본인지라 내가 먼저 살아야 하기에 애써 외면했다.

어린아이가 팽이 돌리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팽이 돌릴 때만큼은 천하장사다.

지치지도 않는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도 돌린다.

집중력도 이보다 더할 순 없을 거다.


어느 날, 그때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5-6살 정도였지 싶다.

마트를 가도 거의 집에 있는 팽이들이라 아들도 구경하는 재미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다행인 건 그 나이에 한글을 몰랐고, 우리가 티브이를 거의 보지 않아서 신제품에 관한 정보는 전혀 없었다는 거다.

주위에도 팽이를 좋아하는 아이는 없었기에 더욱 다행이지 싶다.

마트를 갔는데, 아들이 팽이 코너에서 서성거렸다. 득템이라도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러다가 런처 (팽이 돌리는 도구) 주위를 기웃거리더니 한 개를 덥석 뺐다.

"아빠 이거 사줘."

"이거? 이거 전에 아빠가 사줬는데. 집에 있을 건데."

"아니야 없어. 사줘."

우리 애들은 마트나 다른 곳에서도 떼를 쓰지 않았다.

처음 떼쓸 때 혼나고 그 뒤론 떼를 쓰지 않는다.

마트를 갈 때 약속도 하고 간다. 오늘은 팽이를 사준다거나, 안 사준다거나 하는 약속을 하고 간다.

내가 애들 키우면서 엄청 노력한 결과이기도 한 것 같다.

이날은 달랐다.

몇 번이나 사달라고 했다.

신랑이 점점 표정을 굳혀가며 말했다.

"일단 집에 가서 확인부 터해. 아빤 분명히 사줬으니까. 없으면 아빠가 사준다. 그런데 너 만약에 집에 가서 이거 있으면 어떡할 거야?"

신랑이 목소리에 힘주어 말했다. 제법 카리스마 있게 느껴졌다.

아들도 아빠의 단호한 말투에 긴장했다. 그 자리에 한참을 서서 고민했다.

나도 어떤 답을 할지 궁금하기도 했다.

아들은 뭔가 결심한 듯 고개를 한번 끄덕이더니 우리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 순간 나랑 신랑, 그리고 두 살 많은 딸은 그 자리에서 빵 터졌다.

집에 있으면 감사하단다.

와우!

전혀 생각도 못한 대답이었다.

신랑도 순간 카리스마 무너지고 웃어댔다.

구멍이 많은 아들이지만 이럴 땐 귀엽다.

나름 고민한 대답이었겠지?

역시나 집에 오니 있었다.

어제까지 분명 가지고 놀았을 건데 아들은 런처를 첨 보는 것처럼 껴안았다.

아들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아이를 한 명 키우는 것도 쉽지 않을 거다.

두 명 키우면 두 배가 힘드냐? 아니! 몇 배가 힘들다.

그래도 아이를 키우면 힘들 때도 많지만, 큰 웃음을 줄 때면 힘듦이 한 번씩 사르르 녹는 거 같다.

이런 일들도 추억으로 남아 한 번씩 떠오른다.

중1 아들에게 예전에 네가 이렀다고 하면 기억난다고 한다.

그저 같이 나눌 수 있는 소소한 추억이 있음에 웃어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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