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이 사실을 말하지 않으면
내가 먼저 터져버리거나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 같았다.
강아지에게 사실을 말해주기도 했다.
위로의 말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심연을 아는 듯
품에 안겨 말없이 얼굴을 핥기만 했다.
다음 날,
눈을 뜨자마자 제일 멀리 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옆에서 나를 지켜줄 사람보다
내 말을 끝까지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사실을 전달하는 동안
눈물보다 분노가 앞섰다.
내가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
지금은 또렷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 통화는
밖에서 듣고 있었다.
문을 열고 나갔을 때
그 사람은 아무것도 못 들은 사람처럼
내 표정과 안부를 살폈다.
소파에 앉아있는 나를 식탁의자에서 바라보며
말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왜 우냐는 내 말에
네가 이렇게 힘들어할 줄 몰랐다며
연신 미안하다며 앵무새처럼 말했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다시 솟구쳐
막 신혼인 오빠에게 전화를 했다.
오빠의 행복한 시간을 깨고 싶지 않아
수없이 망설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이기적이어야 했다.
그래야 내가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빠는 짐을 챙겨놓으라며
지금 출발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이혼’이라는 단어조차
입에 올릴 정신이 아니었다.
우선 같이 있어보겠다고,
모호한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그 통화가 끝난 뒤
가장 큰 산이 나를 덮쳐 순간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그 사람의 말을 들은 그날, 그 순간부터
나는 나보다
아버지를 먼저 떠올렸다.
우리 아버지, 어쩌지.
아버지의 표정,
몸짓,
숨소리까지
상상하는 것조차
끔찍하게 아팠다.
어제 그 이야기를 듣고
집으로 같이 돌아가던 길.
핸드폰이 울렸다.
화면에
‘아부지’라는 단어가 보였다.
보자마자
마치 훔친 남의 핸드폰처럼
진동과 진동음도 들리지 않게
옷 속 깊숙이 집어넣었다.
진동이 멈춘 뒤
다시 꺼내 본 화면 속
‘아부지’라는 글자.
말없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나는 문자 하나를 보냈다.
‘목감기가 너무 심해서 통화를 못해.
나으면 연락할게요.’
아무렇지 않게 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주말부부인 딸이 아프다는 게
걱정이 되셨는지
이틀 뒤에도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았다.
울음과 분노로 쉰 목소리였지만
감기 기운인척
많이 나았다고 말했다.
그 사람의 안부를 물으셨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사람은 그때도 집 안에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아버지만큼은
이 현실에
가장 늦게 도착했으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