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그전에

by 숙희달

나는 이미 한 사람을 이 현실 안으로 끌어들였다.

이모였다.


오빠와 아버지에게 말하기 전,

나는 이모에게 먼저 이 사실을 알렸다.

엄마가 떠난 뒤 엄마의 빈자리를 대신해 준 존재였다.


그래도 아버지와 오빠보다는

조금 덜 무너질 사람일 거라고 혼자 계산했다.


그 계산이 잔인하다는 걸 알면서도.





사실 이 일이 벌어지기 훨씬 전에도

나는 한 번 이모에게 말했다.


“이모, 그 사람 바람피우는 것 같아요.”


그 사람에게 명확한 증거들을 들이밀며

추궁했을 때 나에게 했던 거짓말과,

사실을 숨긴 채 이혼을 요구했다는 이야기에도

시어머니가 떠나고 나서 생긴 우울증인 것 같다며

믿고 기다리라는 말뿐,


늘 내 의심보단 그 사람을 믿었다.


그때 이모는 말했다.


“네가 지금 너무 심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쳐서 그래.

그 사람만 한 사람 없다.”


나는 그 말을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그래야 의심이 내가 만든 소설이었을 테니까.

그리고 이번에는 그 소설이 현실이 되어 돌아왔다.



평소처럼 전화를 받은 이모는


“응~ 딸!”


이라고 말했다.


그다음 말을 잇고 싶지 않을 정도로 평온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나는 횡설수설 쏟아냈다.


이모는

내 말을 끊지 않았다.

내게 되묻지 않았다.

그저 듣고만 있었다.


그리고 짧게 말했다.


“일단 사무실로 와.”


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이모의 사무실은 차로 10분 거리.

참 아이러니했다.


내가 가장 의지하던 존재들이 내 근처에 있었지만,

내 의심에 대해서만큼은 모두 나의 말을 부정하고

그 사람을 지지했다는 게.



사무실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먼저 내리지 못했다.

차 문을 열고 나간 사람은 그 사람이었다.

나는 죄인처럼 한 박자 늦게 따라 내렸다.

마치 이 일을 공론화시킨 내가 문제인 것처럼.





사무실 안은 조용했다.

이모는 들어오는 나에게만 시선이 꽂혀 있었다.

눈은 이미 붉어져 있었지만, 입은 웃고 있었다.


나는 울면서 상세한 얘기를 이어갔다.

이모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듣고만 있었다.

그러다 낮게 말했다.


“그만 울어. 운다고 해결되지 않아.”


처음 보는 차가운 태도였다.


숨을 고르고 말을 마쳤을 때,

이모는 우리 둘을 번갈아 보더니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너는 어떻게 할 거니.”


나는 모르겠다고 했다.

한참의 침묵 끝에 이모가 그 사람을 불렀다.


“자네.”


사무실 공기가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내가 한 대 때려도 될까?”


이모는 나를 보지 않았다.

그 사람을 보며 물었다.


그 사람이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이모의 손이 올라갔다.


등을 세게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자네가 어떻게 그래.

아기도 잃고 병까지 얻은 애한테

어쩜 이럴 수 있어.”


이모는 둔탁한 소리 속에

울음소리를 묻고 있었다.


그 사람은 고개를 숙인 채 울고 있었다.


“이모님… 죄송합니다.”


계속 돼 내었다

.

“이모님, 죄송합니다.”


이모는 울음을 삼키며 말했다.


“왜 나한테 죄송해.”


그리고 나를 가리켰다.


“쟤한테 미안해야지.”


나는 그 자리에서 목놓아 울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우리 가족이

그 사람에게 손을 댄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의 나는 아무 결심도 하지 못했다.


그저 가족들에게 또 하나의 상처를 만든

내가 너무 싫었다.





밤이 깊어질 즈음 이모에게 전화가 왔다.


“네가 그동안 했던 얘기 못 들어줘서 미안해.”


나는


“괜찮아요.”


라고 말했다.


그러자 이모가 덧붙였다.


“그 사람 사무실 나서는 순간 한숨을 몰아쉬면서

살짝 밝아진 표정으로 문을 나서더라.”


“마치 큰 산 하나는 넘었다는 듯이.”


그 말을 들은 순간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



분명 울고 있었는데.

계속 죄송하다고 말했는데.

나에게 미안하다며 더 잘하겠다고 했는데.


그런데 왜 산을 넘은 얼굴이었을까.


그제야 알았다.


저 사람은 내 아픔이 문제가 아니었구나.

나는 아직 판단조차 못 내리고 있었는데.

저 사람은 이미 자기 몫의 산을 넘어버렸구나.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조용히 결심했다.


이 결혼을 끝내기로.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