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모님께 잘못을 저질렀을 때
늘 비슷한 방식으로 관계를 회복해 왔다.
상황을 모면하고, 눈치를 보다가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리는 것.
그렇게 하면 언젠가는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갔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이미
내가 아버지 마음에 박은 못을
더 깊이 내려친 뒤였다.
그걸 깨닫고 나니 이번에는
시간에 맡길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 아니면 용서받을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닫힌 방문 앞에 섰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문을 열었다.
아버지는 등을 돌린 채 누워 있었다.
나는 그 뒷모습을 향해 무릎을 꿇고 말했다.
“아빠,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내 목소리는 생각보다 작았고,
울음에 묻혀 제대로 전해지지 않은 것 같았다.
다시 말하려고 숨을 고르는 순간,
“너 그런 말하면 안 되는 거야. 혼자 그 집에 있겠다고?
가족들이 걱정할 건 생각 안 하고 너 혼자 편하자고?”
아버지는 등을 보인 채로 말했다.
나는 그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제야
내가 뱉었던 말이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한 가지가 떠올랐다.
몇 년 전,
엄마를 보내고 돌아오던 날이었다.
엄마의 흔적만 남은 집으로
다섯 가족이 아닌
네 가족이 되어 돌아왔다.
임종부터 발인까지 잠 못 들었던 아버지는
다들 만류했음에도 끝끝내 콩국수를 만들어주셨다.
그날 우리가 할 수 있는 위로는
그저 맛있게 먹는 것뿐이었다.
밥을 다 먹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
아버지에게 한 말이 있었다.
“아빠, 엄마가 환갑에 떠났으니
아빠는 엄마의 여생을 보태 오래 우리 곁에 있어줘.
그동안 엄마에게 못할 효도는 아빠한테 더할게.”
슬프면서도 어딘가 우스운 말이었지만,
그건 분명 나의 다짐이었다.
하지만
그 다짐은
시험관,
유산,
항암 속에서
점점 뒤로 밀려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다시 떠올랐다.
나는
그때의 다짐을
또다시
잃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