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숨겨온 눈물

by 숙희달



“헥헥.”


뜨거운 입김 속에서 눈을 떴다.


입추가 지난 지 꽤 됐지만 도심의 무더위는 좀처럼

가시지 않았고 그 더위는 강아지에게 더 무거웠다.


강아지의 발걸음 소리, 물 마시는 소리에

이미 잠에서 깨어 있었지만 나는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이 현실을 조금이라도 더 미뤄두고 싶었다.


얘는 무슨 죄일까.

내가 입양하지 않았다면 이런 고생은 안 했을 텐데.




갑작스럽게 돌아온 집.


정리를 채 마치지 못한 오빠의 빈 방에는

급하게 챙겨 온 짐만 쑤셔 넣어 두었다.


나는 영화 기생충 속 근세인양

아버지를 마주칠까 두려웠다.


기껏해야 20평도 안 되는 집에서.




거실에 누워 자는 척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와 아무렇지 않게 대면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안방 문이 벌컥 열리더니

“밥 먹자. 뭐 먹을래?”

평소와 같은 말투로 말을 건넸다.


나는 한동안 자는 척했다.


하지만 이미 잠에서 깬 나를 아는 강아지가

연신 나를 핥아댔다.


나는 그제야 잠에서 깬 척 몸을 일으켰다.




내게 벌어진,

우리 가족에게 벌어진 이 일이 정말 꿈이었을까

싶을 정도로 아버지는 평온해 보였다.


나도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오랜만에 아빠가 끓여주는

국수 넣은 된장라면 먹고 싶어.”


우리 집에서 그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하는 음식이었다.


아버지는 내 말을 듣자마자

마치 미혼 시절의 나를 대하듯

기분 좋게 라면을 끓일 준비를 했다.




하지만 꿈이었으면 했던 현실은

강아지로 인해 다시 자각하게 되었다.




아버지가 정성스레 끓여준 라면은 늘 일품이었지만

그날은

빗자루를 넘기는 것처럼 뻣뻣하고 잘 넘어가지 않았다.


그 이후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저녁이 되자 나는 편의점에 가서 소주 두 병을 사 왔다.


오빠가 정신과에 예약을 해놓았지만 대기가 많아

첫 진료는 일주일 뒤였다.


술 없이는 잠들 수 없던 나는

아버지가 속상해하실 걸 알면서도 계속 마셔댔다.


한 병을 비우고 두 병을 비웠을 때쯤

강아지의 헥헥 대는 모습을 보았다.


신혼집에서는

에어컨을 맞춰 놓고

쾌적한 환경에서 살았는데.


하지만 더부살이하는 내 입장에서는

아버지 집의 에어컨을 쉽게 켤 수 없었다.



그냥 원래 내 집에 돌아온 것뿐인데.




강아지의 헥헥 소리가 계속되자 눈물이 왈칵 났다.


모든 존재가 나 때문에 피해를 보는 것 같아서.




화장실에 가시던 아버지는 내 모습을 보시곤

별말을 하지 않으셨지만 한숨을 푹 쉬고 가셨다.



그 한숨에 죄책감이 온몸의 세포를 건드렸다.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시고

잠시 뒤 내가 아버지 방문을 벌컥 열었다.


“아빠. 나 다시 저 집으로 갈게.

나 때문에 다 피해 보는 것 같아.

아빠도 강아지도.

그냥 가서 조용히 지낼게.”


내 말이 끝나자

아버지는 침대에 누워 시선은 천장에 고정한 채

큰 소리로 말했다.


“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남편에게 질러주길 바랐던 그 고함이 나에게 꽂혔다.


나는 또다시 엉엉 울었다.


그런 나를 보더니 아버지는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알아서 해.”

라는 말과 함께 말들을 던졌지만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화장실로 들어가셨다.


문을 세차게 닫고 세면대 물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그 물소리 사이로 아버지의 울음이 섞여 있었다.


엄마와의 이별 뒤 처음 듣는 아버지의 울음소리였다.


내가 유산하고 암투병을 하며

잠시 지냈던 그 몇 주 동안에도

끝까지 숨겨왔던 눈물이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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