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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헌 Jan 25. 2022

남의 죽음을 먹고사는 존재

2021년 2월 7일


아프리카의 어떤 가젤은 바닷물을 마시며 살 수 있다.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일도 누군가에게는 일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네 발을 담근 얕은 바닷물은 정오의 뙤약볕을 식혀주는 피서지이지만, 누군가는 갈증을 해소하려 마시다 죽음을 야기하는 그곳의 사건.  그들에게는 말 그대로 정말 남 일이다. 시각과 견해가 다름으로 우리는 서로에 대한 소외와 경외를 느꼈다. 물이 반 밖에 없네, 반이나 남았네. 하는 부정과 긍정을 시사하는 간단한 지문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제는 쉬운 말로 표현할 수 없으니 서로 피해 가는 편이 나으리라. 집에 편하게 있느라고 면도를 미루는 일이 많아졌다. 오가며 본 거울 속의 내가 너무 아저씨 같아서 당장 면도기를 들어 수염을 밀었다. 수염이 있는 모습도 없는 모습도 내가 보기에는 같은 나인데. 어색함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것은 피차 편안한 상태로다. 존재도 비 존재도 모두 익숙하다면 그것이야말로 온전한 상태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할 수 있는 이가 있는가. 모든 것은 움직이고 있다. 그것은 물리적인 육체의 율동만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도 춤을 추고 내 발이 상대의 진행방향을 거스르지 않고 조화를 이루는데 심혈을 기울여야 했지 않나. 사소한 주제를 머리에 떠올렸지만 그것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는 없었다. 사고는 정지했다. 그건 내가 움직이려고 노력한다고 움직여주는 친절함을 가진 이가 아니다. 지금은 삼킬 수 없는, 일부분 목으로 넘겼으나 결코 당장 소화되지 않을 이 생각들을 나는 오랫동안 뱃속에 붙잡고 있어야 한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은 모자처럼 생겼다. 배를 부여잡고 있는 나의 모습은 어떻게 보일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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